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경x인영구] 인영구로부터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당신과 메일을 주고받고 싶었을까?
늘 대답은 늘 당신과 내가 닮았다는 이유로 귀결되지만.
나는 말에 힘이 있다고 믿는다. 힘들다는 말에도, 기쁘다는 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부정적인 말은 꺼낼수록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나쁜 말들을 속으로 삭히다 보면 마음이 곪았다. 곪다 못해 터질 때까지도 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 했다. 그게 익숙하니까. 이 말을 밖으로 꺼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웠기 때문에. 나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을 풀어내야 할지 잘 몰랐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안고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당신도 그랬다니, 문득 놀라웠다. 그래. 당신은 나와 참 닮았다.
'힘들다'는 말을 꺼낼 때 나는 '죄책감'이 들었던 것 같다. 당신의 말을 빌리자면 '그 사람들의 손에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살짝 얹어놓고 도망친' 기분이었다. 내 슬픔을 저 사람에게 넘겨주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말하지 말걸… 혼자 아플걸. 슬픔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믿었다. 나 혼자 아프면 된다고,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인영아, 너는 기쁘고 좋은 것만 이야기하잖아. 네가 슬프고 힘든 건 얘기하지 않잖아." 나는 머리를 쾅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나의 상처를 모두 알고 있었구나.
그때야 친구들에게 용기 내서 전했다. 나는 '힘들다'는 말이 힘들고, 그 말을 하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기가 어찌나 힘들다고.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해줬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는 혼자 있지도 말고,
시끄럽게 모여있지도 말고, 그냥 같이 있자.
나는 그 이야기가 너무 와닿았다. 이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은 내가 왜 힘든지, 얼마나 힘든지가 아니었다. 그저 본인이 위로가 될 수 있도록 힘든 '티'를 내달라는 것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그들이 얼마나 오래 내 옆에서 내가 그 한 걸음을 내디뎌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깨달았다. 그때부터는 나도 조금 나아졌다. 그들에게만큼은 힘든 '티'를 내는 것으로도 이 슬픔이 줄어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마 당신에게 먼저 말을 건넨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당신이 힘들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할 것을 알기에, 당신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다.
내가 수없이 겪은 경험이, 상처가 쉽게 아물리 없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에 뿅! 하고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외로운 것을 외롭다고 말해도, 우울한 것을 우울하다고 말해도 내 기분이 마냥 나아지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 나를 기다려주고 있고,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는 그 사실이 나를 위로했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엿보게 했다. 모든 걸 터놓을 필요는 없다. 그런 말들에도 연습이 필요하니까. 당신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그들이 품을 내어주는 것을 거절하지만 않으면 된다.
우리는 늘 도망치듯 살았던 것 같다. 사실은 누구보다 감정 속에서 열렬히 살아남았는데도. 부끄러움, 힘듦과 슬픔 속에서 살아있고자, 온 힘을 다해 버텨내지 않았는가. 이제는 도망치지 말고 잠시 떠나는 건 어떨까. 바다를 보고 돌아오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이곳으로.
아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이지은 씨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이 기분 영원하지 않아. 나는 이겨낼 수 있어. 나는 그 말을 마음에 품고 산다.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 답장이 너무 늦어 수납장이 왔는지 모르겠지만, 어서 짐을 치워보자. 몸을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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