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어야 글 씁니다.
얼마 전에 얼룩소에 들어갔다가 네이버 웹소설의 시조새(원조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청빙 최영진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다. 한 5-6년 전, 나도 최영진 작가와 같은 모임의 멤버로 있었던 터라 몇 번 함께 술자리에서도 만나고 식사도 했었던 터. (지금은 사람 일 다 그렇듯 소원해졌지...만...) 이미 그때도 최작가님이 억대 연봉인 것은 알았다.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글을 쓰는지도... 건강할 때도, 아플 때도, 집에 머물 때도, 여행을 가서도 매일 쓴다. 노트북만 가지고 가면 글 쓸 수 있고, 와이파이만 터지면 송고할 수 있으니 전 세계 어디에 가 있어도 상관없는 일이 작가의 일이다.
보통 주당 원고지 200매 정도를 쓰고, 한 달이면 800매를 채운다고 한다. 보통 a4 한 장의 분량이 원고지 9-10장 정도 되니 거의 월간으로 조금은 얇은 단행본을 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참고로 웹소설 한 편이 원고지 25매 정도의 분량이다) 멘탈이 떨어졌을 때도 10-20매 정도를 매일 쓴다고 한다. 작업 시간은 6시간 정도. 꾸준함은 그 어떤 재기발랄함도 이기지 못한다는 걸 최영진 작가가 보여준다.
웹소설은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분야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불황이 없는 산업도 없다. 계속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등으로 IP가 무궁무진하고 매우 빠르게 개발되어 펼쳐진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최작가의 웹소설에서도 '틀내난다'는 댓글을 만날 때가 있었단다. 나 또한 흠칫! 했다. 아아... 내 글에서도 틀내나면 어떡하나 싶어서 말이다. 틀딱이 되지 않으려면 무조건 읽고 보는 수밖에...
웹소설 작가인지라 당연히 웹소설도 많이 보기 때문에 쿠키 충전료만 40만 원이 든단다. 그리고 이 외에 한 달에 60권 정도의 책을 본다고. 밀리의 서재도 구독하면서 소설 80, 에세이 20의 비율로 읽으며, 리디에서도 컨텐츠 구입료만 100만 원 정도 쓴다고 한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책을 보고 화장실에서도 보고 할 수 있을 때 항상 책을 봅니다. 그렇게 항상 책을 읽는 습관이 들었어요.
사실 집에 책꽂이를 더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줄 그으며 읽어야 할 책을 제외하고는 리디북스나, 밀리의 서재를 애용하는데, 컨텐츠 구입료만 100만 원 정도라니... 놀라움과 더불어 부러움이 밀려들어왔다! 억대 연봉 작가에게 그 돈은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액수이겠거니.
작가들은 모름지기 배가 고파야 글이 나온다, 그래야 깡이 생긴다는 말들을 한다. 그래놓고 꼭 덧붙인다.
'아, 요즘은 그래도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이렇게 보충설명을 해놓고도 속으로는 그래도 작가들은 가난해야 글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글쎄...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안정된 경제 생활이 먼저 받침이 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가 있다. 아, 이거 불안한데... 싶으면 바로 대책부터 세우러 맨발로 뛰어나가는 것이다.
사실 지난 해 말 계약을 하고 공식적으로 드라마 작업으로는 빵 원 벌었다. 2022년 11월 부터 2023년 12월까지... 게다가 1차 착수금을 받고는 난생 처음 받아보는 단위의 액수에 감격한 나머지 그동안 졌던 빚들 중 굵직굵직한 것을 모조리 다 갚아버렸다. (정말 얼마나 얼마나 감격했는지, 뾰롱~ 뾰롱~ 은행 어플로 출금되는 소리가 다 들리는 듯했고, 내 머릿속에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이 참에 함께 음악 듣고 가보자)
https://youtu.be/bO0sojB4-pA?si=i9rwbsBXPn7EEKun
그리고, 기억하자.
