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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an 01. 2024

[드라망생 일기] 기획안,이쯤되면 잘 써야 하지 않음?

기획안 일년 반 처돌이의 고백 

연말이면 그래도 올해 드라마 어떻게 결과를 맺었는지, 내 예상과 맞아 떨어지는지 연기대상 결과는 챙겨서 본다. 아무래도 공중파 드라마들은 <연인>이나 <고려 거란 전쟁>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것이 없기도 하고 내가 놓친 것도 많다. 
그중 MBC 연기대상의 주인공,  남궁민의 수상 소감.
황진영 작가님이 연인 대본을 5년 동안 썼다고 한다. 아, 여기서부터 코가 찡해졌다.



내 기획안 폴더의 '일부'다. 일 년도 더 된 파일부터 주욱 쌓여 있다. 황진영 작가님의 '5년'이라는 시간을 듣고 좀 울컥하기 시작했다. 매일 마주하는 이 폴더가 떠올랐다.

그리고, 처음 등장하는 바닷가의 노을의 모습, 바람의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까지 모두 묘사해주어서, 안 그래도 다른 작품 촬영하고 있을 때여서 굉장히 피곤하고 힘들 때였는데, 힐링이 되었다고 한다.  배우가 대본을 보고 힐링이 될 정도라니... 결국은 눈물이 핑 돌았다. 주책맞게...

얼른 기획안 마치고 대본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했고.


혹시 [드라망생 일기] 처음부터 못 읽어보신 분들을 위해서 링크 툭 놓아 본다.

https://alook.so/posts/eVtr3rn?utm_source=user-share_r9tXon


나는 지금 기획 단계부터 1년 반을 계속 뒤집어라 엎어라 하면서 기획안에서 맴맴 돌고 있는, 아직 드라마에 크레딧을 올리며 데뷔하지 않은,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2022년 11월 3일, 드디어 집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무려 여덟 번째의 기획안을 작성하고 있다.

물론 중간에 대본이 들어가기는 했다. 2화까지 나갔다가 다시 모든 구조를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코 한 번 흥! 풀고 다시 시작했다. 또 쓰면 되지. 잘 쓰면 되지. 그런데, 대본 작업을 하고 다시 빽도를 돌려보니... 느낌이 조금 오는 것이 있었다.


현재 얼룩소에서 <공모에 당선되는 대본 쓰기>라는 제목으로 간절한 망생들의 바이블을 쓰고 계신 파워 얼룩커 이기원 작가님은 제발 시놉시스는 대본을 다 쓰고 마지막에 가서 정리하라는, 실로 타당한 조언을 주셨다.


https://alook.so/posts/70tmXYM?utm_source=user-share_r9tXon


실제 기획안을 써보면, '정말 대본 다 쓰고 난 다음에 정리야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정수리를 세차게 가격할 것이다. 보통 시나리오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시놉시스, 기획안이 대본을 쓸 때 지도, 나침반이 되어 줄것이라고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 하면... 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기획안 안에는 대본을 써야 나올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다 담을 수가 없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대본을 다 쓰면 기획안 내에 들어갈  에피소드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발췌초록할 수 있게 된다. 즉 이야기의 조감도가 그려지는 것이다. 지도로 치자면 골목까지 구석구석 다 돌아다녀 본 다음에 대동여지도를 그리는 김정호 선생이 되는 것. 그러나, 길목 샅샅이 다 뒤지지 않고, 큰길만 다니고 난 다음에도 지도는 그릴 수 있다. 대신 뼈대는 드러나겠지만, 시시콜콜한 재미는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물론 나 같이 한 가지 테마로 기획안을 수천 장 쓰고 자빠진 경우...  일이 빨리 메이드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큰길 지도를 그리고, 중간중간 골목길을 넣을 수까지는 있게 된다. 이게 바로 '페이크' 지도 되시겠다. 

즉, 대본 쓸 때는 이 이야기들이 큰 흐름은 똑같이 가져가나, 세부 에피소드는 어떤 것은 반영되고, 어떤 것은 정작 대본 쓸 때 버리고 간다. 기획안의 진실.... 폭로한다. (두구두구두구....) 


