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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08. 2024

오십에 시작하는 차박

일 년, 사 계절 차박 도전기 

어느 날, 갑자기 차박에 꽂혔다. 남편이 세금 때문에 못살겠다면서 차를 카니발 9인승으로 바꾸고 난 다음이었다. 가족들이랑은 캠핑은 언감생심, 어차피 나 혼자 다녀야 하는 터라 텐트 치고, 밥 해 먹고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어서 내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박'이 내 인생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차박의 강점은 아무래도 숙박시설을 고르는 스트레스(즐거움이기도 하지만...)와 금전적 압박을 면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게다가 자연을 벗 삼아 하룻밤 자는 노지 차박이야말로 차박의 정수 아닐까. (그런데 반달곰한테 해코지 안 당하려면 차를 안에서 잠그는 방법부터 배워야겠구나... 어떻게 잠그지?) 


평소에 특히 여자 솔로 차박 하시는 분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안전하면서도 사람 없고 고즈넉한 사이트를 몇 개 봐두었다. 혜성이가 당분간 매일 수영을 하고, 곰돌도 벌써 고3이라 아무래도 일-월 1박 정도밖에 시간을 내지 못할 것이므로 인산인해로 인한 불편함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름대로 원칙을 세운 것이 몇 가지 있다. 미니멀 캠핑으로 하자는 것. 밥은 되도록 사 먹거나 사 가지고 와서 조리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것. 절대 쓰레기 남기지 말 것. 주변에 사람 없다고, 맥주 이빠이 먹고 수풀에다 소변 금지. 클린 차박 사수. 


오늘은 새벽에 갑자기 어머님이 침을 흘리신다고, 그리고 메스껍고 토한다고 하셔서 또 내 마음속에 작은 불이 났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게다가 4월부터는 어쩌다 보니 아이 시간표에 맞춰서 내 삶이 돌아가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사이클로 살아본 적이 없는 터라 몹시 긴장된 한 주였다. 이렇게 팽팽하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살다가는 얼마 못 가서 몸이든 마음이든 둘 중 하나는 툭 끊어질 것 같았다. 

병원에 갔다 와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작정을 했다. 

차박 일 년 네 계절, 한 번 해보자. 마음 수련 하듯이 해보자. 그렇게 일상의 스트레스 날리고, 마음 풀충전 하고 돌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자. 평생 집 없어도 되니, 카니발이 내 집이려니 생각하고 전국을 돌아다니자. 그리고 그 여행 기록, 차 안에서 드는 내 마음 꼼꼼하게 글로 남기자. 


예스24 찾아보니 차박에 관해서는 정보성 서적만 있고, 본격 여행 에세이는 없다. 안 팔려서 안 쓰는 거겠지. 도무지 책이란 것이 어떻게 해야 팔리는 것인지 정말 복불복이라서 가늠을 할 수가 없다. 수많은 여행 산문집 중에 왜 차박 산문집은 없단 말인가. 여하튼 시류가 뭐라고 하든, 트렌드가 어떻게 돌아가든 차박 하면서 검은 머리 인간 고쳐 쓰는 과정은 적어 내려갈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도 인생도... 2024년 한 바퀴 돌아가는 궤적에 나를 한 번 던져본다. 

가장 큰 걱정은 여름 무더위와 모기다. 오히려 겨울 폭설이나 강추위는 무섭지 않다. 아, 단연코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




차박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을 준비해 봤다. 혹시 눈 돌아가서 과소비할까 봐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며칠 두고 보려고 한다. 혹시 캠핑이나 차박에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 하나하나 꼼꼼히 소개글 남겨봤다. 


아래 방수매트 깔고, 겨울 이불을 덮고 자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매트 비용, 이불 비용 합치니 그냥 침낭을 사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이소에서 방석용 핫팩 충분하게 사서 깔고 잘 예정.




