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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29. 2024

돌고래 일기 - 전국 체전이 보름 앞!!

첫 수영 시합의 추억

다음 달 전국체전 대진표가 나왔다. 나는 분명히 자유형 100, 50, 접영 50 이렇게 신청한 줄 알았는데... 이번 대회도 또 신청 잘못했다. 자유형 100, 접영 50만 신청이 된 것. 지난 대회는 '동호인 부'와 '선수 부'로 나누어 신청을 받았는데, 내가 모르고 '선수 부'로 신청을 하는 바람에 다른 초등학교 친구들과 다른 날에 시합을 하게 됐다. 선수 부에는 자유형 50M 종목이 없어서 못 뛰었었다. 50M까지는 그래도 체력이 남아 있는 상태로 가는지라 이번 대회, 좋은 성적을 조금 기대할 수 있었는데 그걸 빼놓다니. 이 정신머리 하고는... 다음 시합 때는 기억하자 자유형 50, 기억하자 자유형 50, 또 기억하자 자유형 50미터! 
이 시합 신청할 때까지 한 번도 아이 데리고 수영 시합 나가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그전 운동하던 데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친 것도 아니어서 솔직히 초등학생 수영 종목 자체에 개념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수영 좋아했으면서, 그리고 지난 2월에 지유찬 선수 남자 자유형 50M 나가서 금메달 따는 것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으면서 정작 아들 자유형 50M를 챙기지 못하다니... ㅋㅋㅋ 

분명히 5, 6학년 형들이 엄청 잘할 텐데... 이번 대회는 그냥 마음 텅 비우고 재미나게 목포, 광양 가서 쉬다 온다는 생각으로 임해야겠다. 50M 경기가 빠진 바람에 화, 수, 목, 금 대회 중, 맨 첫날 화요일 10시 30분 첫 경기 마치고 (만약 예선 떨어지면) 오후부터 마지막 날 오전까지 휴식이닷~! ㅎㅎㅎ 그리고 이틀 건너 초등학교 S14(지적장애 코드) 접영이 맨 마지막 날 오후에 경기가 펼쳐진다. 아쉽지만, 다음 대회에서 또 실력 발휘하자 생각해 본다.  하루 이틀 수영하고 말 것도 아니고. (이렇게 초반 실망하고 들어가는 게 낫다. 또르르) 

오늘도 수영장에 갔다. 본격적으로 운동 시작한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혜성이도 학교 끝나면 당연히 수영장 갔다가 오는 것으로 안다. 장애인 전국 체전이 끝나면 바로 전국 체전이 시작하기 때문에 요즘 다른 친구들도 얼마나 열심히 운동하는지, 수영장에 뜨거운 열기가 얼마나 가득한 지 모른다. 코치님은 그 와중에 잊지 않고 혜성이 시합도 챙겨주신다. 만약 원하면 혜성이 데리고 시합도 함께 가서 웜업 시켜주고 하시겠다고 하는데, 당장 다음 주 다른 친구들도 체전 앞두고 준비하는데 그 멀리 전남 광양까지 왔다 갔다 하시는 것 미안해서 사양했다. 

아까 운동 끝나고 나가면서 자유형 50M 실수해서 신청 못했다고 말씀드리니 안타까워하신다. 그리고 100M는 아직 제대로 훈련한 기간이 짧아서 끝까지 전력으로 할 체력은 아니라고, 그건 당연한 일이란다. 그래도 접영은 조금 기대해도 될 것 같다며, 앞으로 기록 단축할 스타트 연습과 스프린트 훈련을 계속할 거라고 알려주시는데, 이리도 체계적으로 연습시켜 주시는 코치님 처음이라 감사할 뿐이다. 

아, 그래도 지난주 대회에서 실수로  '동호인 부' 아닌 '선수 부'로 신청을 했던 터라 소가 뒷걸음질 치면서 쥐 잡는다고, 남자 장애인 수영계의 세계적인 슈퍼스타, 장애인 수영계의 박태환이라고 일컫는 조원상, 이인국 선수를 만났다. 두 선수 모두 워낙 이쪽 수영계에서는 세계 기록 보유한 유명한 선수들이다. 특히 조원상 선수는 지금 삼십 대 노장(?) 선수인데, 내가 그 선수 팬이다. 아침 7시 수영장에 도착해서 웜업을 하는데, 조원상 선수가 도착했다. 으악! 조원상 선수하고 우리 혜성이하고 같은 풀에서 웜업을 하다니, 이런 영광이! 



