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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시민들이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이유

종교보다 ‘분위기’와 ‘감정’을 사랑하는 나라

by 한정호

베트남에서 겨울은 없다. 남부의 건기는 더 선선해질 뿐이고, 북부 하노이도 우리 기준의 겨울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11월이 채 되기도 전에 베트남의 거리와 매장은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 찬다. 종교국가도 아니고, 개신교 신자도 거의 없는 나라에서 왜 이렇게 크리스마스에 진심일까? 처음 베트남에 와서 가장 의아했던 풍경 중 하나다.


[베트남 사람이야기] [베트남 일상]베트남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이유 6가지


1. ‘종교 행사’가 아니라 ‘축제’로 받아들인다

베트남에서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기념일이 아니라, 대중 축제에 가깝다. 가톨릭의 영향이 남부 지역에 일부 남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베트남인에게 크리스마스는 '예쁘고, 화려하고, 사진 찍기 좋은 날'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베트남 사람들은 원래 기념일, 축제, 행사에 강하다. 설(Tet), 중추절, 국경일, 스승의 날, 여성의 날 ... 하루라도 특별하지 않은 날이 없다.

이런 문화적 ‘축제 감성’ 속에서 크리스마스는 종교와 무관하게 그냥 하나의 감성 축제가 된다.


2. 사진 찍는 문화 + SNS 문화 = 크리스마스 열풍

베트남 사람들은 사진 찍기를 정말 좋아한다. 기념일, 데이트, 친구 모임, 심지어 카페만 가도 사진부터 찍는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즌은 가장 예쁘게 찍힐 수 있는 배경이 제공되는 시기다.

쇼핑몰, 카페, 레스토랑, 바... 어디든 크리스마스 장식만 잘 해 놓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매장들도 잘 알고 있다.

'꾸미면 사람 온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전부 ‘진심 모드’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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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말 분위기’를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한국의 연말에는 송년회, 회식, 잔잔한 겨울 분위기, 새해 카운트다운 등이 있다. 하지만 베트남에는 ‘겨울 풍경’이 없다. 눈도 없고, 계절감도 약하다. 그러다 보니까 연말의 감성을 만들어 낼 만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걸 대신하는 게 바로 크리스마스다. 밝은 조명, 캐럴, 트리, 반짝이는 오너먼트 등. 이 모든 게 “연말이 왔다”는 느낌을 만들어 준다. 베트남은 그런 감정을 사랑하는 나라다.


4. 데이트 문화와 크리스마스의 결합

크리스마스는 베트남에서 커플 데이다. 연인끼리 사진을 찍고, 트리 앞에서 이야기하고, 카페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날. 전형적인 로맨틱 데이로 자리 잡아 있다. 그래서 11월부터 이미 “크리스마스 감성 카페”가 생긴다. 그 감성이 한 달 반 동안 이어지는 셈이다.


5. 베트남 경제 성장 + 소비 문화 확산

과거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가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급속한 성장으로 소비 문화가 크게 확산되면서 크리스마스가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었다.

대형 몰은 크리스마스 행사를 통해 고객들을 확보하고, 카페는 감성 인테리어를 통한 사진 마케팅을 진행한다. 레스토랑이나 식당들은 이벤트 메뉴와 프로모션을 시행하고, 소매 매장은 선물 패키지 판매를 실시한다. 즉, 크리스마스는 '매출 상승기'라는 인식이 기업과 소상공인 모두에게 퍼진 상태이가. 매장이 일찍부터 장식을 준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6. 베트남 특유의 “함께 분위기 즐기기” 문화

베트남 사람들은 혼자 조용히 보내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분위기를 즐기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함께 즐기고 함께 찍고 함께 먹는' 문화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한국에선 '크리스마스는 종교+가족+커플+추운 겨울거리' 라는 복합적 이미지라면, 베트남에서는 '크리스마스는 예쁨+즐거움+사진+낭만'이라는 감성적 이미지가 핵심이다.


베트남에서 크리스마스는 절기나 교리가 아니라, 감성, 분위기,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축제다. 종교가 없어서 더 자유롭게 즐기고, 겨울이 없어서 더 분위기를 갈망하며, SNS가 일상이 되면서 더 예쁘게 꾸미는 문화가 생겼다. 그래서 11월부터 이미 베트남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기는 나라’가 된다.


이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 그리고 감정을 나누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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