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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Nov 16. 2021

마녀 ‘율율’은 고민 상담 중

- 마녀학교 졸업식

"세상에, 율율! 드디어 졸업이구나."  

"네. 핑 선생님. 드디어 졸업이네요." 

"난 말이다. 네가 졸업을 못 하는 줄 알았어. 용케도 잘 버텼구나!" 

"무사히 졸업해서 기쁘다는 뜻이죠?" 

"어머나, 물론이지! 우리 명문 마녀학교 아르벤에서 1년이 넘도록 빗자루 운전을 못한

아이는 아마 율율 네가 처음일 거다. 어디 그뿐이니? 사랑의 묘약을 잘못 쓰는 바람에 두더지 선생이 이혼까지 할 뻔했고 말야." 

"선생님. 저 졸업식 가야 해요. 늦겠어요." 

계속 서 있다간 핑 선생님의 잔소리를 하루 종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빗자루에 올라탔다.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긴 했지만, 이 녀석이 좀처럼 앞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나만큼이나 빗자루 이 녀석의 고집도 굉장했다. 아침부터 

손잡이에 매단 '리본'을 바꿔 달라며 콩콩 쫓아다녔지만,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좋은 리본을 살 형편이 못되었다. 마녀학교에 입학하는 첫날부터 졸업하는 지금까지 매일 짙은 초록색의 리본. 딱 하나 뿐이었다. 리본 중에 가장 값이 싼 것으로, 엉겅퀴 잎과 잠자리 날개로 만든 리본이었다. 장미잎과 백조 깃털로 만든 빨간 리본으로 바꿔주고 싶었지만, 내가 가진 초록색 리본보다 5배는 비쌌다. 

"있잖아. 졸업하고 나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그땐 나도 돈을 벌 수 있거든? 열심히 돈 벌어서 꼭 빨간 리본으로 바꿔줄게.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주라. 응?" 

빗자루는 푸-하고 바람 빠진 소리를 내다가 모자가 날아갈 만큼 바람을 가르며 졸업식장까지 날아갔다. 나의 빗자루 운전 실력은 여전히 꽝이었다. 부드럽게 타야하는데 유독 내 빗자루는 질주본능이 있는지 한번 탔다 하면 번개처럼 빠른 속도였다. 그 탓에 아침부터 공들였던 앞머리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풉! 율율. 너 앞머리가 왜 그래? 곱슬곱슬 거리는 게, 꼭 사자 갈기 같다." 

보자마자 내 속을 긁어대는 이 아이는 못 하는 게 없어서 더 얄미운, 리아였다. 

언제나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고, 집도 부자여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독차지하는 아이였다. 나 역시 리아가 부러웠다. 변신 수업, 묘약제조 수업, 빗자루 운전 수업, 요리 수업, 주문 수업 등등. 모든 수업시간마다 백점을 받았고, 선생님들의 칭찬도 지겨울 만큼 듣는 아이였다. 그뿐 만이 아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녀 모자를 새로 바꿨고, 한정판 신상 모자가 나올 때마다 제일 먼저 리아가 쓰고 나타났다. 오늘도 보아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새로 맞췄나보다. 그 또한 무척 부러웠지만, 리아 앞에서는 이런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매번 얄밉게 말하는 리아에게 지기 싫어서, 나 또한 고슴도치 가시처럼 톡톡 쏘아대듯 말했다. 

"리아, 너는 붉은 사자를 본 적 있니?"   

"붉은.. 사자? 봐...봤지!"

"어디서?"

"채....책에서!" 

"풉- 장난해? 책 말고 실제로 본 적 있냐고?"

"아니. 없어." 

"난 본 적 있어. 붉은 사자. 그 사자의 갈기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넌 모를 거야."

"붉은 사자의 갈기를 만져봤다고? 율율 네가?"

"당연하지! 나한테는 특별한 능력이 있잖아. 동물과 말할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부탁을 드렸지. 당신의 그 갈기를 한번 만져볼 수 없겠냐고. 그때 알았어. 사자의 갈기가 실크처럼 부드럽다는 걸." 

