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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May 22. 2024

조리원에서의 11일

바쁘디 바쁜 조리원에서의 루틴

드디어 천국이라는 조리원으로 이동했다. 일단 병실에서는 너무 더웠었는데, 방이 서늘하고 큰 창이 있어서 시원하니 좋았다. 원한다면 에어컨도 틀라고 했다. 침대도 일반 침대로 바뀌고 방도 훨씬 넓어졌다. 테이블이랑 의자도 두개나 있었다. 아 훨씬 살만하겠다 싶었다. 신생아실을 가려면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했는데, 그거말고는 정말 단점이 하나도 없었다.


입소하자마자 짐을 풀고 방을 둘러봤다. 드라이기도 있고, 화장대도 있고, 방도 넓고 시원해서 참 좋다고 남편과 입을 모았다. 조리원이 그렇게 천국이고 바쁘다는데.. 내심 궁금해하며 조리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세 번 밥이 나오고 하루에 세 번 간식이 나왔다. 제 시간에 먹고 치우는 것만해도 꽤 일이 되었다. 하루 에 정해진 모자동실 시간에 최소 두시간은 아이와 함께 있어야했다. 그게 꽤 기대됐다.


신생아실에가니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하루에 하나씩, 내용은 교육도 있고 피부레이저도 있고 사진 찍어주기도 있고 다양했다. 물리치료실과 찜질방도 하루 한 번씩 이용할 수 있었고 골반교정기계와 땀을빼주는 기계들도 있었다. 또 분유, 기저귀 회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조리원에서는 한 번의 전신마사지와 두번의 가슴마사지가 무료로 제공되었다. 가슴마사지는 병원에서부터 추가해서 연속으로 받던 상황이였고 첫날, 전신마사지 날을 잡자는 전화가 와서 당일 하게 되었다.


산후조리원의 꽃이라는 전신마사지.  태어나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남의 손에 마사지를 받아봤다. 일단 땀을 있는대로 흘리니 개운하고 시원했다. 마사지사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고, 기본 말고 다양한걸 추가해서 받아보고 싶기도 했다. 놀랍게도 다음날은 1~2키로 사이가 빠져있었다. 추가해서 루미너스인가 뭔가도 받고 돔형식으로 기구까지 받으니 온 몸에 땀이 뻘뻘 나고, 시원하고 개운했다. 몇번 더 받고 싶었는데, 한 번 받는 값이 한 달 요가값이였다. 다 이때 아니면 언제 받냐고 많이 받으라는데, 그래도 한 달 요가가 훨씬 붓기가 많이 빠지겠지.. 싶어 참았다.


내가 있던 조리원이 전신마사지가 유명한 곳이기도 했고, 사실 어디든 효과가 그렇게 좋아서 돈만 충분하면 10회를 받고 가는 사람도 많다. 나는 임신때에도 몸무게가 7키로만 찌고, 붓기가 많이 있지 않아 두 번만 추가해서 총 세 번을 예약해서 연속으로 받았다. 나정도면 언제 빠져도 빠질 붓기긴 했다. 그런데 20키로가 넘게찌거나 딱 봐도 통통통 부어있는 산모의 경우에 연속으로 받으면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작아져서 보는 내가 다 신기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모유수유를 하면 돌아서면 허기져서 집와서 어차피 엄청 먹는다는거. 또 신생아가 통잠을 자지 못하기때문에 잤다 깼다 먹다를 반복하다보면 다시 붓기가 오른다는 걸..


기능상 중요한 마사지는 통곡마사지다. 통곡마사지는 아픈게 아니라 애린 느낌이다. 회당 가격이 높긴 했지만 이건 꼭 필요한 마사지라, 전문가님이 필요하다는만큼 받았다. 전문가님은 모유량이 적은건 아니라고 했는데 유축을 하면 다른 산모들보다 확연히 작았다. 집에 와서 모유를 먹여보니 그래도 마실때는 꿀떡꿀떡 소리가 잘 난다. 지금은 분유보충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마사지를 따로 받지 않고 손으로 빼고는 했다는데, 셀프로 하거나 남편이 해주면 아파서 절때 이만큼은 못 뺀다.. 사실 방법도 잘 모르고. 모유가 쭉쭉 나오는걸 눈으로 보니 신기하기도 하다. 이 마사지는 모유수유 내내 문제가 생기면 다시 받으러 갈 참이다.


이 외에도 사진관에서 사진작가가 와서 아가랑 내 모습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신생아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중간에는 허리가 아파서 물리치료를 매일 받으러가 기곧 하고, 하루 두번 이상은 30분씩 걷기도 하고, 내 전시회가 별로 남지 않아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3시간 텀으로 유축을 하기도 하고 부족한 잠으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남편이 오면 대화를 하기도 하고, 모자동실도 하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온열기계도 사용하느라 원래 부지런한 편인데도 정말 바빴다.


