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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Mar 31. 2023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상상과 현실


불확실함은 위협이다


   서른두 살의 겨울, 일을 하다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 망해가던 회사 사장님은 위로금과 퇴직금을 쥐어주고 회사에서 내보냈다. 자취방에서 퇴직금을 까먹으며 재활치료로 몇 달을 보냈다. 그때 골방에서 절절거리는 몸을 부여잡고 얼마나 불안에 떨었는지 모른다. 오만가지 상상을 하면서 급기야는 길에서 동전을 구걸하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정신적인 고통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흔한 원인은 ‘불확실성’이다. 세상에 확실한 게 어디 있으며 보장된 미래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가까운 미래도 예측할 수 없고 또 불확실함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면 그건 ‘위협’이 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바로 이 위협 때문이다. 아직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곧 나에게 닥쳐올 것으로 예상되는 위협을 우리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대비하게 된다. 안개가 자욱한 숲 속에서 맨몸으로 마주한 그림자가 늑대인지 개인지 애매하다면 인간은 늑대 이상의 위험요소로 가정하고 대비한다. 그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현실을 실제보다 더 부정적으로 가정하게 된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지만, 어느 것 하나 정해지지 않은 팍팍한 상황에서 ‘잘 되겠지’라는 긍정을 맨땅에 심기는 쉽지 않다.

 


불안함을 잊기 위한 상상


“적어도 월 400은 벌어야지. 그 정도는 벌어야 가정도 꾸리고 생활한다니까. 사원증 차고 출근해서 깔끔한 사무실에 일하는 거지. 따분하긴 하겠지만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으로 주말에는 가족들이랑 여행도 다니고 평일에는 일찍 퇴근해서 취미생활 좀 해야지. 최소한.”


 민망하지만 스무 살 무렵 내 생각이다. 일기를 보니 몇 달을 방황하던 중 저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 몇 년 뒤 현실은 최저시급도 못 받고 새벽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가서 6시부터 9시까지 [ 9to6(x), 6to9(o) ] 일하고 있었으니 정말 현실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상이었지만 그때는 나름 경험과 지식들을 모두 넣어서 만들어낸 미래상이었다. 한참을 미래에 대해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가상의 사회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내가 아는 좋은 것들을 모두 넣어서 미래를 상상하는 과정. 뒤늦게 알았지만 그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 중에 하나였다.



불안, 상상, 현실인식의 반복


  지금은 돈을 버는 방법이 근로소득 말고도 투자나 사업도 있고 직업의 형태도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는 자영업, 중소기업, 대기업, 은행원, 의사, 공무원 정도가 내가 아는 직업의 전부였다. 그중에서 상상했던 삶의 조건인 높은 연봉에 깔끔한 사무직을 목표로 찾아보니 남은 건 대기업 사무직과 고위 공무원뿐이었다. 틈틈이 대기업 입사에 필요한 스펙들, 고시 시험과목, 채용절차 이런 것들을 찾아봤다. 맨몸으로 사회에 나가기까지 2년 남짓, 2년을 기한으로 내 상황에서 바닥부터 계획을 짜보니 이게 보통일이 아님을 알았다.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높은 벽을 실감하고 다시 고민은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럼 나는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불안감이 찾아왔다. 눈높이도 점점 낮추고 현실을 하나 둘 깨닫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불안, 상상, 현실인식의 무한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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