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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Jun 08. 2020

 Track.62 끝이자 시작에서 봄날을 꿈꾸다

포르투갈 호카곶 Track.62 봄날 - BTS


2019.11. 15 (금)
포르투갈 호카곶 & 카스카이스
Track.62 봄날 - BTS 




여행의 목적이 되는 장소가 있다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피울 때까지.
- 봄날 -


지난 유럽여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묻는다면 나는 딱 하나의 사진 때문에 유럽에 오고 싶었다. 

바로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호카곶 사진이었다. 당시 4학년 1학기 기말고사 중 마지막 시험 전날 공부하다가 미래에 대한 불안, 배운 전공에 대한 회의감, 대외활동으로 심신이 지친 피로감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머리 속이 복잡하면 공부하고픈 마음이 사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 핸드폰에서 여행 글만을 보고 있을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여행 블로그에서 본 호카곶 사진이 뇌리에 꽂혔다. 


"시작과 끝이 만나는 지점, 호카곳"

시작과 끝이라는 대척점이 만나는 장소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런 아이러니함은 여행지의 매력으로 느껴졌고, 호카곶은 내게 관광지가 아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수행장소로 다가왔다. 이러한 이유로 호카곶은 지난 유럽여행의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첫 유럽여행 중에서 호카곳을 접한 감정은 잊지 못할 감정이었다. 여행의 계기가 된 장소에 발을 딛는 순간에 몸으로 느끼는 감정을 형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감정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감정이었다.


지난 유럽여행에 이어 이번 유럽여행에서는 다른 감정과 다른 지역이 여행의 계기가 되었지만, 적어도 리스본 여행만큼에서 여행의 계기는 호카곶이라는 목적은 변함없었다. 평생 잊지 못할 감정, 그 감정을 다시 느끼러 나는 호카곶을 향한 수행의 여정을 떠났다.




대륙의 끝, 바다의 시작



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 포르투갈 시인 카몽이스 -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이스는 호카곶에 위 문구를 새겼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문구는 이 곳, 호카곶을 칭한다. 시작과 끝의 지점에서 마디를 채워나가는 여행을 하는 내게 가장 적합한 장소가 아닌가 싶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의 나라 한국에서 온 작은 소년은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의 나라 포르투갈에서, 그것도 가장 서쪽 끝인 호카곶에 이르렀다. 


바람은 거세게 불고 파도는 세차게 몰아친다. 

뜨거운 태양은 고고히 높이 올라 빛을 내리쬔다. 

바다는 끝없이 펼쳐있기만 하다.


한 때 세상의 끝이라 칭하던 이 곳은 사실 자연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그저 흔하디 흔한 절벽으로 이뤄진 곶일 뿐이다. 하지만 자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호카곶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리가 땅 끝에 주목하는 이유가 뭘까요?"

인간은 '땅 끝'이란 장소의 특수성에 의미를 부여한다. 해남의 땅끝마을,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그리고 오늘 도착한 호카곶까지. 땅 끝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인간은 어떤 의미를 땅 끝에서 찾는 것일까? 


땅 끝은 말 그대로 땅의 끝, 대륙의 끝이다. 땅 위에서 사는 사람으로선 땅 끝은 더 이상 사람이 나아갈 수 없는 한계점을 의미하게 된다. 또한 사회적인 존재인 사람으로서 땅 끝은 권력, 재물, 힘에서 멀어져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기 힘든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인지하게 하는 장소가 땅 끝이었던 것이다. 자연에게 있어서 땅 끝은 아무런 의미없는 하나의 공간이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땅 끝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한계를 눈으로 확인하는 장소였다. 


자연의 시간에 마디를 나눠 일, 월, 연을 나누고, 자연의 공간에 의미를 두어 시작, 중심, 끝을 나눈다. 인간은 심심한 자연의 섭리에서 시작과 끝이란 마디를 두어 의미를 부여한다. 마디가 새롭게 시작하려면 기존의 마디가 끝나야만 하듯, 땅 끝이란 한계를 맞이한 인간은 새로운 시작을 하고픈 새로운 마디를 찾기 위해 땅 끝을 주목하는게 아닐까.




대륙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에서 봄날을 꿈꾸다


땅 끝에서 새로운 마디를 찾으라면 그건 땅 끝은 곧 바다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호카곶은 대륙의 끝이자 새로운 바다의 시작이라는 의의를 알리는 곳이다. 푸른 바다 넘어 새로운 시작이 있음을 이곳의 사람들이 알았듯이, 나 역시 현재 서고 있는 곳에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걸 깨달았을까. 거센 바다와 파도처럼 주어진 현실은 녹록지 않고,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이 더 앞선 시점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돛을 피고 항해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해봐야지만 알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그건 정말 마침점은 더이상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없다. 늘 그렇듯 새로운 시작 앞에선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의욕만 앞서다가는 마치 제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부서져버리는 파도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 나만의 항해를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 자신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다들 자신만의 항해를 하며 나아가는 걸 나는 어제도, 오늘도 지켜보았다. 누군가 해냈다는 건, 나 역시도 할 수 있다는 걸 반증하지 않을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누군가 먼저 갔다면 나 역시도 그를 따라 항해할 수 있다는 걸 말하지 않을까. 마음속의 나는 내게 계속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져왔다.




대륙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에서 봄날을 꿈꾸다


대륙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인 호카곶에서 나는 봄날을 꿈꿨다.

마디를 채우는 여행을 하러 호기롭게 떠난 나에게 호카곶은 여행이란 마디를 채울 마침점과 앞으로 새롭게 열릴 시작점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시작은 끝이 되고, 끝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된다. 

계속되는 반복의 굴레는 모든 삼라만상에게 해당되는 불변의 진리다. 

밤이 지나 아침이 되는 것처럼, 추운 겨울 끝을 지나면 꽃피는 봄이 오는 건 당연하듯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다면, 앞으로 다가올 봄날을 위해 견디는 시린 겨울이라 생각하겠다. 앞으로의 다짐과 결의를 푸른 바다와 거센 바람에 걸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엄포를 놓듯 바닷바람은 거셌지만 그래도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무지개가 하늘에 떴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바라보며 나는 언젠가 만나게 될 봄날을 꿈꾸며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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