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한 Chat GPT 하나, 열 보작 안 부럽다?
"<빈 장롱>은 비평가들에게는 소설로 읽히고 독자들에게는 자전적 소설처럼 읽힐 겁니다. 물론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소설로 읽지 않았죠. 당시 나와 함께 살았던 내 어머니부터 시작해서 말입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가한 그 폭력 앞에서, 어머니는 아주 지혜롭게 그러나 또한 아주 순응적인 태도로 연기를 하셨어요. 모든 게 지어낸 허구인 양 행동하시더군요. 하지만 틀림없이 내 책 때문에 무척 괴로워하셨을 거예요." -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 쓰기> 중
<빈 장롱>(혹은 '빈 옷장')은 아니 에르노의 스무 살 무렵 낙태의 경험(자궁이 있는 자들의 불행이여!), 그리고 그 이전의 부모와의 관계, 부르주아 남성에게 버림받았던 경험 등이 빼곡히 적혀있는 소설(!)이다.
읽고 있으면 마치 내 자궁이 아픈 것 같은 느낌, 윗배가 울렁거리는 느낌이 날 정도로 자기를 철처하게 파헤쳐 묘사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우리가 주목할 곳은 이곳이다.
어제도 오늘도 지금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가공해서 쓰고 있다.
대화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 또 당시에 떠올렸던 상상들까지 오롯이 뚝 떠와서 노트북 앞에 앉아 '다른 등장인물을 만들어내고 장소를 바꾸는 권리를 나 자신에게 주저 없이 부여'(<칼 같은 글쓰기> 중 나온 구절)하고 있다.
이미 나는 예전에 발간된 내 책 때문에 딸하고 두어 차례 대판 댓거리를 치뤘다. 왜 자기 이야기를 허락도 받지 않고 함부로 썼냐는 것이다.
엄마가 여기에서 치졸하게 변명을 하자면...
아이랑 이야기를 나눌 때 보면 얘는 자기는 웃지도 않고 웃긴 얘기를 하는 것이 그렇게 귀여웠다. 그것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이다. 가끔씩 웃겨도 너무 웃겨서 포복절도하게도 만든다.
나는 또 직업병이 발동해서 아주 어린 아이 때부터 그 얘기들을 놓치지 않고 메모장에 모아놓았고, 그것을 책으로 낸 것이 내 두 번째 에세이 <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였다.
어렸을 때는 그냥 '애스타그램'이니 뭐니 엄마들 많이 하니까 그렇다고 쳐도, 글을 써서 모으면서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어려서는 아이가 어려서 몰랐으니까 엄마 마음대로 아이를 글감으로 글을 써도 되고, 나중에 커서 사춘기가 되면 예민해졌으니까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어찌 됐든 입이 열 개라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앞으로 네 얘기는 절대 어느 곳에서도 쓰지 않겠노라 딸과 굳게 약속을 하고 겨우겨우 출간을 할 수 있었다.
딸은 가끔 엄마가 쓰는 드라마가 나중에 대박이 나고, 엄마가 유명해지면 어떡하냐고 걱정한다. 일단은 올해 안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누누히 안심을 시켰다.
이 사건 이후, 내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어디까지 노출시킬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세워졌다.
1.
구두로 간단히 받아도 좋고, 원고를 아예 보여주는 것이 안전하다.
오래 전에 외국의 에세이스트가 쓴 글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도 집필하고 있는 원고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완성된 원고를 미리 보내어 미리 읽히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본인의 경험 상 백 프로 No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절대! 절대! 아니다.
분명히 책이 출간되기 전에 알려주고, 허락을 받아야 뒷탈이 없다. 최악의 경우, 해당 원고를 뺄 각오마저도 해야 한다.
2.
퇴고 너댓 번만 거쳐도 내가 거의 사라지고 다른 형태의 내가 남는다. 내 이야기인데,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내가 아닌 신기한 체험...
나 같이 아직 데뷔를 하지 않은 작가들은 대부분 자기 이야기를 투영해서 쓴다.
스토리가 이미 기획된 드라마나 원작을 각색하는 작업이라면 자기가 개입될 여지가 아주 낮아질 테지만, 이 경우에도 어쩔 수 없이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가 크고 작게 담기게 마련이다.
이는 실력이나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다.
