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2일
2020년에서 2021로 숫자 하나가 늘어난 새로운 해가 되었다.
병원에서 별다른 소식은 없었고 여전히 면회는 금지된 상태에서 담당 간호사가 전화로 전하는 아버지의 상태를 들을 뿐이었다. 저러다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면 어떻게 되는 건지 막연한 불안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학 동기 중 하나는 엄마가 지방의 요양병원에 계셨고 본인은 수도권에 거주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면회 금지라 일 년 넘게 얼굴도 뵙지 못하고, 임종도 보지 못하고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환자와 보호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급한 상황이라고 연락을 받고 가도 여러 시간이 걸리기에 병원 관계자만 임종을 보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경우가 딱 그랬다. 안타까운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학 동기 톡방에서 남 얘기가 아니라며 모두들 안쓰러워했었다.
아버지 병원이 엄마 집 근처이고, 형제들도 30분 거리 이내에서 살고 있다는 물리적 가까움이 이럴 때는 안심이 되는 점이었다. 여차하면 바로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겠지만...
이런 예감은 늘 잘 맞았다.
바로 옆 단지에 사는 동생네 부부와 딸애랑 치맥을 하고 뭔가 어수선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멀리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정신은 덜 깨어 있어도 이 시각에 울리는 전화벨은 긴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몸이 먼저 알고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기 병원인데요. ***환자분 상태가 위중하니 면회를 하러 오시겠어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요?"
"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호흡도 매우 안 좋은 상태라 원장님께서 면회 금지 이긴 하나 급한 상황이니 가족들한테 연락을 하라고 하셨어요. 몇 시까지 오실 수 있나요?"
시계를 보니 2시 30분이었다.
"엄마 모시고 가려면 적어도 30분은 걸릴 것 같은데요."
"도착하시면 담당 간호사에게 전화 주세요. 1층 입구에서 방호복 입고 2분씩만 5분 이내로 면회 가능하도록 주선하겠습니다. "
"네. 도착하면 연락드릴게요."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나니 정신이 없었다. 우선은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막냇동생한테 전화를 했다. 내차로 함께 가서 엄마랑 셋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보나 마나 급한 소식에 당황한 엄마는 화장실을 몇 차례 오고 갔을 것이다.
다시 또 나는 골목길 앞에 서서 지팡이를 짚고 모자를 쓰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엄마를 맞이했다. 이 골목길 가로등 아래에 차를 세우고 엄마를 맞이하고, 들여보내기를 참 여러 차례 하는구나 싶었다. 골목길에 눈이 쌓여 있긴 했는데 얼마나 추웠는지는 기억이 없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예정보다 30분이 늦어진 3시 30분이었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간호사와 통화를 하고 나니 1층 입구 문이 열리고 방문자 명단을 작성하고 원무과 직원이 방호복과 일회용 비닐장갑을 내어줬다. 한 번에 2 사람만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는 엄마 몸에 비닐로 된 방호복을 입히는 데 급한 마음과 달리 시간이 좀 걸렸다. 나도 방호복을 입고 엄마를 모시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집중치료실 앞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버지 침대가 보였다. 거의 일 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 침대는 집중치료실에서도 간호사 카운터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호흡기를 부착하지는 않았으나 눈에 힘이 없고 가쁘게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엄마가 손을 만지면서 마누라 왔다는 말씀을 하셨다. 감았던 눈이 한쪽만 떠지긴 했는데 이내 힘없이 눈이 감겼다. 가슴 쪽에 모은 손은 전보다 더 굳어있었고 간호사 말로는 팔이 펴지지 않은지는 꽤 됐다고 했다. 한눈에 봐도 정말로 힘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얼굴색은 너무나 깔끔하고 맑아 보였다. 엄마는 이불을 들춰가며 여기저기 아버지 몸을 살피고 있었다. 담당 간호사가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지금 상태는 혈압이 많이 떨어지고 호흡이 약하고 콧줄 식이도 전혀 소화가 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있어서 잠시 중단된 상태입니다. 아래쪽 고환에도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좋아지지 않고 있어요. "
"치료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갑자기 토하는 증세에 열도 있어서 염증이 있다고 보고 혈액검사를 했는데 내일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에 맞는 처방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워낙 환자분 상태가 힘들어서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에 연락드린 겁니다. "
"네. "
"원장님 말씀이 가족 분들 멀리 가지 말고 대기 상태로 계셨으면 한다고 하십니다. "
"네. 알겠습니다. "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다 기다리는 동생들이 올라와야 하기에 바로 나왔다. 엄마를 모시고 내려와서 방호복을 벗고 병원 입구 소파에 앉아 동생들이 나오길 기다렸다.
힘없이 떴다 감았던 아버지의 눈이 아른거렸다. 영혼을 느낄 수 없는 눈을 지그시 응시하며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 이제 그만 고생하셔도 돼요. 아버지 가시는 길 제가 잘 안내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