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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Dec 18. 2023

나라는 인간의 숭고함

캐릭터 꼭 붙잡고, 드라마라는 거친 바다에서 항해 중이다. 

난데 없는 새벽 독서, 깜짝 놀랐다! 


지난 주 화요일, '새벽 독서 모임'이라는 것에 참여해보았다. 

새벽 5시에 줌으로 모여서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 생략하고, 그냥 바로 책 읽기 돌입. 그리고, 나머지 한 시간은 토론이다.  

4시 57분에 일어나서 꺅 소리 지르고 물티슈로 눈꼽 투두둑 씻어내고 바로 앉아서 책 읽기를 시작했는데... 민망해서 원... 일단 줌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못생긴 것은 이미 코로나 시기 거치면서 알았으나...) 어색하고, 특히 이야기를 하는 내가 아닌, 눈을 깔고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은 봐주기가 어려웠다. 

줌 카메라를 딴데로 비추고는 커피도 끓이고, 새벽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양치하고 돌아와서 책도 몰입해서 읽다보니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또 한 시간은 읽은 책에 대한 토론. 리더분의 이야기를 듣는 형태로 진행이 되었는데... 놀라웠다. 

그분은 1년 5개월이 넘도록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독서를 하고 글을 올리는 루틴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그냥 간절해서. 나를 바꾸고 싶은 것이 간절해서. 

이전의 나는 이런 '자기계발' 나부랭이 안 좋아하고, 이런 사람들 보면 어디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것들(아... 죄송...)이라고 속으로 폄하했더랬다. 내가 얘랑 같은 반이었으면 진짜 같이 안 놀아... 이랬는데 이분의 이야기를 한 시간 가량 집중해서 듣다보니... 나는 한 시간 내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새벽 모임이 있기 전 주부터 노명우 작가님의 <이러다 잘 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다. 노명우 작가님은 유머러스하고, 지적인 기대도 밀도있게 충족시켜주시고, 게다가 눈물나는 감동도 한 스푼이 아니라 수십 스푼 넣어주시는 작가님이시다. 

니은서점 창립(!) 때가 기억이 난다. 간다 간다 해놓고 못 갔다. 연신내가 너무 멀어서 그랬기도 했고 페친일 뿐이었던 노명우 작가님을 만나는 것이 어색해서... 그러다가 한 두 번 책을 주문했다. 

내 첫 책이 나올 무렵에는 메시지를 주셨다. 언제 나오냐고. 그리고 책이 나오면 연락을 주신다고 했는데, 연락이 안 왔다. 끝.  이렇게 니은서점과의 연이 끝나나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새벽 독서 모임과 함께 내가 하필이면 이 오디오북을 들은 것은 그저 간단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노명우 작가님의 니은서점 책을 읽으면서 책은 이렇게 사랑하는 거구나, 이렇게 천천히 읽고 메모하고 쓰면서 스며들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니, 진작에 알았는데 오래도록 모른 척 하다가 이제야 무릎 꿇었다. 어려운 책, 특히 철학서 같은 것을 도장깨기 하듯 독식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장을 붙들고 하루종일 읽었다면서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건 번역 문제 아닌가? 이러면서 그딴 짓을 왜 하지? 오만하게 생각했었다. 굳이 어려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지적인 허영심이 있는 자들이라고, 참 시간들 많아서 그렇게 벽돌책 읽고 앉았구나 치부하기도  했고. 

오늘 노명우 작가님의 책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새벽 독서 시간 두 시간의 충격파를 맞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자유로에서 깊이(모르겠다, 이것도 내가 깊은 것인지 아닌지도... 그러나 내겐 좀 쑥 들어왔다) 깨달은 바가 하나 있었다. 


읽자. 공부하자. 


그동안 너무 몸으로 겪은 일만 가지고 오래 때워왔고, 울궈 먹었다. 나 고생 진짜 많이 했어요, 이러면서 곰탕 수십, 수백 번 끓여서 지금 바닥 다 떠껑이졌다. 입으로만 나불나불, 겉만 툭툭 건드리면서 지식인 행세 오래 했다. 

하루를 열며 새벽에 처음 읽는 활자가 그를 읽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함부로 마음을 쓰고 허투루 글을 쓰면 절대 안된다, 그것은 사람들의 정신에 메스를 함부로 대는 일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덜컹 내려앉았다. 


