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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22. 2024

갈비탕 단상

아들의 '첫 시합'을 앞둔 엄마 마음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굉장히 예민하고 무엇보다 잠귀가 밝았다. 까무룩 잠들려고 하는데, 아파트 안내 방송이 흘러나와 화들짝 놀라기를 수 차례. '내가 저 아파트 안내, 저 녀석을 주리를 틀지...' 하던 날이 몇 번이나 되었는지 모른다. 종이로 천정 스피커를 막아보기도 하고, 방석으로도 어떻게든 수를 써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아들은 평균 12시 정도나 되어야 그 엄청난 에너지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고,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냥 넋 놓고 아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 엄마에게 느느니 술이었다. 알코올 기운을 빌어 타임 슬립 효과를 누리지 않으면 도저히 나에게 주어진 기나긴 24시간을 견뎌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하루하루는 견뎌내는 시간이었다. 어린이집으로 아이 데리러 가는 시간에는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남들은 모두 하루를 정리하고 들어가는 시간에 이제부터 시작되는 꼬마 악동과의 전쟁이 힘겨워서...      

  아들, 한국 나이로 네 살 무렵 '자폐'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폐아들의 일부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이 '무시무시하게 특별한 각성', 바로 잠이 없는 것이라는 것도 배웠다. 이유라도 알고 나니까 조금 마음은 편했다. 그래서 얘가 이렇게 안 자는 것이었구나. 그런데, 자정이 다 될 때까지 힘차게 블록을 가지고 성을 쌓고, 침대 위를 방방이 삼아 뛰는 일상은 계속 됐다. 그때, 같이 자폐아를 키우는 아빠가 귀띔을 해줬다.       

"수영을 시켜보세요. 장애인 수영은 비장애인 운동하는 친구들하고 똑같이 대우를 받아요. 그리고 종목도 엄청 많아서 그중 메달만 하나 딴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 그 아빠는 나에게 종목 수를 정확하게 알려주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마음은 이랬다.      

'에이~ 얘가 지금 말도 못 하고, 연필도 제대로 못 잡는데 무슨 운동이야.'      

그저 남의 일만 같았다. 그래도 뭐라도 해서 이놈의 팔팔한 에너지를 좀 밖으로 빼내고 잠이라도 일찍 배우자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것도 안 하고 10대가 되고 20대가 되어 나만 졸졸 쫓아다니는 아이가 되어가느니 뭐라도 시켜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난 선생님이 의정부에 계시는 분이었던 것. 이렇게 다섯 살부터 수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진짜 첨벙첨벙 물놀이한다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수영 강습에 많이 빠지기도 하고, 한 시간에 5만 원이라는 비용도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미리 말씀드리고 하루 안 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하던 어느 날, 1학년, 8살 때인가부터 아이가 슬슬 물살을 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 특유의 엄청난 힘으로 물살을 가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맘때부터 내 마음에도 슬슬 욕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호라~ 요 아이 잘 시켜보면 좋겠구나. 아직 나이도 어린 데다가 체격도 좋은데 장애인 수영부에서 뛰면 더더욱 유리하겠는데?     

  하지만 엄마의 욕심은 아이 인생을 구렁텅이에 빠지게 한다는 인생 대 명제와 아이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어느 정도 아이의 미래 빅픽쳐를 가지고 끌어줘야 한다는 믿음, 이 둘 사이에서 계속 갈등했다. 수영 시합에서 맨날 4등만 하는 아이가 또 다른 스포츠계의 희생양이자 체벌 악마였던 코치를 만나 벌어지는 '본격 엄마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인 <4등>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자제하는 마음으로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여보, 난 준호가 매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이 대사 한 줄에 모든 것이 녹아들어 있다.      

  그 뒤로 6-7년이 지났다. 어떻게 흘러들어와서 지금은 비장애 선수들하고 함께 운동하고 있다. 그리고 내일, 아들의 첫 시합을 앞두고 있다. 충북 도지사배 장애인 수영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청주에 내려왔는데, 선수 등록을 할 때 실수하는 바람에 그만 내일 경기는 고등학생 형 세 명과 뛰게 된다. 무조건 '지는 게임'을 하게 될 아들의 '첫 시합'을 앞둔 나는 숙소에서 조용하게 사뭇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어린 친구가 영문도 모르고 다서여섯 살은 많은 형아들하고 시합을 하게 되어서 멘탈이 멸망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들고 여러모로 오늘도 깊은 잠은 다 잤다.  