이 기획안은 작가가 대본을 잘 쓰기 위한 설계도 용도로 작성된 것이 아닌, 가장 일차적으로는 제작자, 그리고 나아가서는 편성 플랫폼 관계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초짜에 망생이인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아무리 페이크라도 기획안부터 써야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그래도 일 년 반 동안 쎄가 빠지게('혀가 빠지게'라는 뜻의 사투리라고 한다. 참고) 기획안 쓰면서 굴렀는데, 진짜 기획안 쓴 것만 해도 수천 장은 될 터인데, 나만의 노하우 같은 것이 아니 생길 수가 없다. 안 생기면 이건 바보다. 윗선에 올리기용 기획안이라도 최대한 내 대본에 반영될 자료들을 축약해 넣으려고 노력을 겁나게 많이 한다.
그리고, 팁!
에피소드의 아이디어는 떠올랐는데, 기획안에 넣을 깜은 아니고, 노트에 적어야 하나, 노트에 적었다는 사실조차도 시방 까먹을 것 같은디... (아아, 요즘 내가 드라마 <소년시대>에 꽂혔다....) 하는 경우는 에버노트 같은 온라인 노트를 적극 활용하도록 하자! 화이팅! 혹은 스크리브너의 포스트잇 기능! 화이팅!

망생일기,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망생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드라마를 쓰는 지망생이니까 [드라망생 일기]로 중간에 제목을 살짝 틀어봤다. 다들 망생이라고 하니 인생 망한 사람의 일기인 줄 알고 멘탈 관리하시느라 안 들어와보시는지 어쩐지 조회수가 너무 적은 터라 제목을 바꿨다. 대문서부터 제목을 헷갈리게 써서 읽으러 온 손님들은 문전박대 할 수는 없는 법.
하루하루 이 과정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하루도 한 빠지고 드라마 기획안을 쓰든, 자료 수집을 하든, 뭔가 계속 꿈지럭거리고 있다. 이것들의 일지를 남겨서 함께 꿈을 향해 야무지게 쫓아가고 있는 우리들 함께 공유하고 나누고 싶었다.
기획안 18개월, 19개월 처돌이하니까 이렇게 노하우 뭐 하나라도 정리할 것이 생긴다. 잃는 게임이란 인생에 없다. 이 터널 언제 끝나는겨어~ 아따 끝도 안 보이고, 돌겄어~ 하면서도 1월 1일 오늘도 몇 발자국 앞으로 더 나갔다.

기획안 몇 가지 팁. 빠밤!

기획안은 대강 세 가지 정도로 형태 나뉜다.
1. 캐릭터 설명이 주가 되면서 줄거리를 이끌어나가는 기획안.
주로 웹툰이나 웹소설 원작이 있을 경우, 그래서 제작진들과 얼추 오케이 사인 다 맞고 "제작, 가보능겨!"를 다 함께 외쳤을 때 이런 방식을 쓰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허접해 보여서 '얘걔?'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이미 제작 확정 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우워어~'로 당장 바뀐다.

2. 매우 정석적인 기획안.
- 장르
- 기획의도
- 관전 포인트
- 전체 줄거리
- 화별 줄거리

이 기획안의 형태는 초짜 신인 작가들이 꼭 거쳐봐야 할 기획안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골 때리는 것이 바로 화별 줄거리. ㅋㅋㅋㅋㅋ 진짜 1화부터 10화면 10화, 8화면 8화(요즘은 8화 정도의 짧은 시리즈를 선호한다고 한다) 줄거리를 다 써야 한다. 난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설마! 쓰면서 나중에 완결짓겠지... 순진한 생각이었다. 심지어 시나리오나 드라마 작가님들 인터뷰를 보면 뜬구름 없는 말씀과도 같지만, 자주 등장하는 어록이 있다.

"시작점과 끝점만 정해 놓고 대본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기획안은 기본 50장이 넘어간다. 내가 교과서로 삼는 드라마 <또 오해영> 기획안은 56페이지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3. 화별 줄거리로만 이루어진 기획안.
병렬식 구성인데, 각 화별로 사건이 벌어졌다가 마무리되는 에피소딕한 드라마들에게서 보이는 기획안이다.
긴말 서두 필요 없고, 단도직입적으로 할 말만 쌈빡하게 우다다다 하는 느낌.
이 또한 간이 기획안이지만, 드라마 전체를 보고 이해하기에는 군더더기 없다. 얼마 전에 본 기획안이었는데, 이혼 변호사의 웹툰이 드라마화 된다고 하는데, 이 틀을 사용하고 있었다. 각 화별로 사건이 일단락되는 형태.