만약 감격스럽게도 드라마나 영화(...는 작업비의 규모가 좀 달라서 예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드라마와 달리 일단 시나리오 작업을 다 마치고 나면 일단 작가의 의무는 전체 프로세스에서 끝난다) 작업 계약에 이르렀다면 이것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임을...
돈 들어왔다고 여기 저기 용돈 주고, 술 사주고, 밥 사주며 이제 고생 끝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진짜 이제 시작이므로 통장에 꽁꽁 가둬두어야 한다. 지금부터 쪼금 쪼금씩, 방울 방울 마지못해 흘리듯이 돈을 써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작업 한 번 들어가면 하루에 대여섯 시간 알바도 하기 어렵다. 새벽에 하는 가게나 편의점에 나가서 일하겠다면 오케이. 그러면 아마 어느정도 목돈을 쥘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 끝나고 나면 오전 11시, 12시... 완전히 녹초가 되어 귀가할 텐데 어쩔텐가. 왜 이렇게 잘 아냐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 여기서 한 마디 하겠다.
내가 해봐서 알아.
5-6년 전, 드라마가 너무 쓰고 싶어서 드라마 아카데미, 교육원 네 군데 돈 '쳐들여' 다니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몇 번 말씀드렸다. 그런데, 이렇게 돈은 나가는데, 정작 돈을 쓴 곳에서 그 비용만큼 회수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드라마나 영화 한 번 공부하려면 수강료가 백만 원은 훌쩍 넘는다. (백만 원이 뭔가 이백 만ㅇ.... ) 물론 남편도 끊임없이 쳇바퀴 돌려가면서 돈을 벌었지만 늘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낮에는 글을 쓰고, 새벽에 일을 하자는 요량으로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바 인생이 시작됐다. 그때 했던 일들이 생과일 쥬스 가게 알바, 풀무원 녹즙 아줌마, 새벽 김밥천국 등이었다. 새벽 어두컴컴할 때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나가는 출근길은 참 기분이 요상했다. 아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억지로 하는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더욱 힘들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어차피 시간을 쓰는 것 즐겁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과일 쥬스 만드는 법(지금도 '딸바'니, 'ABC 쥬스'니, '쵸바'니... 눈 감고도 만든다!)을 SNS에 기록해서 올리기도 하고, 김밥천국에서는 김밥 안 말고, 홀 서빙 요정으로 활약했다. 뜨거운 라면 훌훌 말아 먹고 새벽 공사장 나가는 아저씨들이 좋아라 하셨다. 녹즙 아줌마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열전을 연재하기도 했다.
- 언니, 내일부터 녹즙 좀 먹어요. (샘플을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 놓는다)
- (샘플을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눈빛) 아, 아... 네... 고맙습니다.
- 아침마다 장 싸악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야, 내일부터 먹어요. 아니, 우리 먹자.
- (끊임없이 내 눈을 피하며) 네... 연락 드릴게요.
- 노노노, 난 연락은 안 받아. 주문만 받지.
여기 저기 빌딩 타고 다니면서(전문용어 나왔다. 빌딩을 '탄다'고 한다) 영업도 아주 가열차게 했다.
그러나, 영업이 끝나고 나면 내 생각대로 글을 쓸 수 없었다. 맨 위에 최영진 작가가 이야기한대로 하루 여섯 시간 글쓰기는 알바와 병행하기에는 정말 요원했다. 지금도 몹시 어려운 일이다. 하루의 4분의 1을 일하는 데에 집중하기란...
그 뒤로 사정이 조금 나아진 것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알바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교정 교열 알바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변호사 사무실, 한의원, 성형외과 등의 블로그를 대신 써주는 알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 칼바람 맞으며 일하러 나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어쨌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을 쓰는 류의 일이니 또한 기뻤다.
교정 교열 작업은 워낙 맞춤법에 예민한 사람인지라 '조금만 더 배우면 되겠지' 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요령을 터득하는 데에는 그래도 적잖은 품이 들었다. 그리고 공부도 끊임없이 해야 했다. 글의 맥락에 맞는 띄어쓰기가 그때 그때 다르기에... 한글 파일 시뻘건 줄만 믿고 있다가는 큰 코, 세 코, 네 코 다친다! '부산대 맞춤법'도 다 믿지 말 것. 교정과 교열의 기본은 무조건 '의심하는 태도'다!
