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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28. 2024

선 넘는 사람, 선 긋는 사람

장애인을 키우는 엄마들끼리는 암묵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당연히 정보도 교류하고, 서로 위안도 받고...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굳이 그쪽에 끼려 노력을 하다 그만두었다. 

한 반년 전, 어떤 분이 장애아를 키울 때 이제는 길게 바라보고 일상생활 영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는 조언을 주셨다. 아, 그렇지. 크게 공감했다. 혜성이도 이제 10년 뒤면 성인인데, 평생을 나와 혼자 살아야 하나? 이 생각을 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러면서 아이 왜 운동을 시키냐고 물었다. '우리 아이들'(특히 발달 장애아 엄마들은 우리가 키우는 아이들을 '우리 아이들'이라는 고유명사를 쓰곤 한다)은 운동 너무 힘들어하는데 왜 시키냐면서... 그래도 귀담아 들었었다. 장애인 자녀를 성인까지 잘 키워내신 엄마라... 운동은 장애, 비장애인 할 것 없이 다 힘들지. 

그런데, 어제 그제 그분이 다른 엄마랑 우연히 전화 연락을 하신 모양이다. 통화하다가 가볍게 혜성이 운동하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고, 그 엄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운동을 시키냐며 우리 집 경제적인 면도 이야기를 스치듯이 했나 보다. 돈도 많이 없다면서 왜 운동을 굳이 시키냐고. 
내 머릿속에 바로 비상경보 발동했다. '걱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냥 내 구역 침범한 것이다. 나한테 이야기해 준 엄마도 그 이야기를 크게 의미 두고 들은 것 같지 않고, 나도 같은 이야기 들었다며  나한테 웃으면서 말해준 것인데... 그 운동 왜 시키냐고 물어본 분... 선 넘었구나 싶었다. 

나도 혜성이 미래를 위하여 무조건 올림픽 내보내고, 1등 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보니까 그래도 잘할 것 같아서 시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하루에 두세 시간씩 물 틀어놓고 목욕하는 것을 하도 좋아해서 수영이라는 종목을 골랐다. 당연히 공부도 그렇고, 운동이나 그림이나 음악이나 어린 시절에는 장애, 비장애아 가릴 것 없이 부모가 조금은 힘 있게 끌고 가줘야 한다. 임윤찬 같은 천재 아니면 어느 정도의 기량을 닦을 때까지 지속적인 반복 연습이 필요한 예체능은 아이들이 중간에 재미없어서 포기하게 마련이니까. 
혜성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수영장 안 간다고 하던 시절도 있었고, 차로 데리고 가다가 앞자리 다 발로 차서 의자 가죽 난리 나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 악 물고 수영장 데리고 갔다. 난 이것이 금쪽이 나오는 부모들의 문제적 행동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그러면 김연아 엄마부터 오은영 선생님 앞에 끌고 와야 하는데?

그런데, 여기에서 핵심은... 나를 안 지 얼마 안 된 엄마에게 우리 집 경제적인 상황까지 이야기를 하다니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우리 집 되게 못 살던 때도 있긴 있었고, 그때 내 한숨과 근심이 아마도 sns에서 글을 읽는 이들에게 깊게 남았을 것이다. 새벽에 생과일 쥬스 알바도 하고, 녹즙 아줌마도 하고... 그래서 나는 약간 '가난의 아이콘' 같이 뇌리에 남았다. 돈도 없는데, 무슨 그 쌩돈 들여서 운동을 시키냐는 이야기였을 텐데... 맞다. 나는 거의 최근 2-3년은 과부 땡빚 내가면서 혜성이 운동을 시키긴 했다. 영리하게 장애인 바우쳐 가지고 내 돈 십 원도 안 들이고 운동시키는 엄마도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한 달에 적게는 70만 원, 많게는 120-130만 원까지 들였으니까. 내가 늘 문제 제기 하는 것이 있다. 어떤 활동이든 앞에 '장애인'자가 붙으면 시간당 5만 원부터 시작이다. 이렇게 좋은 장사가 없다!!!! 

여하튼, 다른 아이들의 앞길을 이렇게 '선배'라고 구체적으로 충고하고, '내가 그거 시키지 말라고 했는데'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장애아 분야' 밖에 없을 것이다. 쟁쟁한 비장애아들 엄마 커뮤니티에서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처음 이 엄마에게 직접 운동 왜 시키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 반감도 없었다. 그런데, 또 내 경제적인 문제까지 전하며 제삼자에게 전화 통화 가십으로 흘러가는 것이 조금 열받는다. 아마도 그 엄마한테도 아이 운동 시키지 말라고 전하면서 내 이야기도 함께 나왔겠지만 말이다. 
제일 짜증 나는 것이 '걱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응원'한다고 하면서 내가 거기에 대해서 별로 고마워하지 않으면 아주 난리다. 그냥 가만히 놔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나는 어떤 커뮤니티에도 열정적으로 낄 캐릭터도, 어디에 충성할 캐릭터도 아니니까. 

지금 혜성이는 비장애인 선수 팀에서 훈련한다. 비용이 3분의 1로 내려갔다. 이쪽 팀 코치님과 상의해서 앞으로 대회도 일반 대회, 장애인 대회 다 나갈 예정이다. 맨 처음 팀 소개받을 때 통화 다 끝내고 아차 싶어 전화를 한 번 더 했다. 

- 코치님, 우리 아이 장애인이에요. 

- 네, 알아요. 

한 번 더 확인하고 나서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정말 열심히 가르쳐주시고, 우리도 열심히 매일 운동하고 있다. 그래, 말이야 맞는 말, 우리 집 돈 많이 없는데, 비장애 선수팀 들어가니까 훨씬 싸고 좋다. 그리고, 정말 이 아이들 중에 끝까지 버티는 놈들이 자라서 올림픽 가는 거구나... 이걸 알겠다. 제일 큰 것은... 한국 수영. 진짜! 잘한다는 거다. 황선우, 김우민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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