스토리에 '내'가 들어간 작업은 상당히 많은 기간 공을 들여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도 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시작한 것인데 처음에는 나를 까 보일(?) 자신은 있었으나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지 몰라서 극심하게 우왕좌왕했었다. 나중에는 나를 드러내는 일이 겁이 나기까지 했다.
입체적이어야 할 이야기가 자칫 잘못하면 나만의 '넋두리'로 전락을 해버리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에 힘이 빠지기도 하고, 쓰는 사람도 재미가 없어지기도 하고...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 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 -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중
한 프랑스 여자가 연하의, 본국에 아내가 있던 러시아 남자와 연애하고 이별한 이야기를 정말 가슴 저 밑바닥까지 가슴 떨리게 묘사하여 멋지게 노벨상을 받아버린 <단순한 열정>이라는 책을 읽다가
나는 이 구절(책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단이다)에서 정말 미친듯이 깔깔대고 웃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라고 정확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또,또,또 확인했던 애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글을 쓸 때도 아니었고, 어떻게 내 책의 내용까지 네가 정할 수 있냐며 반박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일단 자기 얘기는 쓰지 말아달라는 거였다.
(그러나, 미안한데... 네 얘기는 이번 드라마에 부득이하게 들어가게 됐다. 물론 직업도 이름도 다 다르기는 하다만...)
그리고 또 하나.
아니 에르노라는 탁월한 소설가의 '뻔뻔함'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끝까지 호기롭게 쓸 수 있었겠지만, 책 초반만 보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서 쓰고 싶어 죽겠는 마음이 문장마다 넘쳐 흘렀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마음도 진정이 안 됐을 것이고, 폭풍우가 치더라.
이게 아마 작가의 쓰고 싶은 욕망 아닐까 싶다. 이렇게 기어코 한 번 푸닥거리를 하듯 써내야 다음 글이 제자리를 잡고 들어오는 것 같다.
여하튼 이 극성스러운 마음을 반절 접어 넣고, 이렇게 멋있는 표현으로 에둘러치다니 멋있다.
그러나, 나도 인간인지라 등장인물을 가공할 때 주변인만 따다 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상상력도, 아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정말 내가 상상도 못할 사람들이 있고, 아니 한 명 한 명 마다 우주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이럴 때는 도움을 받는 것이 바로 Chat GPT였다. 나는 Chat GPT-4 버전을 유료로 사용하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2024년 1월 현재, Chat GPT는 유려하게 시나리오를 쓰지 못한다.
이를 이용해서 글을 쓰시는 분들도 있으나, 아마도 팩트 체크도 꼼꼼히 병행하면서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일단 Chat GPT 시나리오 작성 솜씨 하나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대번에 사극으로도 바꿔버리기는 하나, 지금 이 대본을 보고 웃은 분들은 이미 아실 것이다. 아직 우리 Chat GPT 한국어 버전은 아주 정교하지는 않구나. 그러나, 방심할 수 없다. 그리고 이들과 대치하기 전에 내 비서로 활용을 하면 어떨까.
기획안 작업하고 나서 초기 버전에 남자 주인공 중에 한 명이 젊고 댄디한 출판사 형 캐릭터였다. 그런데, 아무리 내 주변의 출판인들을 둘러보아도 세련된 재벌집 아들 같은 이미지는 상상을 해낼 수가 없었다.
놀랐던 점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출판 형의 독특한 버릇을 알알이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책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출판 형, 꿀벌을 사랑한 터라 모든 브랜딩을 꿀벌 모양을 바탕으로 제작하는 푸우 출판 형, 읽는 책에 맞춰서 음반을 바꿔 끼우는 출판 형 등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인터넷이나 책 자료 수집만으로는 만날 수 없는 출판사 대표의 독특한 모습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짓는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반은 현실에 반은 가공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을 좀 더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만들어내고,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방법. Chat GPT를 비서로 삼아 이용해보자. 그러면 왜 내 얘기 썼냐, 이 얘기 내 얘기 아니냐는 타박에서 조금은 해방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아, 처음에는 무료인 3.5 버전으로 쓰다가 유료로 전환하는 것도 추천드린다.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직 프로페셔널하게 Chat GPT에게 질문을 던지지 못해서 그런지 차이점은 잘 모르겠다. 앞으로 좀 더 갈고 닦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