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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an 08. 2024

[나의 망생일지] 이렇게 밖에 못 써? 실망이야.

참고로, 저에게 실망 많이 하셔도 좋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데에나 저렇게 대답했다가는 밥줄 끊김을 면치 못함, 미리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 과연 이 알림은 맞는 말인가, 아닌가. 


나는 배우이자 화가 그리고 뮤지션인 백현진을 좋아한다. 지난 여름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에 폭 빠져 지냈을 때, 음치인 듯 아닌 듯한 배우 이나영이 온 몸을 흐느적거리면 불렀던 곡 '빛'을 부른 이가 백현진임을 알고 좋아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이렇듯 팬심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의 '국민 개장수' 백현진의 노래를 먼저 감상해보고... 


https://youtu.be/wCu0s5L0Ifg?si=DlAL8ivxYlxUNWR6


그러다가 백현진 님의 인스타그램을 발견했다. 그 전에도 유튜브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금방 느꼈다. 가까이 가기는 좀 어려운 사람이구나... 크게 거스르는 발언은 전혀 없었고, 그저 전시회를 앞두고 데드라인에 맞춰 그림을 마구 그리며 수를 맞춰 전시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그의 인터뷰 핵심이었다. 하던대로 그림 그리다가 전시회가 다가오면 그동안 했던 작품들 최선을 다해 마무리짓고 '평소대로' 하고 싶다는 것.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기 섭외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수락하는 기준이 대사를 내가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씨 하나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는 작가의 작품은 할 수가 없단다. 아무래도 자기의 감정을 담아끝까지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욕망이 느껴졌다. 

만약에 내가 백현진이라는 배우와 함께 일을 한다면... 당연히 "아이고~ 마음대로 대사 바꾸십쇼~ 라인 바이 라인 다 바꾸셔도 됩니다~" 하겠지.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조금은 차가운 철벽이 느껴지기는 했다. 그러나, 큰일 날 일은 아니다. 백현진 님 캐릭터이니까... 오히려 겉으로 힘들게 가면 쓰고 살면서 정작 그 가면 벗어야 할 때는 피 철철 흘리며 얼굴살 뜯기는 것도 모르고 세상에 억지웃음 짓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 철벽이 외로움에서 오는 것만 아니면 된다. 

하루는 인스타에 그가 키보드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가끔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작곡을 하면서 하루하루 바뀐 멜로디, 가사 숨김없이 남김없이 공유하기도 한다. 이날도 아주 자연스럽게 담배 한 대 피우면서 노래했다. 여기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배우로서는 독특해서 좋은데, 음악적 취향이 본인과 매칭이 안되어서 실망스럽다고... 

나는 여기에서 본인이란 '노래하는, 음악하는 백현진'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했다. 일단 '실망'이라는 단어에 놀랐다. 듣거나 읽고 나서 기분이 좋고, 바로 고마울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니까. 댓글이 어떻게 달릴 지도 조마조마했다. 


음악가로선, 과장하면, 대중의 실망이 저의 자양분.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대중의 눈높이를 살피며 일하는 것을 평생 지양하며 삶을 꾸려오고 있습니다. 어떤 음악취향이냐곤 묻지 않겠습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요.

참고로, 음악가로서의 저에게 실망 많이 하셔도 좋습니다, 진심입니다.


그 뒤로 그 '문제의' 댓글 때문에 여러 줄의 또 다른 글들이 주렁주렁 달렸지만, 나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위와 같은 백현진 님의 답변 때문이었다. 진심일까. 용감한 사람이다. 정말 용감한 사람이다. 심지가 단단한 사람이다. 진짜 이 사람은 평생 미술 전시회의 데드라인도에도 연기 캐스팅에도 절절 매며 살지는 않겠구나. 아니 아니, 이런 미술, 연기, 음악이라는 세상의 기준과 분류 차원에 붙들려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지난 며칠 동안, 21세기로 접어든지 벌써 24년이나 되었다는 것과 함께 내게는 가장 쇼킹한 사건으로 꼽힌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하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나는 아직도 고집스럽게도 자라면서 하도 눈치 보며 살아서 그렇다고 퉁 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나에게 어머! 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당연히 있었지만 얼마 안 가 그냥 식어버렸다. 대부분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어설피 반에 반쯤만 듣고는 되게 멋있는 사람인 줄 알고 '진짜 멋지다'를 연발하다가 내가 '멋지지 않은' 사람인 것을 이내 알아버린다. 하다 못해 sns로만 만나던 사람(특히 남자사람들!)들은 실제로 나를 만나고 한번 진하게 소주 한잔 하고 나면 그 다음 연락이 없다. 내가 언제 그 사람 붙잡고 나랑 어떻게 무슨 수작을 부려보자는 것은 아니었는데, 연락이 끊긴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을 보면 나는 분명히 어느 지점에서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지점'을 정확히 모르겠는 것이다. 