블로그 알바도 공부를 많이 해야 쓸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나는 성형외과 피부과 시술 정도는 아직 받아본 적은 없어도 울쎄라니 써마지니 소프라노니 아주 잘 알고 있으며 '화상 전문' 한의원과 '당뇨발' 전문이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알바는 점점 '대필' 작업과 '자서전' 작업으로 진화했다. 선거를 앞둔 국회의원들, 각 보험사 보험왕과 여왕님들 책작업을 많이 했었고, '자서전'은 꽤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도 작업하고 있다. 특히 무형 문화재 어르신들과 연이 닿아서 참 감사한데, 그분들 찾아뵙고 인터뷰하고 원고 정리해서 한 권의 역사책을 만드는 일은 몹시 보람있으며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되도록이면 알바를 하더라도 글을 쓰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 출퇴근하면서 들이는 피로도와 시간을 덜어낼 수 있고, 지금 내가 하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과 맞닿아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욱 솔직히 한 발 더 나아가서 말씀드리자면 멘탈 관리에 유리하다. 특히 공모전에 여러 번 떨어지거나 아무리 애를 써도 어느 누구도 나에게 손을 내밀며 함께 작업하자는 사람 없을 때는 더더욱... 아무 생각없이 알바 해서 돈 벌어 놓을 생각만 할 수 있다면 정말 하늘이 내려주신 단단 멘탈이 아닐 수 없다.
최영진 작가의 월간 콘텐츠 구매 비용을 이야기하다가 멀리까지 돌아왔다. 돈이 있어야 책도 사 읽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밀리의 서재, 월정액으로 무제한 책 읽게 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없는 책들도 너무 많다. 그리고 촘촘히 줄을 그어가면서 음미하면서 읽을 책도 세상에 차고 넘쳤다.
줄기차게 끊임없이 글 쓰면서 끝까지 내 꿈을 향해 완주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실제 내가 쓰는 글의 배경이 되는 곳도 답사도 갈 것 아닌가. 무엇보다도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몹시 중요한 일이므로...
이제 와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 너무 나이 든 사람이 잔소리하는 것 같이, 나 이렇게 고생했거든 하고 '틀내' 풍기는 것 같아서 세상에 이 글 내놓기가 두렵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모자람이 없다. 나도 지금 계속 노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나야 다 늙어서도(!?) 이렇게 알바를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조금은 특이한 경우이겠으나, 대부분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품고 정진하는 이들은 보통 2-30대, 비빌 언덕 걱정을 한참 할 시기여서 더더욱 간절하게 고하는 글이다.
돈이 있어야 글도 쓴다. 이제는 글로 돈을 만들 차례다.
이 사진을 좀 보시길. 창문 밖의 풍광도 아름답기 그지 없다. 이런 곳에서 글 쓰면 참 잘 써질것만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젊은 시절, 집의 식탁에 앉아 글을 썼다고 해서 그때의 글을 키친 테이블 소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 내가 브런치에 올리는 브런치북 제목 중에 하나가 '키친 테이블 에세이'다. 실제로 나는 도서관과 우리집을 오가며 일을 하는데, 우리집에는 내 방이나 책상이 따로 없다. 식탁에 앉아서 일하고, 밥 먹는다. 식구들이 돌아오면 우르르 책과 노트북을 거두어들인다.
혹시 내 기억에 조그마한 착오가 있지 않을까 하고 검색을 해봤더니 키친 테이블 소설이란... 일과를 마치고 조용히 부엌의 식탁에 앉아서 써낸 소설을 뜻한단다. 즉, 정식으로 자기 작업실이 없는 조금은 애잔한 글쓴이들의 작품이라고나 할까.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작가들이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조금은 편안하게 쉬었다가 내일 아침부터 또 힘내서 글 쓰시기를...
https://alook.so/posts/jdt5DX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