차박 커튼 갬성 커튼.. 이런 것 싫어서 그냥 짱짱하게 하나 좋은 것 구매하고 완벽하게 가드 하려고 골라봤다. 겨울엔 단열 효과도 기대해 봄. 여름에는 다이소에서 은박 매트 사서 차 위에 덮으라고 그게 짱이라는 조언도 있어서 지금 다이소 한 번 가보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이렇게 비싼 것 사지 말고 부직포 같은 것으로 툭툭 가리라고 하시는데, 나는 이 가리개가 약간의 심정적인 보호막 같은 역할까지 하는 터라 조금 더 지켜보고 있다. 외부에서 완벽하게 가려지고 싶다. 


아아... 파뱅... 파워뱅크는 말하자면 대용량 배터리이다. 리튬과 인산철 파뱅 중 고민하다가 이것으로 낙찰. 카페 들어가 보니 파워뱅크 관련 문의는 왜 유난히도 꼰대들이 많은지...

처음 시작할 때는 파뱅 사는 거 아니라고, 하면서 배우면서 공부하면서 사는 거라는 댓글들이 아주 장사진을 이루어서 이게 뭔가 싶었다. 일단 나는 노트북을 하루 종일 충전해야 해서 파워뱅크는 필수다. 그리고 여행 갈 때마다 간당간당하는 핸드폰 배터리, 아이패드 배터리... 아주 짜증이 났었는데... 그저 이것 하나로 퉁. 이왕 사는 것 용량 충분한 것 사라고 해서 솔로 차박할 때 모자람 없는 용량으로 준비해보려 한다. 

그리고 커피나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 먹으려면 전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아아.. 감성 차박엔 랜턴 필수. 나는 어두운 환경에 적응이 잘 되어 있는지라 그냥 이 두 개로 버텨보려고 한다. 만약 조금 분위기 내고 싶다면, 별 전구 같은 것 사서 안에다가 걸쳐도 좋을까. 


정리 박스 겸 테이블. 넉넉히 두 개 사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노트북용 좌식 테이블을 하나 또 장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일단 한 번 써보고 결정해보려 한다. 



요거 요거 신박한 물건. 병원에 입원하시는 분들이 많이 쓰는 모양이다. 혹시라도 주변에 목욕탕이 없을 때, 그래서 찝찝할 때 사용하려고 준비해 봤다. 날 더울 때 차박하면 꼭 필요할 듯. 



요리는 차 안에서 되도록이면 안 해 먹으려고 하긴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라면이나 계란 후라이 정도는 해 먹고 싶어서... 따뜻한 국물이 땡길 때가 있다. 그럴 때 캠핑 감성 느껴보고파.



휴대용 변기 고르다가 이 사진 보고 대번에 믿음이 가서 픽. 풀밭에서 용변 삼매경에 빠진 성인 남성도 거뜬하게 버티는 내구성에 반함. 비닐 깔고 그 위에 성인 기저귀를 한 번 깔고 응고제 부으면 완벽 처리된다고 한다.

원래 용변 분해제로 유명한 것이 '포타포티'라는 것인데 그것도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얼마 전까지 가던 헬스장의 트레이너 님이 캠핑 열혈주의자셨다. 그래서 그분께 주워들은 이야기가 쏠쏠한데, 그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바로 캠핑을 하러 갈 때는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뭘 하려고 가면 안 된다며 '아무것돈 안 함'의 철학에 대해 설파하셨다. 그냥 바람이 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사슴이 오면 왔구나, 배가 고프면 먹어야겠구나, 졸리면 자야겠구나... 이런 자연의 순리에 나를 맡기는 것이 바로 캠핑이라는 것이었다. 아직 '내 집 마련'이 나는, 그래서 더욱 안이라는 나만의 공간이 소중한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저 여생을 끌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동네 도서관마다 다니면서 빌려 읽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이야기, 상상했던 이야기는 소설로 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좋겠다. 


아이 수영대회가 5월 중순에 끝나는 지라 아무래도 첫 차박은 5월에서야 머리를 올릴 것 같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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