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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잎클로버처럼 Feb 03. 2023

따뜻한 추억, 제주 한 달 살기 1

첫 번째 제주 라이프

"애들아~ 제주도 갈래? 한 달?"

"한 달이나요? 누구누구 가는데요?"

"우리 가족 함께 가는 거지. 아빠는 첫 일주와 마지막 일주만 함께 있을 수 있고 중간 기간에는 집으로 돌아가서 회사에 가야 하지만."

"좋아요~! 예~~~~ 제주도 간다.^^."


몇 년 동안 미루었던 버킷리스트. 한 달 살기.

코시국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시간들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마음들. 그렇게 제주도 한 달 살기가 계획되고 실행되었다. 


2021년 여름.

여행이 아닌 살기가 시작되었다. 

제주 자연의 푸름과 싱그러움을 만끽하고 땀 흘리며 누볐던 그 시절 그 때를 회상해 본다. 


한 달 살기의 제주 일상은 느슨하다. 제주를 몇 번이고 다녀왔지만 빼곡한 일정들로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제한된 시간으로 인한 아쉬움이 컸던 짧은 여행에 비해 한 달 살기는 또 다른 경험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아이들에게도 유익한 시간이 되고자 일주일에 몇 번 은 스스로에게 여행 계획을 짜도록 했다. 기억을 뛰어넘는 소중한 기록이 되고자 매일매일 사진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정리하도록 했다. 제주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 틈틈이 제주에 관련된 책도 읽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학습만화를 읽기도 했다. 


숙소에서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해변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중 애견을 동반한 견주들의 해변산책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 아이들이 개에게 관심을 보이자 견주들은 기꺼이 아이들이 만져보고 놀도록 허락해 주었다. 애견을 우리 아이들에게 잠시 내어 주고 캠핑의자를 챙겨서 해변에 앉아 모닝커피와 함께 휴식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찾았다. 제주감성~! <제주스러움, 여유로움>


제주에서 아들의 육지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특별한 인연으로 알게 된 지인을 우연히 제주에서 만나서 일정을 공유하기도 하며, 우연이 가져다준 뜻밖의 선물에 신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제주에서 경험한 무지개 빛깔 여러 가지 경험들을 떠올려본다. 



해 뜰 녘부터 해 질 녘까지 해변을 즐기다

시원하게 협재 바다를 가로지르는 보트 타는 사람, 해변 앞에서 저마다 인생샷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찬찬히 구경한다. 참방참방 물만 있으면 되는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이 보인다. 파도풀 타며 튜브에 의지해 물속에서 빙빙 돌기 고수가 되어가고 있다. 스노클링을 하면서 이름 모를 물고기 떼를 찾아다니며 스노클링의 재미를 알아가게 된다. 문어도 잡는다는 말을 듣고 여러 차례 문어잡기에 도전하지만 번번이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금게(모래게)도 잡는다. 모래 놀이를 하다가 이내 모래에 파묻혀 모래찜질을 즐기고 있다. 따끈하고 보드라운 모래의 촉감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석양아래 인생샷 찍기에 도전해 본다.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않고 딱 우리의 몫만큼 즐긴다. 


특별한 인연들과 우연히 만나다

<세영드림> 작가님의 글쓰기 프로젝트 <캐미글쓰기>에서 만난 글벗님의 가족과 제주에서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상냥한 그녀의 가족 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클라이밍에서 거침없이 도전하는 동갑내기 친구에게 좋은 자극도 받고, 상냥한 친구에게서 연날리기는 법을 배운다. 살짝 달리면서 공중으로 연을 띄운 후 실을 풀어주면서 높이 높이, 바람을 타면서 밀고 당기는 법을 배운다. 땀 한 바가지 흘려도 즐거운 시간이다. 교회 공동체 모임에서의 동갑내기 친구네 가족도 만났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과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주는 기쁨을 느낀다.  친구와 함께 브릭캠퍼스를 누비며 브릭 한 움큼으로 세상을 만드는 그 창의성에 감탄을 하며, 알차고 즐거운 만남으로 더 빛나는 하루를 보낸다.

 

제주의 아픔을 공감하다

제주에 오면 꼭 한 번은 다녀가보고 싶었던 곳, 43 평화기념관. 아이들에게 재미보다는 의미를 위한 욕심에서 계획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깊게 들여다봤으면 했다. 설민석샘의 <제주 43 사건> 유튜브 영상을 보고 가서 도움이 되었다. 뼈아픈 제주 43 사건에 희생자들에 대한 응원메시지를 적으며 숙연하게 임한다. 제주 43 평화관에서 숙연하게 잘 참여해 줘서 고마웠다. 제주의 아픈 삶을 간직한 <무명천 할머니>의 삶터도 방문했다. 무명천 할머니의 본명은 진아영, 제주 43 사건 당시 아래턱에 총상을 입은 후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내 이름은 진아영. 삶터, 오늘을 기록하고 기억하다> 잊지 않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록하는 공간이라는 말이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


