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섬 Sep 29. 2024

내가 왜 차박을 하느냐면

청옥산 육백마지기

차를 숙소 삼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여기저기 누비며 차에서 1박씩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나를 굉장히 부러워하던 분이 알려주셨다. 차박의 성지가 바로 평창 청옥산의 육백마지기란다.

워낙에 꼬리 텐트마저도 치지 않고 차 안에서만 지내는 단출한 스텔스 차박, 그리고 차라리 반달곰을 만나고 말지, 사람이 없는 노지 차박을 좋아하는 터라 '성지'나 사람들 많이 몰리는 유명 캠핑장 등은 일단 뒤로 젖혀두는 편이었다.

그러나,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어마어마한 사진들을 보고 아, 여기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특히 샤스타데이지 천국, 별들의 천국으로 유명한 곳이던데 일단 데이지 철은 지났고, 별이라도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육백마지기라는 이름이 궁금했다. 사실 옛날에는 논 스무 마지기만 있어도 동네에서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육백마지기도 그렇게 너른 땅이라는 뜻일까 짐작을 할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씨앗 육백말을 뿌릴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땅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축구장 6개를 합친 정도의 크기라고 하니 대략 사진을 보지 않아도 감을 잡으실 듯.


많은 차박러들이 주신 정보로는 청옥산 올라가기 전에는 변변한 가게나 편의점들이 없고, 일단 육백마지기에 오르게 되면 취사가 절대 금지되므로 꼭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넉넉히 준비하여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지역이 강원도 지역이니만큼 근처에 송어회가 유명하다고도 하고, 닭도리탕을 미리 맞춰서 포장해서 올라가도 별미라고 한다. 송어회가 아니라 광어 우럭회였으면 당장 그 집으로 쫓아갔을 터였고, 나 말고 한 사람이라도 더 있었다면, 안 그래도 매콤한 국물에 버무려진 닭고기 참 좋아해서, 주저 없이 포장했을 것이지만, 다음 기회에.

다만 나는 '마실 것'은 모자라면 미쳐 날뛰는 터라 음주 운전을 제외하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쓸 터이므로 (아니, 이미 산 중턱으로 거슬러 한 줄기 플래시에 의지하여 제 발로 내려갔다 올라온 것도 몇 차례) 넉넉하게 준비했다. 생수는 1.5리터로 두 통. 씻을 물, 마실 물 포함이다.


사전에 이 길이 아무리 차로 올라간다 할지라도 좁고, 구불구불하며, 매우 길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리고 가슴속 깊이 새겼다. 결코 무서워하지 말자고.

한 2년 전 내 생일날, '마고할미'가 쌓아 둔 공깃돌 다섯 개, '공개 바위'를 보러 간다고 지리산 자락을 차로 끊임없이 올라가다가 정작 보고 싶은 것은 보지도 못하고, 차까지 돌리지도 못한 채 기어를 R로 두고 느낌 상 그 수백리는 족히 되는 길을 백스텝 하여 내려오며 식겁한 적이 있어서 어두운 산길을 차로 올라가는 것은 그 여파로 아직도 두렵다. 게다가 이날은 날이 마침 흐렸다. 비도 내릴락 말락 하는 조금 궂은 날씨여서 더더욱 두근댔다. 그 마음을 안고 올라가는 길, 역시 중간에 단단한 길이지만 그래도 비포장 도로 영접하고서 또 한참을 올라갔다. 저 위에는 어떤 비경이 펼쳐져 있을까 기대도 한몫했다. 손목의 워치를 보니 심장 박동수가 80이 넘어간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절로 "와!" 탄성이 나오는 지점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람들이 왜 성지, 성지 그러는지 진정으로 알 것 같았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풍력기가 주욱 펼쳐져 있고, 최고의 장관이라고 하던 2번기 쪽은 역시나 막혀 있었다. 목요일 오후인데도 몇몇 차박러들이 올라와서 3번기 쪽, 주차장 쪽에 하룻밤의 살림을 꾸리고 있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곳 육백마지기는 텐트를 치거나 취사를 할 수 없는 곳이다. 그저 테이블과 의자 정도만 깔고 하늘을 지붕 삼아 식사를 하고 휴식을 즐겨야 한다.