  그런데, 이 '첫 시합' 경험이 되게 내게는 신기했다. 첫 번째는 음식에 굳이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이었다. 맨날에 라면에 삼각김밥 먹던 사람이 하루 질 좋은 음식 먹는다고 드라마틱하게 확 좋아지겠냐마는 그 정성이 세포 하나라도 감복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아이가 편식이 심해서 먹는 것이 딱 정해져 있다. 미역국, 갈비탕, 계란 후라이, 김, 오리고기……  괜히 경기 앞두고 있다고 하니까 갈비탕도 호주산 갈비 말고, 국산 소갈비탕을 먹이고 싶었다. 평소에는 한 팩에 17,900원이라 거들떠도 보지 못했던 한살림 국산 소갈비탕을 한 팩 샀다. 생각지도 않은 지출이 생겨서 지갑 인심이 팍팍한 때에 2만 원 가까이하는 갈비탕 지출은 꽤 크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식빵도 딸기잼도 안 바르고 맨 빵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왕 먹을 거면 유기농 식빵으로 준비하고 싶었다. 동네에 있는 '정직한 빵'을 만드는 작은 빵집으로 동선도 안 맞는데 굳이 달려갔다. 그곳에서 홈런볼, 초코송이 같은 과자들 먹이느니 좋은 쿠키를 먹이고 싶어서 아들이 먹을 것을 집었다가, 아, 갑자기 딸이 생각이 난 것이다. 그래, 딸이 먹을 쿠키도 하나 더.     

 

  솔직히 이 순간, 내 머릿속으로 딸이 훅 치고 들어오면서 내게 아들이 치를 '첫 시합'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늘 김연아 선수가 자기한테 뒷전으로 밀려 늘 미안하다고 했던 언니가 생각이 났다. 양손 가득 보양식거리와 간식거리를 사 들고 오면서……     


  자식들 예체능 시키는 부모님들 '극성'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이들에게 평일이고 주말이고 가릴 것 없이 올인한다. 그런데, 그것이 꼭 고통스러운 과정만은 아닌 것이 예전에 한 야구장에서 야구 시키는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 경기하는 걸 지켜보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거의 대보름 맞이 동네 척사 대회(?)를 방불케 하는 현장이었다. 어른들이 모두들 스탠드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앉아서 자식들을 열띤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누가 누구 아이인지 대번에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아이의 동선과 엄마, 아빠의 동선이 일치했다. 한쪽에는 치킨과 족발이 주욱 펼쳐져 있고,  아이들 먹을 피자 옆에는 콜라, 우유 등이 줄 맞춰  있었다. 돗자리 펴 있는 자리에는 빠지지 않는 보온병의 믹스 커피 내음은 또 어떻고…… 마을 잔치가 벌어진 듯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극성이고 싶지가 않았다. 괜히 자식에게 목매고 목숨 거는 촌스러운 엄마 같아서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화가 아이 어떤 학원 보내는지, 뭐 시키는지, 아이가 자폐아임을 알고 나서는 어느 센터 다니는지, 어떤 치료받는지로만 화제가 온통 몰려 있는 것이 너무 견디기 어려웠다. 그리고 자식 교육에만 몰두하고 있는 이들을 한 수 낮춰 보고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운동을 한다고 하니까,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운동인 수영(그래서 어려서부터 시켰었겠지만)을 본격적으로 선수로서 하게 된다니까 온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반대로 아직은 '뭐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딸아이에게도 자꾸 아련하게 마음이 가는 것이다. 아주 야무지고 똘똘한 이 녀석은 한국을 들었다 놓는 슈퍼스타, 위인은 되지 않는다 치더라도 뭔가는 꼭 제 몫을 해낼 존재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정이 본디 매우 신중한 터라 섣불리 뭐 하고 싶은지 내게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진짜 '空'인 상태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너 뭐 하고 싶니 하고 들이대며 무턱대고 물어볼 수도 없다. 그러다간 원하는 답도 본전으로 건지지 못하고 노여움만 살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엄마, 나 이 갈비탕 먹어도 돼?"     

갑자기 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태연히 눌러 참으면서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러면서 속없이 갈비탕에 갈비가 국산이어서 그런지 되게 비싸다느니, 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이 갈비탕은 아무리 그래도 엄마랑 늘 떨어져 있는 딸이 먹어야지. 이렇게 바로 알아서 갈비탕 먹어도 되냐고 묻는 걸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다가, 어? 왜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엄마한테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지? 그 생각에 미치니 마음이 애잔해지고…… 마침 부모님 생신 저녁 식사가 있는 날이어서 딸이랑 함께 다녀오니 쵸코 쿠키, 오트밀 쿠키가 모두 없어졌다. 딸이 먹었구나 싶어서 빙그레 웃음이 났다.      


  이렇게 아들의 '첫 시합'은 내게 이런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진짜 없다는…… 그러고 보니, 왜 나는 갈비탕을 두 개 살 생각을 못했을까. 너무 비싸서 그랬기도 했지만, 그때는 생각이 온통 아들의 시합에 쏠려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딸이 갈비탕을 냠냠 먹으면서 이런다.      

"맛있긴 한데, 그래도 엄마가 해준 갈비탕이 제일 맛있어."     

나도 국물 한 번 떠먹어 보니 맞는 말이다. 이번에는 조금 비싸더라도 한우 갈비를 사다가 한 솥 끓여 놓고 아이들 양껏 푹푹 퍼먹게 만들어줘야겠다. 어쩌다 보니 초등학교 학생 일기장 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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