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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Feb 29. 2024

이유없이 눈물나는 날엔

감정이 바닥치는 날

오늘은 출산전, 마지막으로 수영장에 가는 날이였다. 어제 내내 만든 스크런지를 강사님과 눈에 익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덕담을 신나게 듣고 pc센터에 들려서 pc문의도 하고, 아침으로 분식집에가서 잔치국수도 먹었다.' 잔치국수 먹었으니까.. 잔치할 일이 생기려나?'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아뜰리에 가서 기분좋게 사람과 티타임도 가지고, 그림도 그렸다. 무언가 피곤해 아뜰리에에서부터 살짝 졸렸다. 비는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니까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네요.." 라며 웃었다. . 원래는 후에 양재 레슨도 있었는데, 취소되었다. 집가서 푹 자야지- 싶었다. 이때까진 평소와 같은, 내가 일주일중에 제일 사랑하는 목요일이였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온몸이 나른해지고, 갑자기 너무 피곤해졌다. 나 지금 손씼을 힘도 없어- 하면서도 손을 씼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3시간후, 푹 자고 일어났더니 배가 고팠다. '자고 일어나서 바로 배고픈 경우가 별로 없는데.. 내가 이렇게 피곤했나..' 하면서도 la갈비를 굽고, 미역국을 뎁혀 한상을 든든히 먹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기분이 뭔가 좋지 않았다.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


마침 엊그제 보다 만 '외계인 2부'를 보면서도 입꼬리는 전혀 올라가지 않았다. 배가 불렀지만 괜히 우유 비스킷도 뜯어먹어보고, 사탕 몇 알과 사과도 깎아 먹어보았다. 그럼에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보다만 '더 퀸'을 틀었는데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드라마인 '겨우, 서른'을 보다가 귀여운 아기가 나오는 장면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 나 지금 뭔가 다크한 상태구나. 확 자각이 되었다.


그 눈물이 시발점이였다. 분명 어제만 해도 열심히 만든 스크런지들을 만들면서 내일 나눠줄 생각에 신났었는데, 심지어 약간 피곤하게 잠들어서 아침까지 푹 잘만 잤는데. 평소에 워낙 긍정적이고 의욕도 있고 항상 열심히 사는 편인데 가끔 이렇게 한번씩 크게 고장이 난다. 물이 확 빠진 갯벌처럼, 감정이 바닥까지 드러나는 때들이 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일단 평소에 흥미있던 것들에 전혀 집중이 되지 않는다. 책을 읽어도 건성건성, 영화를 들어도 건성건성, 혼자가 싫으면서도 사람을 만날 에너지도 없다. 그저 누가 우연히 알고 연락해서 위로해주면 좋겠다. 당연히 그럴 일은 없고.. 때와 시기에 대한 이유는 모르겠다.


온 몸이 후끈후끈, 열이 나는것만 같은데 재보니 36.7도. 아주 정상이였다. 갑자기 외로움이 물밀듯이 훅 몰려왔다. 힘없고 처지는 날, 정말 혼자 있기 싫어. 누군가의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을 받거나 그런 대화를 하고 싶다. 딱히 연락할 사람도 없고, 이런걸로 연락하긴 더 싫고. 오늘 택이는밤 11시에 퇴근하는데, 고작 오후 6시였다. 잠기는 목소리로 일하는 택이에게 전화해 괜히 컨디션이 안좋고, 외롭다며 징징대본다. 일하는 남편에게 외롭다고 징징대는 철없는 아내가 그래도 좋은지, 그는 지금 옆에 있어주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사과부터 먼저 한다. 말문이 탁 막힌다. 그의 무해한 다정함은 항상 이기적인 내 입을 막는다.


인스타에 감정 배설 같은 글을 끄적거리다가, 좀 더 잘 까 하는 찰나에 '아 오늘 목글데이지-'라는 생각이 스친다. 나는 목요일마다 글을 써서 공유하는 스터디를 한다.  '그래 이런 날은 뭐라도 하는게 낫지' 싶어 pc를 키고 브런치를 연다. 나는 글쓰기 전에, 먼저 브런치의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3개 이상 선플을 다는 루틴이 있다. 오늘도 남들의 글을 먼저 읽는데, 메타가 커피기계에 돈을 투자했다는 글을 읽는 와중에 또 눈물이 터져 낯선 스타트업의 이름을 읽으면서 서럽게 운다. 캡슐커피기계가 핸드드립을 해준다는게 이렇게 슬픈 이야기인지.  '아, 마음이 어딘가 고장나도 고장이 났구나' 싶다.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요즘의 일상은 사치스러울정도로 나만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임신이라는 특혜속에 아무도 나를 거슬리게 하지 않고,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 어딜가도 좋은 소리만 듣고, 뭐든 피곤하다면 쉬면 된다. 물론 이후 돈과 커리어에 대한 욕심과 고민이 있긴하지만 그거야 뭐 당장의 일은 아니다. 임신때문은 아니고, 원래 가끔 이렇게 고장나서 감정의 바닥을 드러내곤 한다. 다행이 하루이틀이면 사라지는 감정이라, 매번 충만히 느끼고, 최대한 다독여 보낼 뿐이다. 이런게 매일 지속되면 그게 우울증이겠지. 우울증환자들은 진짜 어떻게 살까 싶다. 다른 일들에 집중력이 너무 떨어진다.


울고, 눈물을 닦고 다시 글을 쓰는데도 몇 번이 터져 계속 운다. 그냥 이유가 없다. 오늘 자기 전까지 몇 번 더 터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뭔가 할 일이 있는게 훨씬 낫다. 그렇지도 않은 날엔 시간이 너무 오래 가고, 감정을 써야 하는 일엔 이입이 안되서 진행이 안된다. 이유없이 눈물나는 날엔 나는 그냥 이렇게 한다. 맛있는걸 최대한 많이 먹고, 꼭해야하는 일들을 미루지 않고 하고, 그냥 최대한 감정에 빠져있는거다. 그러면서 이 감정을 보내버리는거다. 


예전에는 이럴때 친구를 만나서 놀기도 했는데, 징징대는 내모습이 영 별로기도 하고, 내 잠깐의 감정을 친구들은 오래 기억하기도 했다. 남편이야 가족이니까 이런 추한 면까지 오롯이 보일 있지만, 친구들은 무슨 죄길래, 내 기분이 별로 라고 와서 위로해줘야 한단 말인가. 밖의 사람들은 좋은 모습만 보이기도 바쁘다. 이런 스스로도 별로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그래도 내 감정을 명확히 정리해보니까 훨씬 시원하다. 아마 우울증까지는 아니고 우울감일것 같다. 이럴땐 그냥 아예 감정이 배제된 컨텐츠를 보는게 훨씬 났다. 수치적인 글이나 통계적인 일들.. 그래서 오히려 영화난 드라마를 더 보지 않는 편이다. 오늘은 그런 생각도 했다. 차라히 내 문제가 완전 바닥을 보이면 좋겠다고. 그래서 문제들을 해결할만한 에너지를 억지로 내고 싶다고. 지금은 살만하니까 내가 내 문제들에 집중해서 해결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근데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곧 바닥을 보일 문제들이 있다. 아직은 기우는 중. 그게 완전히 바닥에 닿는다면 또 해결하려 어찌저찌 용을 쓰고 있겠지. 가끔 생명력은 그런곳에서 나온다. 그럴땐 우울할 시간도 없다. 우울도 사치다 진짜로. 어쨌든 내가 그 문제들을 해결하게 되면 또 과정을 남기겠다. 오늘은 일단 오늘을 해결하는데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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