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갑작스러운 한밤의 면회 이후 아버지 병동 간호사로부터 가족들 대기하라는 연락이 있었다.
"혈액 검사 결과 패혈증세가 있습니다. 지난 면회 때 보셨겠지만 환자분이 많이 좋지 않으시잖아요. 항생제를 쓰고 있지만 좋아진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언제든 연락하면 오실 수 있는 거리에 계시길 바랍니다."
핸드폰을 늘 손에 쥐고 있는 채로 하루를 보냈다. 가족들 간의 연결망은 더욱 촘촘하게 이어지며 이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머리를 기르고 있는데 파마를 하고 묶는 것이 더 나아 보일 듯하여 일 년여 만에 미용실을 다녀왔고, 눈이 내렸던 밤에는 산책을 했다. 아빠 허리에 끈을 묶고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울라프 눈사람을 만들고 신나게 노래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아버지와 눈 놀이를 했던 기억은 없다. 아마도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가신다면 펑펑 눈이 내리는 날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월 20일 - 21일
점심때 동생의 전화가 있었다.
" 언니, 담당 주치의와 통화를 했는데 오늘내일이 고비인듯하다며 원래 면회 금지이나 어쩌면 마지막 인사가 될지 모르니 가족들 모두 오라고 하네. 한 번에 2명씩만 된다네. 임종을 앞두고 있는 환자라 특별히 허가하는 거라고 했어. 임종을 못 지킬지도 모르니 미리 다녀가라는 것 같아."
가족들이 다시 병원에 모였다. 엄마와 막냇동생이 먼저 올라가고, 셋째와 내가 그다음으로 올라갔다.
호흡기를 쓰고 있는 아버지는 거칠고 힘들게 간신히 숨을 쉬고 계셨다. 눈은 감은채 두 손은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있었다. 아버지 손을 만져보니 온기가 별로 없었다.
주치의가 간호사와 함께 다가왔다.
"환자 분이 마지막 에너지를 모두 모아 호흡에 쓰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내일이 고비 일 듯합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가족 분들이 임종을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해 드렸는데 현재 코로나 상황에서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점 양해해주세요. "
5분도 채 안 되는 아주 짧은 면회가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른다기에 속에 있던 말을 아버지에게 전했다.
"아버지 이제 편하게 가셔도 돼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가시는 길 제가 잘 안내해드릴게요. "
가족들은 늦은 점심을 함께 하고 장례식장을 어디로 할 것인지 정하고, 화장과 이후 안치 장소는 장례기간에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했다. 오늘 면회를 못 온 둘째네에게는 동생이 문자를 보내고 엄마가 통화를 했다. 모두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엄마의 당부가 있었다.
저녁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술 한잔 생각이 간절했다. 평소에 아버지는 술을 참 좋아하고 즐겨 드셨다. 아버지 대신 내가 한잔 하기로 했다. 소주에 맥주를 섞어 마시고 한동안 창 밖을 바라보고 멍하니 있었지만 늦은 시간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가 돌처럼 굳어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에서는 누워있는다고 잠이 올리가 없다. 몸이 지치면 알아서 잠이 오겠지 하며 드라마 몰아보기를 했다. 눈이 지쳐갈 때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지났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도 여전히 잠이 들지는 않았다. 몸은 쉬고 있지만, 뭔가 정신은 깨어 있는 상태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 가족 분들 지금 빨리 오셔야겠어요. 도착하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여기서 30분 정도는 걸리는데 엄마 모시고 가려면 좀 더 걸립니다. "
"기다릴 테니 최대한 빨리 오세요."
막내한테 연락하고, 친정집 쪽으로 달려가는데 또 전화가 왔다.
"빨리 오셔야겠어요. 얼마 남지 않으신 듯합니다."
친정집 골목길 앞에서 엄마와 셋째를 태우고 병원에 도착하니 둘째네 부부는 이미 와 있었다.
2명씩만 올라갈 수 있고 직계가족만 된다고 했으니, 오늘도 사위들은 올라갈 수 없었다.
"우리는 어제 낮에 봤으니, 엄마랑 둘째가 올라가 봐!"
방호복을 엄마에게 입혀드리고 나머지 식구들은 1층에서 기다렸다.
2층으로 올라갔던 둘째가 내려와서 의사가 사망선고를 했다는 것을 식구들에게 알렸다.
" 2021년 1월 21일 오전 3시 55분 *** 환자분 임종하셨습니다. "
엄마와 둘째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내쉬며 이번 생을 마무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