알면서도 더 고치기 어려웠던 것은 '내 글 = 나'로 놓는 허접한 공식이었다. 


처음 쓰는 작품은, 아니 그 다음 작품도 그 다다음 작품도 '내'가 투영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이는 나중에 내가 차기, 차차기 작품을 쓰게 되면 적나라하게 고백해보겠다!) 게다가 지금 쓰는 드라마가 '나'를 소재로 쓰는 거여서 더더욱 '나'와 '나'를 찢어놓기가 어려웠다. 나를 투영해서 썼는데 그거 아니다, 매력 없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나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정말 화끈거리고 참기가 어려웠다. 나이가 적지 않은데도 '초짜' 소리를 허물없이 듣고 넘기는 나로서도, 정말 이건 극복하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기준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자기 이야기, 실화를 담아서 쓰면 극찬을 받는다. <H 마트에서 울다> 같은 책은 전 세계적으로 다들 난리가 났다. 게다가 '유리알처럼 투명'하대. 나는 유리알처럼 썼다가는 또 비난당할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다. 멘탈이 유리알이 되는 극적 상황이 벌어졌다. '극화'해서 쓰라고 하는데, 과연 이렇게 나에게서 한 발 멀어져서 희석시키는 것이 옳은 것일까, 너무 아깝지 않나, 속으로 고민도 많이 하고 여러가지 시도도 많이 해보았다. 

결론은 진짜 허무한데, 정답은 없다는 것... 지금 이도 정답인지 아닌지 모르겠고, 이말에는 누구도 반기를 들 수도 없을 것이다. 

단, 글을 쓸 때 이런 기분은 꼭 가지고 가야 함은 조금 알겠다. 


1. 휘둘리지 말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은 맞다. 정신을 차려보면 배가 흙을 파고 있다. 나는 20대, 30대 광고대행사에서 클라이언트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왔고, 심지어 이후에는 고스트 라이터(흔히 '대필'이라고 하는데, 나는 고스트 라이터라는 말이 더 멋지게 들려서 좋다! 내가 하는 일에도 일말의 '멋짐' 장착하면서 자긍심있게 하면 좋잖아!) 일을 많이 해서 아주 아주 U - centered 된 사람이다. 오랫 시간동안 글에 I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빠르게 알아듣고 적용하여 녹이는 것은 그 누구보다 잘하지만, 이에 따른 폐해도 적지는 않았다. 내가 점점 '점'이 되어갔다...................


2. 내 색깔을 잃지 말자. 

1번하고 비슷하지만, 조금 결이 다른 말이기도 하다. 내 글에서 내가 점점 점이 되어가면서 잃는 가장 큰 보석은 내 색깔이다. 하지만, 내 색깔 발휘한답시고 쓴 글을 3-4년 아니 바로 내년에만 읽어도 난로 위에 지글거리고 타는 오징어가 되는 경우를 많이 겪으셨을 것이다. 너무 글이 여기저기로 튀는 사람은 잡아 끌어내려주고, 푹 가라앉아 영 재미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뒤흔들어 튀어오르게 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필요하다. 

운이 좋게도 나는 한 출판사 편집자 님을 만나서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평소 모든 문장이 근엄한 분이었고, '요즘 농담'을 잘 모르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문장을 조금만 틀어서 써도 바로 직진으로 바꿔놓으셨다. 그분과 나 사이의 작업은 '비문'이나 '맞춤법'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왜, 나의 그 페이소스 넘치는(!!! 으아아!!! 잘났다!!!) 문장을 이렇게 노잼으로 바꿔놓을 수 있냔 말이야. 내가 논문 쓰는 거냐고. 급기야는 그분이 고쳐서 보내는 원고가 이메일함에 당도한 것만 봐도 화가 나서 위산이 분출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 다섯 번... 원고가 왔다 갔다 하면서 적절하게 튜닝이 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문장들을 점검하면서 처음 보냈을 때 표현을 그대로 살렸으면 참 가벼울 뻔 했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아주 여러 번 쉬었다. 

