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존경과 감사를 보여주는 방식
오늘 아침 어머님과 통화를 하던 중, 남해에 계시는 할머니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요즘 날씨가 하도 더워 할머니가 잘 움직이지도 않으시고 식사를 거르기까지 하신다며 언제 부고 소식이 올 지 모르니 너도 마음 쓰고 있으라는 말씀이셨다. 할머니는 올 해 103세 이시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밭에도 잠시 나가셔서 일도 하시고 반주로 소주도 하신다던 분이셨는데...
문득 조선시대때 100세가 넘으면 임금이 직접 하사품을 내리셨다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런 예우가 남아 있을까? 같은 유교권 국가이며 어른 공경이 깍듯한 베트남도 이런 모습이 있을까? 라는 의문에 살펴 보았다.
왕이 선물을 내리다 – 조선의 장수자 예우
조선시대, 100세 이상이 되면 임금은 특별히 하사품을 내렸다. 은잔이나 옷감, 약재, 쌀, 고기 같은 실질적인 물품들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복지 차원이 아니라, '수(壽)는 하늘의 은혜이며, 나라의 복'이라는 철학 아래 행해졌던 국가적 예우였다.
특히 법전인 《경국대전》이나 《속대전》에는 ‘기로연(耆老宴)’이라 불리는 공식 연회 제도도 있었고, 고위 문신들에겐 ‘기로소’라는 별도 기관을 만들어 임금이 직접 술과 음식을 나누며 장수를 축하하곤 했다.
현대 대한민국의 예우는 어떨까?
지금도 한국 정부는 100세가 넘은 노인에게 대통령이나 지자체장 명의의 축하패, 선물, 생활지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또한 매년 10월 2일, 노인의 날이 되면 효행자, 장수자, 모범노인 등에게 포상이 주어지기도 한다.
100세를 산다는 건 그 자체로도 큰 의미이지만, 그 오랜 세월을 이겨내신 인생과 이야기들이 존중받는 것이다.
베트남도 유교의 나라. 장수자에 대한 예우는?
베트남 역시 오랜 유교 전통 속에서 노인을 ‘가정의 복’이라 여긴다.
“Người già là phúc của gia đình” (노인은 가정의 축복이다) 라는 속담처럼 말이다.
베트남에서도 100세 이상 노인에게는 국가주석(Chủ tịch nước) 명의의 편지와 선물이 전달된다. 90세 이상이 되면 지방 인민위원회에서도 축하를 보내며, 매년 생일마다 소정의 선물과 함께 예우가 이어진다.
6월 6일은 베트남의 ‘노인의 날’로 각 마을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가 열리고, 장수자에게는 마을 대표가 직접 방문해 축하 메시지를 전달한다.
존중은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장수는 복이자 기적이다. 하지만 그 복이 더 깊어지려면, 그 삶을 ‘기록하고’, ‘공유하고’, ‘기억’하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조선에서 임금이 내리던 은잔, 지금의 대통령 명의 축하 카드, 그리고 베트남의 축하서한은 결국 공동체의 존경과 감사를 보여주는 방식이 아닐까?
초고령화 시대, 노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은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하지만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세대 갈등의 신호탄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늘고 있다.
"세금은 누가 내고, 복지는 누가 받느냐",
"노인이 너무 많아졌다",
이런 말들이 공공연히 오가는 시대.
그 속에서 노인을 공경한다는 고귀한 뜻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건 단지 ‘존경하라’는 도덕 명령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태도와 질문일지도 모른다.
노인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살아있는 다리이다. 그들을 공경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언젠가 도달할 미래를 지금부터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갈등을 넘어서 공존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아이들에게 ‘효도’라는 단어가 아닌 이야기와 기억, 존중의 감각을 물려줘야 한다. 그것이 진짜 '노인 공경'의 시작이 아닐까?
10여년 전 아들 상진이와 남해에 다녀왔을 때 '왕할머니'라며 좋아했던 기억이 새롭다. 언제 올 지 모를 부고 소식에 '상진이를 데리고 가야하나?'라고 생각하며, 시험 공부중이라며 왜 애를 그 먼 데까지 데리고 가려하냐고 할 사람을 생각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할머니 올 해 더위 잘 견뎌내시고 오래 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