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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Feb 26. 2024

<스포주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노인의 차별점


독서스터디 ‘야망’ 이번달의 책은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였다. 오랜만에 다시 인문고전으로 돌아온 기분에 라틴아메리카계 소설이라니? 흥미로웠다. 읽는내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과 어울리는 노인, 꼬장꼬장한 신념까지. 노인과 바다는 바다에서, 이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밀림에서지만. 책 자체는 얇고 재밌어 앉은 자리에서 한두시간내 후루룩 읽었다. 너무 번잡하지도 않고, 흡입력이 좋은 소설이였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주인공인 노인은 원주민과 몇 해동안 함께 살며 자연에 대한 많은걸 익힌다. 배경인 엘 이딜리오에는 장악하려는 백인들과, 개척해야하는 이주민들이 있다. 환경이 워낙 밀림이라 야생동물이 많은 곳이라 의문사가 자주 생긴다. 백인들은 자연에 대한 이해 없이 엽총으로만 해결하려 하지만, 야생동물들은 더 영약하고 똑똑하다. 이 지역을 관리하는 읍장은 현장에 대해 워낙 모른다. 그래서 노인이 꼭 필요하다. 노인은 상처 자국만 보더라도 어느 종의 야생동물이 살인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기때문이다.


노인은 글을 읽을 수 있다. 아주 천천히. 그래서 가끔 방문하는 치과의사에게 연애소설을 구해다주라고 한다. 노인이 가지는 최대의 휴식은 원두막에서 연애소설을 아주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읽는 것이다. 하지만 평생 밀림 근처에서 살아온 그는 경험부족으로 소설의 일부 묘사들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나 역시 연애소설을 음미하며 가끔은 사별한 아내를 떠올리기도 한다. 나는 노인에게 아무 생산적이지 않은 이 행동이, 삶을 지탱하는 중심이 된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예술과 책과 세상의 많은 비생산적인 것은, 시간낭비로 보이기도 하지만 삶의 목표가 아닌 목적이 도기도 하는 것이다.


이 노인은 이 부족에서 두가지 차별점이 있는 사람이다. 자연에 대한 이해도가 원주민만큼 높고, 떠듬거리나마 글을 읽을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어디에선가 필요한 사람이다. 마을에서 노인의 차별성은 이것이고 그래서 노인은 더 자유롭고, 단호하게 본인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공동체에서 본인의 목소리를 내려면, 본인만의 장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도 내 의견을 내는걸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어디 그룹이든 꼭 차별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성까지 있으면 더 좋은 일이다. 노인이 딱 보자마자 이건 살쾡이의 짓이라고 단정짓는 것처럼, 나도 내 능력으로 남들을 돕고, 그게 내 자유로까지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살쾡이와 노인군락의 대결에서 사실은 인간이 먼저 잘못한 것이다. 암살쾡이는 생의 모든 것을 걸고 인간을 용서할수 없을 것이다. 자연에서는 모든걸 자연스럽게 두면 되는데, 사람의 욕심은 절대로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굴러가도록 두지 않는다. 백인들도 본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싶으면, 기존 원주민들과 타협하고, 현장에 대해 배울 생각을 조금이나마 해야 하는데 무작정 도구로만 하려고 하니, 될리가 없다. 뭐 물리적으로는 될 수 있겠지만.. 그걸 진정 이 지역을 점령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요즘은 노인들은 틀딱이란 소리를 들으며, 기민한 기술에 대응하지 못한다고 뒤쳐진 세대라고 한다. 심지어 노인들 스스로도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더 똑똑하다고 말하며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노인들이 그 긴 세상을 살면서 배우고 겪은 것들이 많을텐데, 다 휘발되는 것일까? 노인들의 지혜로 공동체를 이끄는 세상의 수많은 부족들의 공통점이 의미없는 것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 그동안 한 생각들이 모두 생에 굽이굽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게 살면서 뭐가 중요해, 돈이나 잘 버는게 중요하지. 하는 세상이라지만 중심없는 풍요는 없는것보다 못하다.


요새 세상에서 이 노인을 만났다면, 난 블로그를 권했을것 같다. 아침마다 도서관에 와보면, 이런저런 공부하는 젊은이들 속 여전히 책을 읽고 사유하는 노인들이 많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여서 그렇지, 다 각자만의 차별성이 있을것도 같다. 인스타 스타도 팔로우하지 않는 나지만, 시골 노인 몇 분은 팔로우해서 구경하기도 한다. 귀여운 진돗개를, 그들의 앓는 소리를, 아프다면 응원으로 하트를 보내기도 한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도, 연애소설 읽는 노인도 나름의 삶의 철학이 있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들은 그 개인의 삶의 철학이 궁금하다.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경험을 했고,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많은 노인들이 사회에서 더 활발하게 본인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 작은 강의도 하고, 문제 상담도 해 주고. 다양성 있는 사회가 충분히 섞이기를. 지금은 너무 서로의 세대를 몰라서 서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피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밀림에서도 연애소설을 꼬박꼬박 읽으며 감상에 젖는 노인의 모습이 꽤나 인상깊었다. 노인과 바다에서도 그렇고, 몸과 마음이 노쇠해지면 삶의 목적이나 희망을 찾는게 꽤 힘들어지나보다. 그래서 내가 이 동물을 잡아야겠다는 이런 미션이 주어질때 오히려 형형한 눈빛이 생기고, 더 젊어지는 것 같다. 노후준비에 돈뿐만 아니라 어디서 행복을 얻을지, 무슨 활동을 할지 등을 껴서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땐 그런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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