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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Dec 08. 2024

어쩌다 요가 강사

  IT기업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휴가차 떠났던 우붓에서 우연히 요가를 만나 줄곳 취미로 요가를 이어왔다. 사실 취미라기보단 살기 위한 발버둥에 가까웠지. 낮밤 없는 업무와 취침의 틈 사이, 어떻게든 삶을 버티기 위해 요가를 끼워 넣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일할 때와 마찬가지로 요가할 때에도 어려운 아사나(요가 자세)를 해내기 위해 스스로 몰아붙였다. 특히 야근 후 마지막 수업에 가까스로 출석하는 날이면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요가원에 홀로 남아 그날 가장 어려웠던 아사나를 몇 번이고 다시 해보곤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온 하루를 일로만 가득 채웠다는 사실이 어쩐지 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5분~10분씩 나머지 수련을 하는 내가 선생님 눈엔 예뻐 보였나보다. 청소를 하다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시고 자세에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핸즈온(학생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는 것)을 해주기도 하셨다. 덕분에 목표하는 아사나에 조금씩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다그치는 것에 가까웠던 수련은 곧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리트릿(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평온한 상태에 이르는 것/또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히 만난 포레스트 요가(Forrest Yoga)는, 그때까지 내가 경험했던 요가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리트릿을 지도하신 포레스트 요가 가디언 예신희 선생님과 예수일 선생님께서는 힘을 잔뜩 주고 어떻게든 아사나를 해내려는 내게 오히려 힘을 빼라고 하셨다. 삶의 궤적을 닮아 경직돼 있던 내 몸에 가만히 손 대시곤 아무 말씀도 없이. 선생님들께서 함께 호흡해 주셨을 때에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4박 5일의 리트릿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게 내 몸과 마음을 관통했다. 당시 제주에 살고 있던 나는 선생님들이 떠나신 후로도 줄곧 포레스트 요가를 잊지 못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게 필요한 건 자세 안에 나를 끼워 넣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진정으로 돌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로부터 얼마 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포레스트 요가 지도자 과정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직장을 관두고 포레스트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기로 마음먹었다. 선생님들께 수업을 자주 들을 수 없으니 혼자서라도 포레스트 요가를 수련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한국 포레스트 요가 선생님들은 미국이나 발리, 그리스 등 해외에서 영어로 과정을 수료했어야 했다는데 우리말로 배울 기회가 열렸다니, 놓칠 수 없었다.

 사실 내 인생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터라 요가 지도자 과정에 대해 알아본 적은 없었다. 이제와 찾아보니 대체로 요가 철학이나 호흡법, 아사나, 해부학, 수업 구성 방법과 지도 방법 등을 배우는 듯하다. 하지만 포레스트 요가 지도자 과정에서 내가 배운 건 이론이나 기능적인 부분만이 아니었다.


 포레스트 요가 지도자 과정에서는 자신의 신체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트라우마를 뿌리 깊게 바라보게 한다. 맹렬한 수련을 하다 보면 수면 위로 감정이 떠오르는데, 그 이면에 침잠해 있던 과거의 내 모습을 파헤치는 것이다. 고통스러웠다. 태어나보니 이미 정해진 가난과 가난보다 더 비극적인 부모님의 갈등, 그 속에서 보호받지 못 한 어린 나를 절망으로 밀어던졌던 잊을 수 없는 사건들. 그로 인해 형성된 나의 성격과 성향까지 모두 꺼내어 봐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그것을 대면하고 함께 과정을 통과하는 교육생들과 용기 있게 나누는 순간, 마침내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있는 힘껏 애써온 내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나를 몰아붙이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안아줘야 할 때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안전한 그룹 안에서 서서히 경계를 풀고 서로를 알아가자 타인의 신체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신체에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여느 요가 지도자 과정과 달리 매트 위 사람을 먼저 보게 하는 이유를 포레스트 요가의 창시자 아나 포레스트(Ana T. Forrest) 선생님의 저서 <피어스 메디신>을 읽고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소아마비로 태어나 하반신을 쓰지 못했던 아나 선생님은 유년시절 가정에서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그녀는 각종 중독에 빠져 급기야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더는 지옥에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구렁에 떨어진 자신을 구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길에 요가가 있었다. 하지만 남다른 신체 조건과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오는 통증을 기성 요가만으로 극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통요가를 기반으로 자신의 신체를 더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요가를 고안했다. 그것이 바로 포레스트 요가다. 아나 선생님은 자신처럼 신체적, 정신적 상해를 입은 현대인들에게 이 요가를 알리기 시작했다.


 "Mending the hoop of the people". 이 시적인 표현을 한글로 건져 올리면 "사람들의 (끊어진) 고리를 다시 잇다"정도가 되겠다. 아나 선생님의 정신을 담은 이 비전은 예신희 선생님과 예수일 선생님, 어시스트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지도와 사랑으로 실체가 되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나 하나 제대로 돌보기 위해 도전한 포레스트 요가 지도자 과정은, 결국 200시간의 여정으로 말미암아 나 또한 더 많은 이들을 돕기로 마음먹는 계기가 되었다. 그 길로 나는 제주를 떠나 강원도 정선으로 이주해 포레스트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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