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경X인영구] 인영구로부터
나는 친구들이랑 매 주마다 회고록을 쓰고 있어. 각자의 일주일을 되돌아보고, 잘한 일과 아쉬운 일을 적는 거야. 서로의 일주일을 읽어보고 댓글을 달아주는 형식이거든. 이걸 하다보니까 매주 나를 돌아보게 돼. 그러다보니 스쳐지나가는 일이 없고 사소한 일들도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 오늘은 회고록 쓰다가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 나는 이 단어가 참 싫으면서도, 이 단어만큼 잘 쓰는 단어가 없더라고. 최인영 단어사전이 있다면, 자존감 옆에는 ‘애증’이라는 단어가 붙어야 할 거야.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에요. 제가 부족한 점들을 모두 커버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에 단순히 감사하고, 또 고마워하면 되는데 괜히 기가 죽을 때가 있어요. 자존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의 글이었거든. 무슨 내용이냐면 나는 내가 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 사실 글 쓰는 것 빼고는 떠오르는 장점이나 취미가 없어.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썼고, 그게 전부였고, 지금도 전부야. 이게 싫거나 잘못됐다는 건 아닌데 이 외의 일들에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잘 안 가. 그런 나의 부족한 점들을 주변 사람들이 참 많이 채워주고 있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동시에 나를 비교하면서 기가 죽더라고.
사랑을, 호의를, 도움을 받는 일은 왜 이렇게 나를 불편하게 할까. 사랑을 주고, 호의를 베풀고, 도움을 주는 건 참 기쁘고 즐거운데 말이야. 내가 받는 건 참 힘들어. 나는 이게 자존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에 어떤 글을 본 적이 있었거든. “자존감이 낮은 게 얼마나 큰 문제냐면, 받는 사랑도 없는 걸로 만들어버려.” 라는 뉘앙스의 글이었어. 그래 맞아. 자존감이 낮으면 뭔가 받는 게 어려워지지. 내가 뭐라고 이런 걸 받나 싶으니까. 그 이야기를 보면서 고개를 얼마나 끄덕였는지 몰라.
나는 내가 싫거나,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해. 사실 뜯어보면 엉망진창인데 그래도 굳이 따지면 나는 나를 사랑하는 편인 것 같아. 그런데도 왜 나는 나한테 이렇게 못되게 굴까. 무엇도 받으면 안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남들의 사랑을 의심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심지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관대하고, 사랑이 넘치고, 그들이 자기 자신을 부정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거든. 근데 왜 나는 나한테만은 그게 안 되는지 잘 모르겠어. 참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
그래도 한 친구가 이렇게 댓글을 달아줬어. 나는 사랑받아 마땅하고, 존경스럽고, 대단한 사람이래. 나만의 장점과 매력이 있어서 사람들이 사랑을 주는 거라고. 나는 그 이야기가 참 고맙더라고. 내가 나한테 그렇게 많이 말할 때는 잘 안들렸는데,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주니까 어찌나 귀에 쏙쏙 박히는지. 귀가 얼마나 얇은지 몰라. 나는 참 부족한 게 많지만, 나의 부족한 점들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 그래 좀 모자라면 어때. 누군가 나를 채워줄 수도 있는 거지. 자꾸 이렇게 생각하는 연습을 좀 해야겠어. 연습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사랑을 받는 일도, 호의를 받는 일도, 도움을 받는 일도 익숙해질 수 있겠지?
언젠가는 오빠에게 보내는 메일에, 누가 나를 도와주는 일이 참 기쁘기만 했다는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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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 레터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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