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Mar 24. 2021

25. 영혼의 여정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받았던 죽음에 관한 질문 중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학 동아리에서 철학 공부를 할 때 후배가 던진 " 죽음 이후에는 뭐가 있나요?"라는 질문이다. 그때는 아무도 딱히 답변이 없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단순했던 시절에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는 아들애가 5살쯤에 교통사고 사망 관련 뉴스를 보다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엄마, 사망이 뭐야??"

"사람이 죽었다는 거야."

"근데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

"응? 글쎄...."


아들애의 질문은 한동안 집요할 만큼 이어졌고, 친척 장례식에 갔을 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이렇다 할 종교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 내가 답변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엄마가 답변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빠져서인지 어느 시점 이후로 아들애는 더 이상 죽음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받았던 기억조차 희미했던 질문들은 40을 넘어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죽음만이 아니라 삶에 관한 질문들도 올라오고 영혼에 관한 성찰도 시도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접한 것이 ' 죽음에 관한 가이드'라는 부제가 붙은 워크숍이었다. 가이드는 워크숍을 이수한 사람들만 할 수 있으며 직업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가이드는 죽음 이후 전환되는 과정을 느끼며 함께 하는 것으로 더 이상 연결감이 없는 상태가 3일 이상되면 종료한다. 진행하는 동안은 몇 가지 지켜야 할 중요한 지침들도 있다.  


아버지에 대한 가이드는 장례 기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한 시간, 총 11회, 약 2주 정도 진행했다. 


 가이드 초반에는 장례식장의 국화꽃을 쓰다듬으며 어디론가 휘적휘적 가는 모습과 고향 강변과 뒷산에 앉아 주변 풍광을 살펴보는 모습을 느꼈다. 이번 생애에 자신이 살았던 특별한 장소를 돌아보는 것으로 판단했다.

 

다음 단계는 본인 스스로 '레테의 강'이라 부르는 곳에서 한동안 몸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었다.  육신의 고통이나 회환 같은 것을 강물에 흘려보내는 느낌이었다. 이 모습은 여러 날 동안 감지되었다. 마치 온천욕이라도 하는듯한 상태였는데, 이 과정이 끝나고 나서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좀 더 찬란한 색으로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단계는 각자의 신념체계에 따라 만들어지는 영역이라고 들었다. 문학 지망생이었던 아버지에게 망각의 강이라 불리는 '레떼의 강'이 중요한 사후세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짐작을 했다. 


세 번째 단계는 마치 우주와 별들의 고향 같은 영역에서 머무르는 것을 느꼈는데, 가장 환상적이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아름다운 곳'이라는 감탄을 여러 번 하며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모습으로 고정된 형체가 아닌 유체로 흐르는 것처럼 변화된 것을 느꼈다. 이 단계에서 하루 정도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다음날 다시 연결이 되었다. 3일 이상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이드가 끝난 것이라고 했다.  


네 번째 단계는 강물이 흐르는 다리 같은 곳에서 환한 모습의 여러 존재가 마중을 나와있는 모습이었다. 다시 환생할 것이다라는 말을 전하고 다리를 건너가 그 존재들과 합류하는 모습을 느꼈다. 가이드가 동행하는 마지막 지점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작별을 하고 난 다음날부터 연결이 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진행한 가이드는 놀랍기도 하면서 이게 정말 진짜인가 싶기도 했다. 말 그대로 환상적인 영역을 꿈꾸는 듯했다.  워크숍 제목처럼 정말 드림워크(DreamWalk) 구나 싶었다.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뤘듯이 죽음 이후 영혼의 여정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경험은 삶의 스토리에서 빚어지는 온갖 감정이나 원망, 고통을 벗어난 지점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영혼과 동행을 했다는 자각이다. 이러한 자각은 그동안 내가 간직했던 아버지에 관한 부정적이거나 감정적인 상들을 흐리게 만들었으며, 전혀 다른 시선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었다. 


가이드가 끝나던 날, 거실 창 밖 난간에 전에 왔던 새가 다시 날아들었다. 한동안 앉아있다가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푸르디푸른 하늘을 향해 자그마한 소리로 말을 건넸다. 


" 아버지는 발을 땅에 딛고 사는 것보다 바람을 가르며 자유롭게 날아다는 것을 좋아하셨군요. 다음 생에는 꿈이 펼쳐지는 삶을 선택하시길 바랄게요. "


---------------------------------------------------------------------------------------------------------------------------

2019년 1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아버지에 관한 기록을 마칩니다. 


  





이전 24화 24. 엄마의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