이날 아이 아빠가 못 온 터라 생소한 탈의실, 샤워실에 아이 혼자 들어가서 잘하려나, 바구니는 잘 챙기려나 몹시 걱정이 되었다. 어찌 저찌 서울 연맹 팀 코치님 도움으로 탈의실까지는 들어갔고, 웜업 마치고 아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20분... 얘가 설렁설렁 샤워를 하는 아이라 20분이면 충분히 머리까지 다 말리고 나오는데 왜 안 나오지, 다른 남자 어른한테 부탁을 해야 하나 이러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맙소사! 정말 마법같이 탈의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조원상 선수가 나오는 것이다! 나는 보자마자 조그마한 소리로 '팬입니다..........'를 읊조리는데 갑자기 내게 묻는다. 
"이 안에 누구 있어요? 누구 찾고 계세요?"
나는 탈의실 안에 혜성을 찾아 달라고 했고, 한 5분 뒤 둘은 함께 나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사진 함께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너무나 흔쾌히 브이를 긋고 포즈를 취해준 조원상 선수! TV나 뉴스에서만 보던 선수를 실제로 만나고 같은 풀에서 수영을 하고 게다가 탈의실에서 우리 아들을 데리고 나와주다니 정말 나에게는 이런 축제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축제는 끝이 아니었다. 아이가 경기를 시작하기 전 대기하는데, 바로 앞 경기의 이인국 선수와 어머님을 만난 것이다. 서울 연맹 팀 코치님은 저기 이인국 선수가 있다며 "혜성아, 너 저 선수 되게 유명한 선수야. 세계에서 제일 수영 잘하는 선수인데 가서 인사할래?" 하더니 가서 인사를 시켜줬다. 열한 살 애가 뭘 알겠냐고, 엄마만 신났지. 

이인국 선수 어머니는 혜성이를 보더니 우리 인국이도 이만할 때부터 운동을 했었다면서 잘 키우라고 덕담을 남겨주셨다. 그리고 아들 데리고 시합 나가면서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는 것도 재미있다며... 사실 나도 우리 혜성이가 수영 진짜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지금 같으면 가보지도 못할 나라를 시합 때문에 데리고 갈 수 있었으면 해서다. 마음 한편에 솔직히 이런 앙큼한 욕심이 있었는데, 우리 이인국 선수 어머님은 다 이루셨네. 다 이루셨어. 

이 사진 안에 국대가 무려 두 명! ^^



혜성이 경기가 다 끝나고, 나는 또 탈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정한 축제의 폭죽은 이때 터진다. 혜성이 뒤, 뒤, 뒤에 경기를 마친 조원상 선수가 내게 오더니 정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물안경을 선물로 주고 간 것이다. 
"아이가 좋아할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마침 탈의실에서 나오는 혜성이 어깨를 툭툭 두들기면서 열심히 해, 혜성이! 라며 응원해 준다. 아아. 엄마의 축제는 이것으로 끝났다. 아이 시합, 실수해서 잘못 신청한 덕으로 이렇게 꿈같은 수영 스타들을 만나고, 물안경까지 선물 받았다. 이는 마치 축구 겨우 시작한 꼬마 아이가 손흥민 선수한테 경기 마치고 땀 묻은 티셔츠를 받는 것과 같은 급이란 말이다. 아이는 이날부터 물안경 딴 것 안 쓰고 꼭 조원상 선수에게 받은 물안경을 쓴다. 이것이 좋단다. 



인생은 결과를 알 수 없는 법. 어쩌면 다음 달 전국체전도 내 실수 하나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익살스러운 축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이리 길게 하고 있는 것이다. 첫날 예선 떨어지면 오후부터 목포 여수 다니면서 놀 수 있으니 좋고 말이다. (이런 스포츠맨 정신은 좀 나태한 걸까) 
 



ㅋㅋㅋ 돌고래 귀엽네. 


아, 혜성이의 첫 경기 동영상은 여기로! 

내가 실수로 잘못 신청해서 고등학교 형아 세 명이랑 뛴 경기다. 


https://youtu.be/yr6u7YhPhrk?si=mDKN97GLd0QkQ1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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