조리원에서 내 하루 일과를 소개하자면 일단 새벽 3~4시경 일어난다. 임신 중후반부터 꼭 이 시간에 깬다. 그래서 아래 신생아 실로 내려가서 몸무게와 혈압, 온도를 재고 마스크팩을 붙이고 휴대폰을 하며 골반 온열교정기를 20분 한다. 그리고는 반신욕기계로 이동해서 1시간동안 반신욕을 하면서 책을 읽거나 블로그에 글을 쓴다. 보통 반신욕을 하는 중이나 끝나고 나서 나를 찾으러 오면 아이에게 수유와 분유보충을 한다. 나는 새벽 4시이후부터 수유콜을 받았고, 이 시간만 개인적인 시간이기에 정말 알뜰살뜰히 쓰고 싶었다.


아이에게 수유를 하고는 방으로 올라와서 어제 남긴 저녁 간식을 먹고 유축을 하고 한 숨 잔다. 일어나면 보통 8시쯤 된다. 그러면 나오는 아침밥을 먹고 40분을 걷는다. 청소 아주머니와 친해져서 비밀리에 직원들이 쓰는 옥상을 쓰게 해주셔서 밖에 바람을 맞으면서 걷는다. 물론 레깅스와 양말은 단단히 신어야 한다. 그러면 몸에 좀 땀이 난다. 9시쯤 샤워를 하고 괄사를 하고 입었던 옷을 내놓고 드라이기를 한다. 이때가 하루 중 제일 기분이 좋았다. 씼고 머리말리는게 뭐가 그리 즐거웠던지. 물론 집에 온 지금은 머리를 이삼일에 한 번씩 간신히 감고 있다.


그러면 곧 청소 이모님이 온다. 방을 정리해주시면서 간단한 수다를 떨고 아침 간식이 오면 맛있게 먹는다. 또 한번 수유콜이 오면 내려가서 수유를 하고 유축을 한다. 마사지가 있으면 마사지를 받고, 아니면 책을 좀 읽다보면 벌써 점심밥이 온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거나 마사지를 받으러 간다. 혹은 교육을 받으러 간다. 그러면 또 수유콜이 오고, 내려가서 수유를 하고 다른 동기들과 수다도 좀 떤다. 그리고 올라오면 점심 간식이 있다. 맛있게 먹고 낮잠을 조금 자고 일어나면 벌써 저녁시간. 저녁밥이 나오면 먹고 아이를 데리고 모자동실은 한다. 저녁에는 보통 남편이 들리니까 함께 아가를 보고,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왔는지 확인하고, 남편이 사온 간식을 먹기도 한다.


첫 주는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둘째주는 별로 없어서 오후 2시쯤 모자동실을 데려오는 일도 많았다. 이때 아이는 살도 별로 없고 거의 잠만 자느라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게 내 몸에서 나온게 맞나 싶게 신기하고 예뻤다. 누구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는 불완전한 외모였지만 우린 서로 나를 닮았다 우겼다. 아이의 존재는 처음부터 내리 예쁘기만 했다. 근데 아직 가족이라거나, 내 아기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저 생경했다. 하루 중 긴 시간을 떨어져있어서 더 그랬다. 언제 포동히 살이 올라 말을 할까 싶었다. 만지기도 조심스러웠고 하품 한 번도 신기했다.  


아이가 깨면 귀저기를 갈고 수유를 하고 분유보충을 하고 트름을 시키면 바로 잔다. 가끔은 눈을 말똥하게 뜨고 놀기도 한다. 그러면 또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고 같이 놀아주느라 바쁘다. 물론 곧 잔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유를 먹이는데도, 트림을 시키는데도 아주 조심스러웠고 꽤나 오래걸렸다. 8시까지 의무 모자동실 시간이지만 아이가 신기해 한참 보고 있다보면 벌써 시간이 9시에서 10시가 된다. 나도 잠이 쏟아져 아이를 데려다주고 잠에 든다. 


당장 집에 가면 아이는 어쩌나 싶어, 다양한 유튜브를 보느라 바쁘다. 다들 조리원 동기를 많이 사귄다는데, 나는 대화는 많이 했으나 연락처는 한 명만 주고받았다. 그 이전에 비슷한 출산시기라고 소개받은 언니 한 명, 원래 지인중에 임신중인 언니가 두 명, 친구가 두 명 있고 아이를 계획중인 친구들도 꽤 있다. 아파트에도 두어명 있는듯 하다. 이정도면 용띠클럽은 충분한 것 같다. 또 아이가 크면서 문센다니고 어쩌고 하면 또래 어른들은 많이 만날듯 싶다. 조리원에서 다른 분들도 때대면 어짜피 만날듯 싶어서 따로 연락처를 주고받지는 않았다.


조리원을 나올때쯤은 모자동실 시간을 줄였다. 이젠 여유있을 시간이 정말로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개인시간을 조금 길게 가졌다. 아이에게 당장 필요한 물품들을 서치하기도 하고, 영상을 보며 육아 공부를 하기도 하고,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할 것들이 많아 시간은 빠르게 갔다. 천국이라는 조리원 생활이 끝나갔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짐을 챙겨 퇴소했다. 조리원 생활도 새롭고 재밌었고 사람들도 너무 좋았지만, 막상 집에 오니 집이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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