그러면서도 내 색깔은 지켜낼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 수정고가 오면 내가 투쟁하듯 고치고, 또 고치고, 또또 고쳐서 보냈기 때문이다. 이 또한 큰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한번의 경험 가지고 당연히 평생 울궈먹을 수만은 없다. 충분하지 않다. 지금도 1년 6개월의 드라마 기획안 작업을 하면서 톡톡히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힘들어 죽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3. "생각해볼게요."

수정사항이 들어오면 넙죽 받아서 고치지 않는다. 

"생각해볼게요." 

이 말, 참 어렵다. 그런데, 해야 한다. 실제로 생각도 해보아야 한다. 내가 제일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다시 생각해보기'다. 남들을 '실망'시키고싶지 않다는 아주 깊은 곳에서의 두려움이 치고 올라와서 그렇다. 

왜요? 왜 그런 거죠? 좀 더 생각해볼게요. 이 말이 그렇게 안 나온다.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화나겠지.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내가 미안해지겠지. 나의 이 평생 고질병... 

영화도, 드라마도 팀 플레이다. 말하자면 작가인 나는 어린 시절 '어린이 회의' 할 때 서기와도 같은 역할이기도 하다. 다만 초딩 서기들과 다른 점은 그냥 막 받아적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내가 회장 겸 의견을 개진하는 참여학생이기도 하다. 내가 열 일 다 한다 기본으로 박고, 머리로 생각하고 나서 의견을 받아적어야 한다. 즉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젯상도 멋지게 차리버리기!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만 해대고, 나 혼자 정신승리하며 깃발 꼽고('꽂고'라는 올바른 맞춤법을 도저히 쓰고 싶지가 않다!) 화이팅 외치는 것 같아 좀 부끄러워진다. 

지금 작업 진도를 말씀드리면, 지금 나는 기획안 마지막 다듬기 작업 하고 있다. 아마도 늦어도 수요일 오전까지는 감독님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일드 심야식당에 호텔 델루나를 합친 것 같은 드라마인데, 정말로 내 식당 오픈하듯이 공을 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번 기획안 작업하면서 생활이 달라져야 글이 달라진다는 생각에 시작한 새벽 독서도 3주차 계속 하고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술도 줄었다. 연말 연시임에도 약속도 잡지 않았다. 물론 만나서 밥 한잔 나누어 마시고픈 사람들이야 있지만, 그 그리움은 기획안 좀 통과되고 난 다음에 회포를 풀어보려고 한다. 


새벽독서를 하고 나서 가장 좋아진 점은 불안증이 아주 많이 가셨다는 것이다. 새벽 공황이 몰려오는 시간이 새벽 4시 경이었는데, 그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버리니 그 녀석이 오려다가 달아나 버릴 수밖에. 

그리고 당연히 물리적으로도 오전 2-3시간을 좀 더 알차게 쓸 수 있어서 좋다. 지금 시간 오후 2시. 보통 오전 집안 일을 마치고,  10시, 11시에 시작했던 일과였는데, 지금은 새벽 시간에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썼으니, 예전의 오후 5시가 된 효과를 얻는 것이다. 물론 오전 8시부터 두 시간 정도는 청소, 세탁기 돌리기, 식세기 돌리기, 욕실 청소등 매일 하는 집안 일은 다 끝낸 상태다. 

물론 많이 졸릴 때도 있다. 몸살기 올 때도 있다. 그러면 새벽 독서 마치고 바로 잠들기도 하는데, 그건 그것대로 몸 컨디션 다시 살려서 일어나서 또 집중하면 되는 것이고. 



아아, 오늘은 사실 하루 '루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 하필 우리 백현진 형님 덕분에 이렇게 '실망'이라는 주제로 기나긴 밤 한 허리를 굽이굽이 펴내고야 말았다. 삼천포의 좋은 예 되겠다. 

다음 연재에는 내가 기획안 작업하면서 Chat GPT 활용했던 예를 공유해보면 어떨까 한다. 글쎄... 아직까지 아주 답변들이 내 맘에 쏙 들도록 날카롭지는 않지만, 사용자인 나 또한 질문하기 귀찮아서 '아 하면 어! 해라'하는 식으로 했던 것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스마트하게, 가끔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오오~"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나의 비서가 되어준 적이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생각이다.

다행히...  얘네들은 아직까지 대본 잘 못쓴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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