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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Dec 11. 2023

가자, 우라까이의 세계로!

아니 그걸 이렇게 우라까이 했어?

일본어에 '우라까이'란 말은 없다!

우리나라, 이쪽 선수들의 용어로 우라까이란 말이 있는데... 고상하게 이야기하면 '오마쥬'이자, 직설적으로 말하고 '베껴서 베베 꼬기' 정도 되겠다. '표절'과 애매한 선을 넘나드는 이 우라까이란 단어의 어원은 뒤집는다는 뜻의 일본어 '우라카에시'에서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말로 넘어오면서 다듬어지고 깎이고 해서 우라까이로 변형이 되었단다.


지난 주 7번 방의 비밀도 아니고, 7번 째 기획안이 콰당! 엎어지고 난 뒤, 기나긴 심연으로 빨려들어가는 심정이라기 보다... 한 며칠 그냥 멍했다. 그리고 며칠 뒤, 뇌가 제대로 '강토시'에게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토시 생각만 했다. 심지어 유치하지만, 혼자서 토시한테 편지를 썼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냐고... 내가 어떻게 하면 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냐고.
다들 아직은 모르시겠지만, '강토시'는 사람 이름이다. 여자다. 기획안이 수없이 무너지고 재건립되는 와중에 늘 굳건히 자빠지지 않은 단 하나의 아이템. 내가 지어준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토요일에 태어난 한 수의 시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土詩.

성명학적으로는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랑스러운 이름이다.

여하튼 자나깨나 희부연 아이디어 속에서 뭔가 또렷이 잡히지는 않고 아이고, 죽겠는 것이다. 그동안 계속 쌓아왔던 이야기 중에서 강토시 하나만 남고 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마치 고등어구이 살만 쪽 다 발라먹고 가시만남은 것처럼...


지난 번 글에도 쓴 것 같은데 나는 칼 융의 동시성의 원리를 상당히 무게감있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을 때 도서관 앞에서 가서 그냥 눈 가는대로, 손 가는대로 아무 책이나 뽑아든다. 마치 타로카드처럼. 분명히 내가 골몰하고 있는 생각에 어떤 가닥을 잡게 해줄 정보를 줄 것이라서 말이다.

만약 내가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이야기를 쓰고 있다 할지라도 갑자기 뇌과학 책이 눈에 들어와서 집으면 분명히 그 안에서 무슨 메시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두 연인 머릿속 뇌의 변화를 스토리에 집어넣는다거나...

물론 우연히 일어난 일을 뭐 또 '동시성'이라는 있어보이려 하는 단어까지 가져다 쓰면서 '원리'까지 박아놓냐고 하면 딱히 길게 할 말은 없지만, 여하튼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제대로 파고들어 여러분들께 소개해볼까 한다.

드라마나 책,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에 폭 빠져 열광하면 나는 몹시 행복하다. 나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좋아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에 나오는 같은 공간 안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찧고 까불고 함께 울고 웃는 경험을 사랑한다. 그런데, 근래 그럴만한 것들이 내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아 이거 내가 감성을 잃은 건가, 이런 메마른 감정으로 무슨 드라마를 쓰지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웬걸! 대어를 만났다.



바로 오가와 이토의 소설 <츠바키 문구점>이다.

오늘은 이 츠바키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중심으로 이와 비슷한 포맷의 소설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조금 있다가 소개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을 기점으로 비슷한 구성의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그 현상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고, 인상 찌푸릴 수도 있다.  표지도 정말 엇비슷하다. 컬러풀한 색채에 소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건물 그림...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표지 그림들 말이다. 유치한데, 왜 자꾸 이런 책 써? 이유가 있었다.

자, 그럼 출발!


<츠바키 문구점>은 일본 가마쿠라의 한 오래된, 조그마한 문구점이 배경이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은 '포포'라고 불리는 젊은 여성. 그냥 문구만 파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에게서 평생 배운 글씨로 다른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준다.

츠바키 문구점을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애틋한 사연들이 있다. 동네 사람일 수도 있고, 멀리서 편지 대필을 부탁하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서사가 촘촘하게 엮여 하나의 소박한 소설 한 권을 이룬다. 뿐인가. 중간중간 종이와 필기도구에 대한 깨알 소개도 미칠듯이 재미있었다. 일본 소설 특유의 잔잔한 먹거리 이야기도 좋았고.


두 번째 소개할 책은 당연히 <불편한 편의점>이다.


책 표지에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놓은 것과 같이, 책이 이렇게 팔리는 건 근래 없었던 일이다. 경이로운 밀리언셀러다. <망원동 브라더스>와 <연적> 등 '우리동네 찌질이'를 소재로 써보라면 이분을 따라올 자가 없을만큼, 주변에 가끔 보이는 뭐 좀 잘 안 풀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짓는 데에는 가히 천재라 불리울만한 김호연 작가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의 올웨이즈 편의점에도 동네의 수많은 망생이와 미생들이 모여서 자기들의 이야기를 씨실과 날실 삼아 한 편, 아니 두 편의 훌륭한 소설을 탄생시켰다.