작가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스승이며, 다른 세계로 건너가서 스토리를 구해와 자기가 사는 세계의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샤먼임을 인식해야 한다.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 p172


지금 계약한 모든 글빚들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도, 칼럼도, 스타가 되고 싶다고 지랄하며(?) 쓰고 있는 이 드라마 작업기도... (원래 이 드라마 작업기의 가제가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였다)

그리고 '쓰는 인간'이라며 뭔가 깨달은 것처럼 나불대는 에세이도, 그동안 에세이 가르친다며 내뱉었던 얄팍한 말들도... 모두! 

자기 혐오를 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들어가는 인풋은 얼마 없이 아웃풋만 터무니 없이 뽑아내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내 말과 글은 어쩌면 그동안 입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다 녹아 없어지는 바나나킥 같은 글이 아니었나. 

돈 받고 글 쓰는 것이라면 방방대지 말고 좀 더 정제하여 끌어내리고 밀도 있게 써야 하는데 너무 나에 취했던 것은 아니었나. 물론 내 경험도 굉장히 소중한 재료이긴 하다. 그런데, 파전을 부치는데 너무너무나 싱싱하고 새파란 파만 있으면 뭐하나, 반죽이 좋아야 했다. 

그동안 페이스북에서도 그렇고, 이곳 저곳에서 차분한 글을 읽으면, 저건 저 사람 성격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내 글대로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고 여겼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지만, 더 촘촘한 밀도가 있어야 한다. 글로 글쓴이의 성격을 대략 톺아볼 수 있지만, 읽고 공부하는 만큼 정돈되어 나온다는 것을 오늘 명료하게 알았다. 알았으면 됐다. 실천하면 된다. 그동안 무식한데, 가리느라 애썼다. 


사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내 약점을 알고 있다. 특히 '구성'에서 아직 김은숙, 박해영 작가와 같은 경지에 이르려면 멀디 멀었다. 어쩌면 살아 생전에 가 닿지 못하고 죽을 지도 모른다. 아직 이름값까지 없는지라 내 생각을 펼쳐내는 데에 한계도 있다. 

그러나, '나'라는 땅에 '세상'이라는 지나온 시간과 공간이 심어준 씨앗이 있다. 나라는 인간에게, 어떻게 하다보니, 무엇인지는 모를 존재가(신이 있다면 그 모든 신, 신이 없다면 그냥 거대한 시간의 흐름...) 심어준 삶의 프로그램이다. 아주 소중한 경험이자 기억이다. 

이 씨앗은 내가 그렇게 존경해마지않는 김은숙, 박해영,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자면 스티븐 킹, 오가와 이토와 같은 작가들의 땅에는 없는 나만의 씨앗이다. 이렇게 소중한 씨앗을 그냥 말려 죽일 셈인가. 땅에 심어졌는데, 이 씨앗은 앞으로 싹을 틔우고, 꽃이 피우지 못할 거라고 믿고 살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들었던 이야기이다. 한 사람이  임신했는데, 뱃속의 이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10개월을 품고 있는 엄마가 도대체 세상에 어디 있나. 그래서 나도 믿고 앞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뭐하냐고요?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놈의 기획안, 황섬 글에서 '기획안'이라는 단어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곱 번째 엎어지고, 여덟 번째 다시 쓰고 있다. 이 정도 되면 일 안 되는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미 베테랑들은 안 되는 일은 아닌 것 안다. 눈에 훤히 다 보인다. 그러니까 일찌감치 바보짓 하지 않는다. 중간에 이리 빼고 저리 빼면서, 너도 좋고 나도 좋은, '무난히 일을 그만두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만 둘 수는 없다. 아직 내 이야기 장독 속에 뭔가 잔뜩 쌓였으니까. 이건 다 꺼내 놓고 쇼부를 봐야 내 생에 눈을 감겠다. 이런 고집이 또 망생이 시절 특권 아니겠나. 믿어보자! 황섬, 한번 믿어보자!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혼을 네 번 하고 이별을 네 번 한 여성이다. 내가 제일 힘들어했던 것은, 이 여성의 사랑이 병적으로 보이면 안 된다고 움추러들어서였다. 몇 년을 꽁꽁 싸매고 힘들었다. 남들 보기에 흉하지 않을까 왜 굳이 이렇게 결혼을 해야만 했는지, 꼴 보기 싫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엄청 두려웠다. 제작사 피디도 그렇고, 정작 글을 쓰는 나도 그렇고 계속 자기 검열에 휩싸였다. 이렇게 이혼할 거 알면서 주야장천 결혼한다고? 거기다가 이혼한 여자가 자폐아까지 기른다고? 너무 과하지 않나? 사람들은 공감 보다 의문을 제기했다. 왜?

