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섬 Dec 04. 2023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드라마 쓰는 언니 속터짐의 기록.   

지난 달부터 타로를 배우고 있다. 타로 카드를 하나하나 뽑고 읽으면서 마음도 가다듬기도 하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에너지나 상황의 흐름을 가늠하고 미리 대비하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했다. 드라마 작업 시작하면서 1년 반 정도 타로카드는 내게 훌륭한 심리적인 안정제(?)가 되어주었다. 배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지난 목요일 기획안 회의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 그날 오전, 타로 수업이 있었다. 선생님께 타로를 봐주실 수 있겠냐고 여쭈었고, 선생님은 흔쾌히 카드를 섞기 시작하셨다. 
 


나는 아직 초짜라서 카드의 의미를 잘 꿰어서 읽어낼 경지는 아니다. 그리고, 카드도 왜 이렇게 배치가 되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주신 바에 의하면 이날의 카드가 주는 메시지는 이거였다. 


지금 세 명이 서로 의견을 모아 팀웍을 발휘한다.(메이저 6번 러브 카드, 3번 컵 카드, 신기하게 이 카드가 연속으로 나왔다. 세 파트...)

주저없이 일은 진행된다. 자금 문제도 현재는 안정적으로 보인다. 

저 아래 카드 두장. '운명의 수레바퀴'와 하늘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컵 10번' 카드를 보면  결국,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을 것 같다.(운명의 수레바퀴는 무조건 질문에 긍정의 답을 주는 카드이며 10번 컵은 타로에서 대표적인 결혼 카드다) 

그러나, 아직 완벽하지 않다. 뭔가 진행하는 데에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나온다. 또 한 번의 고난이 있을 것. 그것을 제작사의 대표가 중재를 하고 결정을 내릴 것이다.(오른쪽 위에 킹 카드) 그리고, 문제의 열쇠는 내게 쥐어질 것이다.(오른쪽 여황제 카드) 마음 편히 회의 다녀올 것.

이것이 이 사진의 리딩이다. 


기획 회의에 들어갔다. 다른 제작사에서 우리가 잡았던 것과 비슷한(아냐! 똑같은!) 포맷의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고, 바로 이날 회의실에서 따끈따끈한 기획안을 받아 다 함께 읽어보았다. 나는 지금이라도 이 정보를 입수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 또 엎어지겠구나 하고 이 꽉 깨물기. 더 솔직한 심정은... 아마 이 기획안 백프로 마음에 안 든 것 같은 분위기인데, 때마침 우리랑 비슷한 기획의 드라마가 나와서 내 입장이 덜 구겨졌구나 하는 (비겁한) 마음... 이었다. 또 한 번 참담했지만 꾹 눌러참을 수밖에... 지금 내가 속상한 게 문제가 아니라 빨리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이니까.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마음 속으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이 터널, 끝이 보이려면 아직 멀었겠지 하고 어둠속을 헤쳐나가는 것보다 '그래, 다 왔다. 조금만 더 가자, 다 왔다.' 라고 주문을 외우며 건너가는 편이 생존률이 더 높다. 마음이 지쳐서 다리가 풀리는 일은 없어야지. 


"지금 다섯 번째 엎어지고, 여섯 번째 기획안을 써야 하는군요."

김 빠진 내 말에 피디님이 고쳐주었다. 지금 세어보니까. 일곱 번째 기획안 바뀌고, 여덟 번째 써야 하는 거라고. 그리고 기존의 기획안이 발랄하고 억척스러운 주인공의 성공담이었다면, 이번에는 주인공의 처절한 비극으로 완전히 뒤집게 되었다. 

기획 처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팩트는 단 한 가지다. 네 번 결혼하고, 네 번 이별한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 이 여자가 왜 이렇게 줄기차게 결혼했고, 어쩌다가 이혼했을까. 이 디테일을 잘 잡아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인데... 이번에는 좀 더 날카로운 상상력을 꺼내와야 하는데, 뇌가 영 멈추지가 않는다. 이러다 연기나겠어. 

또 하나 가슴에 턱 와서 박힌 주문은 이것이다. 


"아무리 결혼을 네 번하고, 이혼을 네 번 했다하더라도 결과가 화끈해야 돼요. 캐릭터가 이렇게 작가님처럼 멀쩡하게 살아있으면 안돼. 이렇게 평범하게 살면 안 돼." 


아아... 지난 2010년 이후, 정말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너덜너덜하고 숨도 못 쉬게 힘겨울까 싶었었다. 정말 당장 다음달을 살 수가 없어서, 금방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어서 다섯 살, 여섯 살 먹은 아이 생각도 안중에도 없었다. 너무 힘들면 사람이 이렇게 돌아버린다. 그런데, 이제 내 삶은 '멀쩡'과 '평범'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회의 마치고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대표님 말씀인데, 사실 마음 속으로 조금 울었다. 스스로 대견해서... 그렇게도 바라던 평범한 삶! 이젠 글 쓸 때 나처럼 '밋밋한' 캐릭터 쓰면 안 된단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이런 단어들이 떠돌아다닌다. 

꿈, 착각, 일장춘몽, 웃기는 짬뽕, 허무, 장자, 이세계, 좌우지장지지지...

그리고, 이것. 


"남의 인생 함부로 떠들어놓고, 본인이 평가받는 건 불쾌해?

인생이라는 거 그렇게 공평하지 않아. 평생이 울퉁불퉁 비포장도로인 사람도 있고, 평생 죽어라 달렸는데 그 끝이 낭떠러지인 사람도 있어."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나온 남자 주인공 홍두식(김선호 분)의 대사다. 아주 좋아하는 대사다. 

평생을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지나 개고생하면서 지나왔는데, 결국 끝이 낭떠러지인 사람도 있다니... 아마도 이 글을 읽고 계신 그 어떤 누구도 이 결과를 원치 않을 것이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만해도 만약 미친듯이 폭풍우를 헤쳐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끝엔 파란하늘이 보일 거라고 기대하면서 왔다가 시커먼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면 억울해서 눈도 못 감을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왜 나라고 절벽 못 만날까 싶고 말이다. 누가 내 앞에 푸른하늘이 펼쳐진다고 누가 장담하겠나. 이런 비극을 맞이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벌써 오후 6시 33분이다. 

뇌가 좀 멈추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정신승리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