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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Dec 31. 2021

2021을 보내며

 까만 , 까만 . 소리 없이 적막이 내려앉은 거실에 앉아 초에 불을 붙였다. 촛불에 숨이 닿아 희미하게 일렁이는 모습을 나는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림자는 길어졌다 짧아졌다 했다.  율동이 작지만 생동감 넘쳐 한참을 구경했다.

 시내에서 잔뜩 사 온 크리스마스 카드와 편지지를 촛불 앞에 펼쳐놓았다. 소중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늘어놓았다. 올 한 해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을 틈틈이 필름 카메라로 담았던 참이다. 그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인화해두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진을 보며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 친구들의 사진 속엔 2021년의 계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동안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며 편지를 써내려 갔다. 어떤 이는 나와 너무 닮아서, 어떤 이는 나와 너무 달라서 함께 나누는 시간의 농도가 제각기 짙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누군가와 밀도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며 대화를 나누고, 상대를 바라보고,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여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신을 여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당시의 내가 그들과 동시간에 여행을 즐겼다면, 편지를 쓰는 나는 또다시 그때의 감정을 정리하며 여행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놀랍도록 뜨거운 촛불 하나가 가슴속에 일렁이며 춤추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편지를 쓰는 내내 나는 20대의 내가 되었다가, 그보다 훨씬  어린 시절의 내가 되었다가, 올해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되었다. 또 머잖은 미래의 내가 되기도 했다. 편지의 수취인. 그들은 사랑이었다. 그들은  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알았다.


 꾹꾹 눌러쓴 편지를 접어 사진과 함께 봉투에 담았다. 편지를 쓰며 보낸 이틀. 그 뜨겁고 고요한 여행은 한 해의 마무리로 더할 나위 없었다. 어떠한 파티보다도 올해의 나를 있게 한 사람들에게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편지를 받은 수취인들에게도 부디 잠시나마 행복한 여행이었길 바란다.





 2021년의 나는 알아간다. 내가 제주에 머물게 된 이유에 대해. 제주가 내게 준 ‘시간’이라는 선물의 의미에 대해. 그것은 나를 알아가기 위한, 타인을 알아가기 위한, 그리하여 타인을 통해 또다시 나를 알아가기 위한 소중한 기회라는 것임을.

 시간은 내게 자꾸만 묻는다. 내게 있어 ‘사랑’은 무엇이냐고.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더 알고 싶지 않냐고. 나는 시간에게 답한다. 나의 언어와 나의 몸짓으로, 사랑의 형태를 표현한다.


 2021년은 내게 사랑이었다.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2021년을 보낸다. 사랑하는 마음 듬뿍 담아.

 

 






2021 제주 봄



2021 제주 여름



2021 제주 가을



2021 제주, 그리고 다시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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