논리적으로 설명과 반박부터 해야 하는 것이 내 드라마 기획서의 출발이었다. 당연히, 아아~ 너무 재밌겠다! 하면서 감탄이라는 미풍에 실려가는 기획안과는 다른 힘든 허들을 넘는 과정이었고. 그런데, 이게 내 땅에 뿌려진 내 씨앗이다. 이혼 여러 번 한 여자가 그 시절 25년을 거치면서 어떤 역사를 만들어나왔는가. 바로 내 이야기다. (물론 나는 결혼을 다섯 번 했지만, 리듬감 있는 이야기 전개를 위해 한 번을 생략했다. 현실이 시궁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떤 누구도 네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돌아와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디테일하게 잘 모른다. 당연히 상상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그것대로 소중하다. (어떤 것이 더 낫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 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비실댈 때도 있다. 많다!) 한국 사람에게 4자라는 의미가 뭔지 생각하면서도 피식 웃어보고. 가정법원의 이혼 절차가 몇 년 전하고 또 다른 것을 보고 와, 이혼서류 들고가서 줄 서면서 혼자 놀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이 지금의 나처럼 기 죽는 걸 시청자들이 보고 싶을까? 결론은 당연히 노! 였다. 

이리저리 바람에 떠밀리는 나에게  어떤 분은 또 이 한마디 남겨주었다.

사랑의 숭고함. 당신은 왜 사랑의 숭고함을, 이 주인공을 통해 쓰질 못하는가! 


사랑의 숭고함


나는 얼마나 사람을 사랑했으면 그렇게 결혼하고, 아이들까지 낳았을까!

그 태초의(?) 정신을 되찾는 것서부터 시작해야 할듯하다.

아주 오래 전 우리 엄마가 나랑 싸우면서 나한테 꽥 지른 말이 있었다.

야!!! 이, 이혼녀야!!!!

칫, 자기는 이혼 한 번도 못해봤으면서... 이 얘기 듣고 나도 눈 파랗게 돌아서 엄마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무슨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정작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이것도 내 삶의 땅에 심어진 씨앗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는 엄마의 느낌과는 거리가 먼 기발한 엄마와 함께 사는 또 다른 말썽쟁이 딸. 내 드라마 기획안을 읽는 사람들 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가족들도 이렇게 항의하고, 도발한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이들부터 설득해 나가야 하겠지. 어려운 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을 점점 늘려나가는 과정. 이것이 나의 드라마 작업 과정이다. 


심리적인 결기가 끝났다면 이번에는 모든 설득의 논리와 감성을 기획안으로 잘 꿰어서 내놓자. 기획안을 쓸 때 시놉시스, 화별 줄거리는 짧은 소설을 빚어낸다는 리듬으로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듯하다. 메모 조각들을 모으는 느낌으로 쓴 기획안은 겉으로 다 허술한 티가 난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본부터 덤벼드는 분들보다는 에세이나 소설을 많이 써보고 난 뒤, 기획안으로 들어가는 분들이 아무래도 웜업이 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와 같이 에세이 몇 권이나 내고, 사회 초년생부터 광고 대행사에서 기획안을 쓰며 살아왔던 사람이라도 이렇게 '예외적으로' 엎어지고, 자빠지는 수가 있지만...  지금 지나가고 있는 길은 가시밭길이지만, 이렇게 시련이 있으면 결과는 꼭 좋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화 안 되고, 잠 못 자고,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맴 도는 정도의 가시밭길은 비정상적인 길이므로 반드시 전문적인 진찰을 받아야 하고, 정신의 점검이 필요하다. 잊지 마시길.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글 쓰다가 인간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가. 

나는 적어도 오늘, 내일, 가시밭길이긴 한데, 내 정신상태 핸들링 가능한 정도의 길을 걷고 있다. 부디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것은 '나'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내가 쓰는 글에서도 나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지나온 세월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그대로 찬란하게 반영하기를 바란다.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글의 대문 그림처럼... 자유롭게 무대 위에서 춤을 추어야 하는 것이다. 


*** 그림은 존 싱어 사전트의 '엘 할레오'다. 

할레오는 갈채, 응원을 뜻한다고 한다. 플라멩코를 추고 있는 여인, 누가 이 여인의 욕망을 짓누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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