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로이드 부작용에 대해
스테로이드를 복용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겪는 부작용 중 하나가 '문페이스'다. 말 그대로 얼굴이 달덩이처럼 빵빵하게 붓게 되는데, 잘 먹어서 토실토실 얼굴에 살이 오른 것과는 조금 다르다. 복용하는 스테로이드를 감량하다 보면 몇 개월에 걸쳐 서서히 붓기는 줄어든다. 하지만 당장 얼굴에 난 뾰루지 하나도 하루 종일 신경 쓰이는데 몇 개월이나 얼굴이 빵빵하게 부어있는 건 생각보다 정말 큰 스트레스였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얼굴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 사람들 입장에선 그렇게 보일 수 있으니까 가볍게 넘겨도 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내가 지금 얼굴이 이렇게 부은 건 약 부작용 때문인데, 스테로이드를 고용량으로 복용할 만큼 내 속은 말이 아닌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보고 좋아 보인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미울 때도 있다. 세수할 때도 숨을 가득 불어넣은 풍선처럼 만져지는 내 얼굴이 싫고, 거울 속에 서있는 호빵맨 같은 얼굴이 또 싫다. 한숨을 쉬면서 또 그날 먹어야 할 스테로이드를 먹는다.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 왜 난 아픈 걸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
거의 6개월에 걸쳐 스테로이드를 줄여갔다. 1.5알~2알 언저리에서는 확실히 붓기가 전보다 빠진 것이 느껴진다. 그 사실 하나에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함부로 말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금세 상처 받고 다시 기분이 우울해진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일상이다.
"좋아 보여."
빵빵해진 내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건 약 부작용이라고 말해도 그래도 야윈 것보단 낫잖아, 좋아 보여. 위로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냥 관심을 꺼주는 것이 가장 큰 배려다. 문페이스가 찾아온 상태에선 어느 누구도 내 얼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너 보톡스 맞은 줄 알았어."
타인의 얼굴에 관심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그리고 내가 라면을 먹고 얼굴이 부었든 보톡스를 맞았든 어떠한 경우에도 그런 지적은 실례일 뿐이다. 화가 났다가도, 예전의 내가 무심코 뱉은 말에 상처 입은 사람도 있었겠지 생각하며. 루푸스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몸통은 두터워지는 체형 변화가 오기도 한다. 쉽게 말해 이티처럼. 약을 오래 복용하다 보면 근력이 확실히 약해진 걸 느낀다. 건강했을 때보다 통증이 있는 날도 자주 있으니 운동량도 줄어들 테고. 나 같은 경우엔 처음 루푸스 활성기가 찾아왔을 때 몸무게가 급격히 빠지는 증상이 있었고, 그때 엉덩이 근육이 특히 많이 빠지고 나선 제대로 회복이 안되고 있다.
"그래도 살 빠져서 부럽다."
한 번은 동네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입원했을 때 병원에 한걸음에 달려와주기도 한 오랜 친구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음식을 주문하고 내가 물을 뜨러 간 사이에 내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나도 빠져봤으면 좋겠다는 어느 친구의 말에 맞아 맞아 맞장구치는 나머지 친구들의 이야기 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못 들은 척 친구들의 인원수만큼 채운 물컵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긴 했지만.
근육은 다 빠지고 지방만 남아 붙어있는 내 몸이 정말 부러울까? 바닥에 앉으면 엉덩이가 아파서 꼭 쿠션을 깔고 앉는 내 엉덩이가 정말 부러울까? 앉았다 일어서려면 관절이 쑤셔서 바닥이든 주변의 의자든 손으로 짚고 끙끙거리며 할머니처럼 일어설 수 있는 내 모습을 봐도 부러울까. 그냥 어린 마음에 나온 말이겠지만 씁쓸한 시선이다.
예전의 나는 미용실에 갈 때마다 '보기보다 숱이 많다'는 얘길 듣곤 했다. 머리카락이 가늘고 축 쳐지는 편이라 숱이 많은 게 티가 잘 안 나는데, 머리를 하려고 뒤적뒤적하다 보면 미용사분들이 다들 놀라곤 했다. 어쨌든 숱이 많았던 나는 생전 탈모 걱정이라곤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남자도 아닐뿐더러, 숱이 많아 붕붕 뜨는 머리를 관리하기 바빴으니까. 그런데 두 번째 활성기 즈음에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늘은 머리가 좀 많이 빠졌네 싶었지만, 하루 이틀이 아니게 되자 혹시 탈모인가 걱정이 되었다. 머리를 말리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항상 뭉쳐서 버리는데, 그 크기와 밀도가 평소보다 훨씬 크고 빽빽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하루는 떨어진 머리카락을 한 올 한올 몽땅 세어봤다. 일반적으로 빠지는 머리카락 개수가 60~80 가닥이라면 내 머리카락은 170개가 넘었다.
하루가 다르게 빈약해지는 머리숱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이젠 머리를 묶어도 한 줌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약을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머리를 꼬불꼬불 말아도 보고, 최대한 볼륨감 있게 묶어도 보고. 탈모를 한번 겪고 나서는 머리를 자꾸 이렇게 저렇게 만지는 습관이 생겼다. 다행히 한 번 우수수 빠진 뒤로는 잔디처럼 새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고, 이 잔디들을 잘 키우자는 마음으로 맥주 효모도 먹어보고, 탈모 샴푸도 써보고, 검은콩도 열심히 먹고 이래저래 지내다 보니 잔디들이 잘 자라서 머리숱을 채워주었다. 전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긴 해도,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자르니 확실히 빠지는 머리가 적고 또 눈에 보이는 게 전보다 나으니 스트레스를 받는 빈도도 줄었던 것 같다. 이젠 한올 한올이 너무 소중해서, 머리에 염색도 펌도 하지 않는다. 이대로 잘 자라기만 해다오.
네 번째로 사실 성격에 대해 쓰고 싶었다. 예전의 나는 굉장히 둔감하고 무던한 편이었는데 아무래도 몸의 변화에 예민해지는 만큼 조금 날카로워지고 신경이 곤두설 때가 많아졌다. 스테로이드 복용 알 수에 집착할 때도 있고, 가끔 약이 안 받는 날엔 통증이 더 심하니 예민할 수밖에. 그렇지만 부작용이라 볼 수 없는 이유가 첫 번째, 루푸스가 있어도 온화한 성격인 분들이 계실 거란 생각이 두 번째, 한편으로는 다음 글에서 길게 다루고 싶은 마음이 세 번째라 이번엔 적지 않기로 했다. 다만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주변에 루푸스를 앓고 계신 분들에게서 약간 평소 같지 않은 까칠함을 느낄 때가 있다면 조금 이해해주기를. 대변하자면 그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어요. 아마 그 사람들... 까칠하게 해 놓곤 벌써 후회 중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