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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May 15. 2024

영화 <7등>?

돌고래 엄마의 시합 후 단상 비빔밥.

아들이 전국장애인학생체육대회 수영 종목에 출전 중이다. 아이는 어제 남자 초등학교  자유형 100m 경기에서 7등을 했다. 행운의 7. 그리고, 총 4일의 경기 일정 중 오늘, 내일은 시합이 없다. 그래서 그 틈을 타서 아이는 아빠한테 맡기고 지금 밀린 일을 하려고 나와서 앉아 있는데... 조금 전 남자 자유형 50m 예선 기록을 같이 운동하는 아이 엄마가 보내왔다. (참 고마운 일이 딸 시합 바로 앞두고 이렇게 다른 친구들 시합 기록 참고하라고 보내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고마워요!) 왜냐하면 내가 '실수로!' 남자 50m 경기 접수를 못한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아직 4학년인 혜성이가 100m는 아직 지구력이 딸리지만, 50m는 진짜 근사한데... 보내준 사진으로 예선 성적 보니 형아들 사이에서 3-4등도 노려볼 만했던 것 같아서 아깝고 속상한데, 속상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어제도 경기 동영상 보고 이태원 코치님 전화 주신 것도 고맙고,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여러모로 상황 박자들이 안 맞아서 (터치패드에서 발 미끄러진 것, 수영모자 소동, 숨 쉬기 박자 등등...) 조금 아쉬운 성적 낸 것도 자꾸 내 탓 같이 여겨져서 안 좋은 생각 떨치려고도 노력 중이다. 왜냐하면 내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준비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꼭 시험 볼 때면 만족스러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늘 하는 말이 이거였다. 남들보다 두 배는 열심히 해야 남들 만하게 했다, 이것. (입이 방정!) 운이 좀 안 따르는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매사 진짜 노력 많이 하면서 살았는데, 설마 이 팔자가 우리 아들한테도 간 건 아니겠지... 이 생각이 오늘자 '나쁜 생각'이다.


이렇게 글로 남기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꿈 얘기 글로 쓰면 그 어떤 로또도 다 안 맞고, 금돼지도 달아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 (여러분 많이 많이 읽어주셔야, 용이 여의주 물고 날아간 꿈도 효과 싹 없어집니다!)


일하기 전에 내일모레 접영 50m 경기 대진표 보면서 같이 뛰는 형아들 성적을 주욱 살펴봤다. 이번 대회는 혜성이가 거의 막내인 것 같다. 본선 올랐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막내였고. 4학년 꼬마가 본선 오른 것만으로도 그게 어디냐 싶다. 중고등학교 올라가면 발군의 실력 가진 친구 아니면 체격도, 실력도 고만고만해지는데, 초등은 1년 차가 크다. 마지 백일 아기랑 6개월 아기가 다르듯. 백일 아기는 만세! 하면 그 귀여운 주먹 손이 머리 위에 겨우 닿지만, 6개월 형아는 이제 대략 사람의 만세가 가능하다. (상상만 해도 귀여워!)

어제는 내가 혹시 영화 <4등>에 나오는 엄마처럼 구는 것은 아닌가 찬찬히 뒤돌아보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 운동 열심히 시키고 있는 것은 맞는데, 이것도 욕심인가 생각도 들고 말이다. 혜성이 수영에 몰빵 하다가 아이 인생 망치는 것은 아닌가 고민도 되고... 평소 '혜성이 운동 힘들어요.'라는 말도 오로지 내 기준으로, 음악이나 운동이나 일정 수준까지 오르려면 꾹 참고 부모가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에 무시해 버렸던 건 아닐까. 어제 코치님은 전화 통화 끝날 때 또 엄마 마음 설레는 말씀을 남겨주셨다.

"어머님, 혜성이요, 장애고 뭐고 떠나서요, 진짜 잘하는 애예요. 지금 운동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요. 조금 더 기다려보세요."

이 코치님께서 허튼 말씀하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다. 나 기분 좋으라고 해주신 말씀도 아니었다. 내가 아이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자식 믿고 기다리는 건 자신 있다.


기다리는 것 외에 아이 키우면서 닥치는 문제는 도저히 나는 정답을 구할 수가 없다. 논어 맹자를 읽어도 니체 소크라테스를 읽어도 그저 몸으로 겪어내며 지나갈 수밖에 없으니 이만한 다이내믹한 활동이 없다. 시간의 흐름을 직선으로 보는 진보적 시각과 계절, 하루, 일주일, 한 달의 순환으로 보는 시각으로 나눈다고 하면 육아는 젠장, 너무나 직선이다. 자식들 뭐 하나 순환하고, 똑같은 이들이 없으니. 늘 새롭고, 애 한 명 낳을 때마다 예전 육아 프로그램 따위는 완전 포맷되어 버리고, 생소하다. 요즘 틱이 심해진 아들을 보고, 이것도 나 때문인가, 시합이 부담스러웠던 건 아닐까 싶어서 괴로웠던 엄마는 그저 답도 없이 이 마음을 도로 덮고, 오늘 이 시간이 직선으로 유유히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것저것 심란한 마음이 뒤섞여 비빔밥을 넘어 개밥이 되고 있도다.



내가 늘 분심(?) 들 때마다 조각조각 들여다보는 영화 <4등>의 한 장면. 저 엄마 표정, ㅋㅋㅋㅋㅋ 수영장 가면 마않~~~~ 이 본다.  나도 어제 그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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