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취향껏 21호 <고통>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빤히 알고 있으니.
나는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사람.
당신의 편, 가장 좋은 친구, 어떤 무엇도 될 수 있지만
단 한 가지는 될 수 없는 사람이잖아. 내가.
당신은 나를.
여기까지 말하다가 목에 울음이 걸렸다.
(너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럴 리는 없었겠지만.
끝끝내 고백은 없었다.
20191014
*
작가의 말.
언제나 힘껏 사랑했다. 번역가처럼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연구하고, 비언어적 신호와 몸짓을 분석해서 언어로 바꾸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사랑하기 때문에 읽어낼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감정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당신에게 ‘무해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의 어떤 말도 당신에게 작은 생채기조차 낼 수 없었다는 것을. 내가 당신에게 고작 ‘그 정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반면에 나는 당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당신을 미워하지 못하고 사랑할 것이라는 것까지도. 그리고 이 사실을 당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고통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낀 날이었다. 나는 정말로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나를….
질문하는 순간 비참해질 것 같았다. 뒷말을 꾸역꾸역 삼켜냈다. 당신에게 묻고 싶었던 수많은 말들은 목 언저리에 차곡히 쌓여갔다. 그래서인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기도가 막힌 기분이다. 실재하는 고통을 통해 사랑을 확인했다, 이건 진짜 사랑이었구나. 이 문장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빛이 존재하지 않으면 어둠도 존재할 수 없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싫어할 수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고통이 없으면 사랑도 없고, 사랑이 없으면 고통도 없는 거겠지.
끝끝내 당신에게 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적어본다.
말줄임표 뒤에 숨겨뒀던 고통들을 놓아주려고.
당신은 나를 사랑하긴 했을까.
당신들이 나를 사랑한 적은 있었을까.
사랑을 하지 않으면 고통은 없어지는 걸까.
아프지 않은 사랑은 혹시 사랑이 아닌 걸까.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수많은 질문들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마침내 고백하며.
웹진 취향껏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