세 번째로 <불편한 편의점> 열풍을 이어받은 것이 바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황보름 작가의 작품이다.


휴남동이라는 동네는 가상의 공간이다. 내 느낌으로는 동네 분위기가 살짝 연남동인데다가 휴식을 간절히 바랬던 주인공 영주의 소망을 담아 만들어낸 이름이 아닌가 싶었다.
삶에 지친 영주는 휴남동에 서점을 내고 장사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내내 틀어박혀 책만 읽는다. 그러다가 커피 바리스타 민준이 들어와서 슬슬 분위기에 시동을 걸고 이후로 서점에 '어서 오는' 모든 이들이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북토크도 한다.

읽는 이들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에 따라 모두 이 서점에 놀러가는 기분도 들고, 북토크에도 함께 참여한다. 그리고 민준이 내리는 커피도 마시고, 원두의 향도 맡고 있다는 착각이 인다.  이 소설이 주는 힐링과 위로는 기본 메뉴다.


네 번째로 소개할 소설은 바로 내가 좀 전까지도 열광해서 또 한 번 곱씹고 곱씹어 읽은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입니다>이다. 최고다, 최고.


물론 다른 소설들도 다 한 공간에 모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엮었지만, 이것처럼 나를 쥐락펴락 울고 웃게 만드는 소설 참 오랜만이었다. 연남동에서 오랫동안 약국을 했던 진돗개와 사는 독거노인, 산후우울증에 육아 스트레스로 힘든 나날을 겪는 엄마, 관객 없는 버스킹 청년, 만년 드라마 작가 지망생, 데이트 폭력 피해자, 아들을 해외에 보낸 기러기 아빠, 그리고 보이스 피싱으로 가족을 잃은 청년까지... 이들은 24시간 빙굴빙굴 빨래방을 한 공간 삼아 각자 자기의 삶을 살아낸다.

정말 김지윤이라는 작가가 도대체 누군지, 책을 덮고, 혹은 오디오북을 끄고 중간중간 검색을 해봤는데 도저히 이 천재 작가의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책, 꼭 한 번 읽어보시길. 한 줄 한 줄 묘사도 캐릭터에 대한 공감도 너무 뛰어나서 내가 두 무릎을 꿇고 읽고 싶을 정도였다.  


다음은 내가 아직 다  읽지는 않은, 비슷한 포맷의 소설들을 소개해본다.


지금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을 읽고 있는데, 일본의 한 기차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기차가 전복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생긴 큰 사고가 있었는데,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 바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기차역이다. 그런데, 역시 요괴의 나라, 일본! 이 기차역에는 한 유령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 유령을 만나면 그 기차사고로 죽었던 사랑하는 사람을 기차 안에서 딱 한 번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자기가 탄 기차가 이 역을 지나가기 전에 내려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죽는다. 굉장히 무시무시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아무리 그 사람을 이 기차에서 내리게 하거나 무슨 수를 써서 살리려고 해도 그 사람이 죽었다는 현실, 과거에 벌어진 일은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제는 다시 못 볼 그를, 그녀를, 엄마를 아빠를 만나러 이 역에 모인다.


마지막으로 같은 포맷으로 일본의 <커피가 식기 전에>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나는 먼저 영화부터 봤었다. 나는 도저히 예쁘다고 동의할 수는 없는(아아~ 수많은 남성 팬들의 원성이 들리는 듯하다) 배우 아리무라 카스미가 주연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푸니쿨리 푸니쿨라'라는 한 커피숍이다. 이곳에는 어떤 여성이 늘 말 없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자리가 있는데, 가끔 그 여성이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울 때면 그 자리에 앉아 내가 원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그것도 딱 커피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만큼... 커피가 다 식기전에 바닥까지 마셔야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번에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을 읽으면서 이 소설과 신기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 신비한 현상, 각각 소설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서 앞에 규칙을 몇 가지 세우는데, 두 소설의 공통점은 바로...

지나간 과거는 아무리 바꾸려해도 현실에서 바꿀 수 없다는 것.

커피숍에서 과거로 돌아간 사람들은 분명히 이 규칙을 알면서도 자꾸 마음이 흔들려서 어떻게든 과거를 바꿔보려고 하다가 좌절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것이 참 마음이 아프다.  


이밖에도 목욕탕, 빵집 등등 수많은 공간에서 우리네 이야기들이 반짝반짝 은하수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작가들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글로 받아서 한 땀 한 땀 뜨고 있다. 편집자들은 표지에 들어갈 건물 그림을 뭘로 해야 할까부터 아마 골머리를 앓고 계실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편의점, 빨래방, 서점........ 이 포맷이 왜 이렇게 터질까 생각해봤다.

사람들이 위로를 얻고 싶구나. 비극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사실 이게 작금의 판타지인데, 그래도 마지막엔 희망을 얻고 싶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거 없다고 표절이 아닌, 건강한 우라까이는 세상의 모든 크리에이터들에게 좋은 등불이 될 것이다.

자, 나도 지금부터 우라까이 들어간다.

어떤 공간에 어떤 사람들을 모이게 할까. 그리고 어떻게 서로서로 촘촘하게 관계를 맺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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