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영 Nov 13. 2020

건강하게만 자라고 있습니다



 오후 7시. 집 밖으로 어둠이 짙게 깔렸다. 초저녁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 농도에 어김없이 압도되지만, 동시에 안정감을 느낀다. 오늘 하루도 참 느슨하고 알차게 흘러갔다. 도시에서는 이제 무언가를 시작할 시간이던가? 나의 일상은 어느새 자연의 속도에 발맞춰 걷는 것이 익숙해져 하루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지금, 제주도에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도시에서의 시간은 순전히 일의 효율 위주로 흘렀다. 오늘로 연장된 어제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온 신경이 그곳에 가있곤 했다. 끼니는 늘 뒷전이라 내가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김밥이었다. 쉽게 사서 빨리 먹을 수 있어서다.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기도 했다. 김밥보다 더 쉽게 사서 배를 채울 수 있으니까. 맛있는 커피가 아니고서야 커피를 즐기는 편도 아닌데, 업무에 몰입하기 위해 쓰거나 단 커피를 위에 밀어 넣기 일쑤였다. 그렇게 1분 1초도 버리지 않았건만, 일은 늘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영영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자주 생각했다. 하루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되어서야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면, 그곳은 오로지 씻고 잠 자기 위해서만 기능했다. 그곳에서는 밥을 해먹은 적조차 없었다.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순전히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만년 사회 초년생 같은 직장 사춘기를 어떻게든 이겨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하다가도 달리러 나가야 했다. 나는 주로 점심시간을 활용해 회사 앞 올림픽공원을 달렸다. 물론 식사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말이다. 일주일에 세 번, 단 한 시간 만이라도 요가를 하기 위해 퇴근을 사수하기도 했다. 그 세 번조차 지켜지지 않으면 뭔가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날 것 같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삶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마치 나뭇가지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는 낙엽처럼. 그런 강인함은 어딘지 모를 애처로움 같은 게 있다. 그때의 나는 보기에 건강해 보였겠지만, 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제주에 오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여긴다. 내가 나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때면 특히 그렇다. 이를테면 아침에 눈을 떠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매트 위에 앉아, 깊고 충분한 호흡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그날의 기분과 어울리는 음악에 맞춰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플로우를 이어나가다 보면 경직돼 있던 근육이 서서히 마음을 연다. 내가 원한다면 머물고 싶은 곳에 더 머물 수도 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환희에 차, 그것을 느끼며 한참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렇게 내 몸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충만하고 상쾌한 하루의 시작이다.

 요즘은 매일 요리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장을 보면, 유기농 식재료가 냉장고에 가득 찬다. 신선한 재료를 아끼지 않고 하는 요리는 그게 무엇이든 맛이 없을 수 없다. 나를 위해 한 시간만 투자해도 이렇게나 활력을 얻을 수 있다니. 이전엔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요가 후 먹는 음식은 특히 더 생기를 불어넣는다. 어느 들뜬 저녁에 밑반찬까지 만들어 두면 마음마저 든든해진다. 

 집에서 밥 해 먹는 것도 놀라운 일이겠지만, 나 아닌 생물이 집에 사는 것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라워할 만한 일이다. 책임에 대한 강박으로 살아있는 건 그게 무엇이든 내 삶에 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나는, 지금 푸른 식물 둘과 함께 산다. 극락조와 화이트 오크. 이 친구들의 잎사귀를 볼 때면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워 실없이 미소 짓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흠뻑 주는 일이 내 몸을 씻는 것만큼이나 기분 좋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땐 차로 10분 거리의 바다로 향한다. 특히 해가 기울어질 즈음의 바다를 좋아한다. 태양이 수면 위로 비쳐 반짝이며 일렁일 때면 여지없이 황홀경에 빠진다. 몇 번이고 넋을 잃다 정신을 차리고는 문득 또 생각한다. 역시, 제주도는 참 좋다고. 그렇게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을 필름 카메라에 담곤 한다.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시는 할머니를 눈에 담기도 한다.



 

 물론 이곳 생활이 누구나 꿈꾸듯 완벽한 모습일 수만은 없다.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수없이 많은 부분들이 불편할 수 있다. 섬이라 그렇고, 내가 사는 곳은 제주도에서도 특히 외진 곳이라 더 그렇다. 수입은 또 어떤가. 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과는 비교하기 안쓰러울 정도의 연봉을 받고 일하니, 이건 파격, 아니 격파 수준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부분의 불편은 불평 없이 감수하는 성격이라 아직까지 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 동네가 깜깜해 밤이면 무섭지 않냐고 많이들 묻는데, 생각보다 밤에 혼자 있는 게 무섭진 않다. 어차피 집 밖을 걸어 다닐 일이 없기도 하고. 하물며 집 앞이 공동묘지라 누군가의 조상님들이 지켜주시는 기분마저 든다면,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오히려 오싹할까. 반토막 이상 난 수입도 아직까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체 소비에 관심이 없으니까. 수입이 적은 대신 업무 시간을 줄여 내 시간을 확보했으니, 내겐 그만한 복지도 없다. 일을 하다가 파도가 좋으면 보드를 차에 싣고 서핑하러 갈 수 있는 환경이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나는 나의 공간에서 나를 들여다보며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 건강하게만.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 서퍼로 산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