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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Nov 07. 2022

마음에 부담을 주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요. 오히려 사랑을 주셨습니다.


  일주일만에 처음 갔었던 병원에 다시 들렀다. 이번엔 무슨 검사를 한다고 했다. 검사가 지난번처럼 장비를 사용하는 줄 알았지만 원무과의 직원이 프린트를 해서 검사지를 줬다. 검사지에는 'BDI'라고 쓰여있었다. 여기서 BDI(Beck Depression Inventory)라는 검사로 우울증을 진단하는 가장 보편적인 검사법이다. 최근 감정, 부정적인 성향, 자기혐오, 욕구 등이 항목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21문항 63점 만점에 10~15점은 가벼운 우울상태, 16~23점은 중간정도, 24점 이상은 심각한 우울상태를 말한다. 내 점수는 45점이었다. 의사는 이 검사만으로 우울증을 명확하게 진단내릴 수는 없지만 현재 판단으로는 '중증 우울증'에 속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테스트에서도 높은 수준이라는 진단이었다. 의사의 표정이 심각해보여 더욱 겁이 났다. 의사는 나에게 스스로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아마 자기혐오에 관한 질문지에 답변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또 물었다.


혹시 주변 사람 중에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주는 사람이 있나요?


  차라리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냐고 물었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맞는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나를 이지경으로 만든 원인을 묻는 질문에 나는 또 무너져 내렸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부담'으로 느끼고 있는건 아닌가. 의사의 말이 정말 맞다면 이 이야기를 내 가족이 듣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1년 넘게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고 점점 야위여가는 어머니.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병도 깊어져 이빨은 하나둘 빠지고 온몸은 뼈 밖에 안남은 아버지. 그런 부모님의 급히 꺾여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방치만 하고 있는 나.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 죄책감이 '부담'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내 사랑하는 가족들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이 병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우리 가족을 짐이라고 생각해본적은 없다. 없다.


저에게 부담이 아니라 사랑을 주셨어요. 평범한 사람으로 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부모님은 나에게 가없는 사랑을 주셨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두 분은 나를 참 많이 사랑하셨다. 부모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었을텐데 그 개인으로서의 욕심을 나에게 보여주신 적이 없었다. 자나깨나 늘 자식들 걱정이셨고 더 잘해주시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 산후조리를 못했던 어머니는 20대에 이미 치아를 많이 잃었지만 몸이 약했던 나에게 철마다 보약을 해주셨고, 새벽부터 밤까지 몸이 부서져라 일하신 아버지는 꼬물거리는 우리 형제를 보며 마음을 다잡고 40년을 일만 하셨다. 그 와중에도 학창시절엔 자식들 먹인다고 평소에 드시지도 않는 먹거리를 왕복 4시간 넘는 거리를 오고가며 주고 가셨다. 어려서 타지로 보낸 자식들이 눈에 밟혀 한동안 식사를 못하셨다는 아버지는 늘 애정어린 눈으로 우리를 돌보셨고, 어머니는 허리가 'ㄱ'자로 굽을 때까지 가족들 뒷바라지만 하셨다. 어릴적 우리 가족은 여유가 없었지만 따뜻한 품속에 있는 듯 했다. 참 행복했다.


  부족해도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던 그 가정은 뿔뿔이 흩어졌다. 독립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는 독립이 아니라 소외가 되었다. 편찮으셔도 참기만하던 어머니는 그 많은 지병들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몰려왔고, 아버지도 더이상 쇠약해진 몸이 버티지 못했다. 꽃이 만개한 작은 섬같던 우리 가족은 그렇게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못난 아들은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방치했다. 아니 방치하고 있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만원짜리 작두콩차를 인터넷으로 보내드리는게 전부인 나를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곁에 머물며 성심을 다해 나를 돌보셨을 부모님임을 잘 알기 때문에 죄책감을 더욱 커진다. 못난 자식은 자기만 살겠다고 아등바등 하고 있는 사이, 어머니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무너져내린 그 꽃 같았던 우리 가족의 모습, 따스한 볕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강아지 밥주고 웃던 우리 가족의 그 모습이 오늘도 사무치게 그립고 또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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