한여름에 마라도 탐방을 다녀오다

한여름에 겁 없이 마라도탐방을 도전한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 마라도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 백만 번을 한다.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것도 잠시, 강렬한 햇볕으로 금방 기진맥진했던 우리들. 한여름에 꼬북이 털인형을 안고 온 딸은 아빠 등에 업히고, 땀으로 만신창이가 된 아들이 터벅터벅 걸음걸이가 안쓰럽다. 마라도 인증샷 겨우 남기고, 마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톳 자장면과 아이스크림으로 위로를 받는다. "다음에는 봄이나 가을에 다시 한번 와보자!^^!"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마라도는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이야!!!" 1박 2일 프로그램 보고 가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장소라고 했는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긍정적인 추억이 되길 바란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금오름을 오른다. 왕매에서 네잎클로버 찾으며 신이 났고 내려와서 한치빵 먹으면 신난 아이들. 오름에 오르는 것보다 한치빵 앞에서 행복한 아이들이다. 다이내믹메이즈에서 역동적인 체험을 하고, 드넓은 드루쿰다 성산에서 즐겁게 뛰어다닌다. 아이들의 엉뚱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카메라 영상에 담아보고, 함께 보며 깔깔깔 웃는다. 해설이 있는 환상숲, 곶자왈 탐방을 체험한다. 땀 흘리면서도 열심히 걸어 다닌 아이들이 참 이쁘다. 우리의 인생을 녹인 메시지들 가득 채운 숲 해설 덕분에 의미 있는 숲 여행이 되었다. 유리의 성을 걷는다. 물소리, 바람소리, 유리소리, 풍경소리가 있는 곳이다. 예쁜 풍경들을 찰칵찰칵 찍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살포시 찍어본다. 발길 닿는 데로 산책하여 금붕어 밥도 주고 인형 뽑기도 한다. 


자연 앞에 겸손해지다

수월봉 전망대에 도착한다. 화산이 남긴 멋진 자연경관 지질트레일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지질 공원이다. 화산섬인 제주를 상기하며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제주 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신창풍차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다가 근처에 주차하고 산책을 한다. 파란 하늘 아래 하얀 풍차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이다. 와~! 아름답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서서히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노을은 언제든 볼 수 있지만 해안도로 일몰을 정말 최고다. 자연이 위대하다. 이미 존재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가진 존재다. 하늘도 바다도 구름도 산도들도 나무도 그 자체로 보는 이 모두를 기쁘게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자신이 존재 자체로 눈부시다는 걸 알고 느끼면서 성장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스누피가든,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야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제주의 자연 속에서 사랑스럽고 위트 있는 피너츠의 따뜻한 스토리가 돋보였다. 인생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행복은 따듯한 강아지야."

"나는 여행의 위대한 힘을 믿어."

"탁 트인 곳으로 나오면 너의 삶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어."

"길을 잃었을 땐 너의 마음속 나침반을 따라가."


Learn form yesterday. 
Live for today. 
Look to tomorrow.
Rest in afternoon.
스누피가든에서, 피너츠의 말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바라보자.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

피너츠 에피소드에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 이야기가 담겨있다. 피너츠의 친구들은 눈, 비, 바람, 낙엽과 같은 자연환경과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성장한다. 그 이야기는 우리 인생과 닮아 있어서 위로가 된다. 피너츠의 인생 이야기와 제주 자연이 주는 가치를 연결해 주는 스토리텔링이 놀랍다. 잔잔한 감동이 되었던 시간이다. 





한 달 살기는 휴직 중 내 버킷리스트. '뭔가를 해야 한다~!'는 내 욕구에 정확이 맞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함께하는 시간에 차고 넘치는 의미들을 부여하기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제주 라이프가 우리에게 남긴 선물

제주 라이프, 한여름의 추억이 우리 가족에게 어떤 재미와 의미를 가져다주었을지 궁금하다. 


"자신에게 가장 특별한 보물은 뭐야?" 엄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이들답다.

"엄마, 아빠, 나, 오빠 우리 가족이요."라고 말하는 딸.

"내 마음이야."라고 말하는 아들.

나와 가족, 마음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아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많은 것에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많이 사색하면서 괜찮은 나를 발견하길 바란다. 


제주 라이프를 마칠 때쯤 아들의 말이다. 

"방학 동안 많이 놀았으니 이젠 영어와 수학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도 좀 해야겠다~!^^!"

이후, 아들은 수학학원을 최초로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제법 열심히 하는 듯 보인다. 제주 라이프가 공부 불꽃에 좋은 자극제가 되어 준 것 같다. 12살, 많이 컸네. 듬직하다.


제주 라이프를 마치고 와서 딸의 말이다.

"이거, 제주에서 내가 만든 거잖아", "이거, 제주에서 내가 해봤잖아", "여기, 제주에서 우리 같이 봤잖아", "여기, 제주에서 우리가 가본 곳이잖아" 일상의 많은 것들을 보며 제주와 연관 짓고 그 기억을 떠올린다. 7살 , 7살 답다. 귀엽다.


새로운 경험이 가져다준 선물이 크고 감사하다. 버킷리스트로 도전한 많은 경험들에서 작은 성공 블록들을 쌓았다. 생각했던 거와 다른 실제 경험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있었다.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보기엔 쉬워 보였는데(클라이밍 체험에서)."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이렇게 신비롭고 멋진 바닷속 세상을 눈으로 직접 보니 환상인데요.(스노클링 체험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으면서, 자신만의 관점이나 시선이 생겼다. 인생에서 중요한 메시지들을 발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우리 가족의 역사를 아름답게 채워가고 있었다. 


제주의 여름은 따뜻했고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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