산문 필력을 기르자!
나도 그게 잘 안 돼서 이렇게 기획안만 뺑뺑 돌고 있는데, 역시 드라마 기획안은 대본 뿐 아니라, 산문의 필력이 있으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한 5-6년 전만 해도 초 명품 트리트먼트(간단한 줄거리인 시놉시스에서 좀 더 구체적인 영화 촬영용으로 풀어서 쓴 형태. 중요한 대사나 배경과 캐릭터 설명 등이 자세하게 들어간다), 트리트먼트 계의 최고봉이라 여겼던 영화 <버닝>의 트리트먼트를 보면 자체로 완전히 소설이다. 물론 연세가 드신 어르신이고,  원류가 소설에 있던 분이 쓰신 것이라 그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 같긴 하다. 얼마 전에 일부러 찾아서 다시 읽어봤으나, 요즘 드라마나 영화 기획안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매우 엄근진.

좀 창피한 일이기도 한데, 나는 에세이집을 세 권이나 내고, 게다가 고스트라이터로 책 십수 권을 이름 숨기고 썼음에도 불구하고 기획안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이리도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 눈은 젖어드는데... ㅠㅠ (이 노래 아시는 분들은 꼭 댓글을 남겨주시길...)
원인을 이제는 안다. 지금부터 기획안 쓸 때 각 잡고 너가 에세이 쓸 때처럼 써봐 하고 누군가 시켜주시면 아마도 그 전에 책을 쓰던 가락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책 쓰던 가락을 찾기 전에 나는 먼저 대본부터 쓰기 시작을 하겠지. 바로 그 문제로 다시 뺑 돌아 다시 가는 것이다. 어디까지 내용을 넣어야 하고, 어디서부터 덜어내야 하는지 굉장히 혼란스러워진다. 하지만, 우리는 극복해야 한다. 골목 골목 안 가봐도 큰 길만 지나가면서도 지도를 그려내야 한다.

기획안 안에 어디까지 이야기를 담을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스킬은 과연 이 기획안에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를 스쳐 지나가게 해야 하는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음식점을 경영하는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는 기획안이다. 매일매일 다른 메뉴, 이모카세라 불리는 작은 음식점을 경영하는 캐릭터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날 그날의 식사 메뉴를 기획안에 넣어야 할까.  그리고 손님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시시콜콜 넣어야 할까. 당연히 이 음식점의 이름과 공간, 그리고 메인 캐릭터들의 사연의 타래들은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 이 요소들이 바로 '큰 길'이니까. 앞에서 이야기한 저 골목길을 부각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기획안을 잘 쓰느냐 마느냐, 쓰다가 중간에 뇌가 흔들려서 앞날이 하얘지느냐 마느냐를 가른다.

중간 중간 대사를 집어 넣으면 뭔가 잘 쓰는 것 같이 보인다
좀 전 이야기한 <버닝>의 트리트먼트는 읽으면서 상당히 정돈된 문장이라고 느껴지기는 하지만, 자칫 너무 엄숙해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지금 쓰고 있는 장르가 약간은 로맨틱, 코메디 쪽이어서 그런지 기획안이 얌체볼도 이런 얌체볼들이 없다. 얼루다가 튈 지 모르겠다. 얼마나 통통 튀는지... 되바라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튄다. 그리고 이렇게 첫 장에서 튀지 않으면 쇼부를 낼 수가 없다. 기획안을 읽고 마음에 든다 안 든다를 결정하는 것은 모두 아직까지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렇다.
내가 정리해본 마지막 팁은 바로 저것이다. 중간 중간 대사를 집어 넣어보자. 그럼 뭔가 잘 쓴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중간 제목, 소 제목을 대사 체로 넣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글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
이렇게 실컷 떠들고 나니, 마치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 친구에게 수학의 정석을 쉬는 시간에 실컷 가르쳐주고 나서 정작 나는 반 타작했을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여하튼 나는 이 글을 두세 번 정도 더 퇴고하고 업로드할 것이며, 그리고 나서 여덟 번째 기획안의 막바지 작업을 위해 자료수집을 할 생각이다. 
오늘 들입다 팔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사유식탁>이다. 혹시 이 책을 읽은 분들은 눈치를 채셨겠지만... 지금 저 위의 기획안 팁에서 어디까지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다.
아아... 그런데 <소년시대> 10화를 아직 못 봤다. 보고 싶어 죽겄구먼~ 자료수집이고 머고 쿠팡부터 냅다 키는 거 아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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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첫 날.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노트북에 오늘 밤, 천사가 내려오시길 바라며... 
새해 복도 많이 많이 지으시기 바란다. 


Chat GPT보고 그려달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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