"흥! 고작 동물들과 말할 수 있는 능력. 꼴랑 그거 하나 가지고 잘난 척은!!"  

이야기의 흐름이 내 쪽으로 기운다는 걸 알게 된 리아는 나를 한번 째려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이렇게 리아와 괜한 기싸움을 하고 나면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깊게 숨 한번 고르고, 율율 내 이름이 적힌 자리에 가 앉았다.  

강당은 많은 마녀 졸업생들로 우글우글 거렸다. 우리 마녀들은 사람 나이로 열두 살이면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가 각자의 역할을 해야했다. 물론 그 역할이 무엇 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서인지, 졸업하고 나면 세계여행부터 하겠다는 마녀도 있었고, 집을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한다는 마녀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마녀도 있었다. 내가 뭘 잘하는지, 타고난 재능이 뭔지 여전히 찾지 못했다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마녀도 있었다. 그렇게 와글와글 시끌벅적, 높고 낮고 크고 작은 목소리의 이야기들이 뒤섞여 정신이 없었다. 그때였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교장 선생님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강당 전체를 휘 둘러보다가 두 번째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모두 쉿!!!!!!" 

교장 선생님은 '쉿'이라는 말과 동시에 바람을 불었고, 그 바람은 강당 맨 앞에서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아이들의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휙 불어온 바람에 우리 마녀들의 모자는 모두 허공 위로 떠올랐다. 강당에 있던 마녀 졸업생들은 목을 뒤로 젖혀 고개를 들고 눈으로 각자의 모자를 찾기 바빴다. 그때 또 한 번 바람이 불면서, 신비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베게싸움 할 때나 봤을 법한 수 많은 깃털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니 바람 따라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깃털들이 절대 아니었다. 노란 깃털, 파란 깃털, 하얀 깃털, 빨간 깃털, 까만 깃털. 알록달록 다양한 빛깔의 깃털들은 각자 제 주인을 찾느라 팔랑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의 머리카락에 꽂혀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처럼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깃털이 꽂힌 아이들도 보였다. 

'나는 무슨 색의 깃털일까?' 

이제 허공에 팔랑거리고 있는 깃털이 몇 남지 않았다. 

'설마 나만 없는 건 아니겠지?' 

나는 불안한 마음에 왼쪽 다리를 달달달 떨었다.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툭 소리와 함께 곱슬거리는 내 머리 위로 깃털 하나가 꽂히는 게 느껴졌다. 

"율율! 넌 초록깃털이네!!" 

"뭐? 초록? 윽. 또 초록???" 

나는 대체 초록색과 어쩜 이리도 인연이 깊은지, 나만큼 내 빗자루도 실망하는 눈치였다. 강당 맨 뒤쪽 벽에 바짝 붙어있던 빗자루의 한숨 소리를 모두가 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리아를 힐끔 쳐다봤다. 리아의 머리에는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깃털이 반짝거리며 꽂혀있었다. 깃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꼭 천사의 날개 같은 하얀 깃털이 꽂히기를 나는 내심 기대했다. 그게 제일 예뻤으니까. 하지만 예쁜 건 언제나 리아 차지였다. 이런 내 기분을 알아버렸는지, 리아가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차라리 고개를 돌리고 말자. 나는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교장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두 깃털이 꽂혔나요? 자. 그 깃털은 졸업 후 여러분이 마녀로서 어디에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방향 키입니다. 그 깃털을 머리에 꽂고 빗자루를 타면, 여러분이 가야 할 곳으로 안내해 줄 거에요. 누군가는 요리를 하고, 누군가는 다친 이를 고쳐주고, 누군가는 빗자루 운전을 잘해서 배달을 할 지도 모르죠. 각자 하는 일은 다르겠지만, 중요한 건 모두가 함께 도우며 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거에요. 그 점 꼭 기억하면서, 명문 마녀학교 아르벤 졸업생 여러분! 졸업을 축하합니다." 

와! 졸업이다!!!!! 아이들은 강당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숙제와 시험으로부터 해방이다. 나 또한 다른 아이들 목소리와 뒤섞여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렇게 나, 율율은 마녀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머리에 꽂힌 초록색 깃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아직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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