쏟아지는 별빛이 어마어마한 장관이라고 하는데, 날씨를 보아하니 영 갤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이번 차박은 지는 해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얼른 바닥을 평탄화시키고, 테이블을 깔고, 파워뱅크를 켜서 노트북과 연결시키고, 나의 간이 화장실을 만드는 등 하룻밤 묵을 준비를 했다. 조금 전 해가 져서 이제는 조금씩 춥기 시작한다. 옷은 든든히 챙겨 왔다. 여름 내 잠자고 있던 침낭도 깨끗이 빨아왔고... 푹푹 찌는 긴 여름의 몽니가 다 물러간 터라 이제 벌레마저 별로 없어서 모기장을 치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장관을 보면서 술 한잔 고요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격스럽다. 남은 여생을 시간이 날 때, 차 가지고 다니면서 이런 풍경 보면서 살고 싶다. 과한 말이 아니다. 이런 정도의 건강과 마음의 여유와 그리고 주변의 도움이 있다는 것만도 얼마나 행운인지! 대자연 앞에서는 그저 입이 다물어지고, 사뭇 착한 어린아이가 되어 그대로 시간이 멈추는 것 같다.  


이제 어둠이 내린다.

눈앞이 그저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정말 너무 아름답다. 아름답다...

이런 광경의 레스토랑이 또 어디 있을까.  정말 행복하다.

비록 비화식으로 끓인 라면에 하이볼 한 캔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그리고 보냉백에는 편의점 편육이 하나 대기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나는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 와 있는 것과 다름없다. 미슐랭 식당, 분명히 내 기억에 파인 다이닝 쓰리스타는 가본 적도 없겠지만 하나도 아쉽지 않다.

하늘과 가까운 이곳에서 대자연의 장관을 내려다보면서 술 한잔 하는 시간은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다하더라도 그 느낌을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이볼 캔을 따고 해가 저물어 잠들기까지의 그 몇 시간을 위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며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밤이면 더욱 커지는 바닷가의 잔잔한 파도소리와 계곡의 물소리, 사방천지 색색의 꽃으로 신기하게 흐드러진 봄밤, 차문을 열어보면 훅 끼쳐 들어오는 젖은 흙내음과 찬 공기...

인생 최고의 보약이다.





차박의 현실

그러나, 차박이 마냥 이렇게 신선놀음만은 아니라는 사실.

이면의 현실을 몇 가지 알려드리고자 한다. 물론 개인차는 나는 것도 고려해 주시길 바란다.




지금 내 방. 아늑하다.

왼쪽 옆으로 모든 수납 박스와 짐을 정렬해 놓고, 트렁크 창 앞에는 다이소에서 5,000원 주고 산 테이블을 세팅했다. 사실 차박하시는 분들 많고, 그분들이 유튜브 방송하는 것을 보면 보기만 해도 가지고 싶은 심플하고 세상 힙한 간지템들이 있으나 나는 조금 더 실속파로 노선을 결정했다.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은 바닥 평탄화였다. 그리고 그다음이 파워뱅크. 매일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일을 하고, 겨울에는 전기요를 깔 예정이어서 혼자 다녔을 때 적어도 2박 3일은 써도 충분할 정도의 용량을 준비했다. 봄과 가을까지는 이렇게 별 온열기구 없이 차박을 하고는 있지만, 이제 늦가을에 접어들면서는 슬슬 월동기구를 알아보며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출판사 대표님께서 숯불로 고기구이를 할 수 있는 도구까지 마련을 해주셨는데, 취사가 자유로운 캠핑장으로 가서 한 번 거하게 고기파티, 불멍 파티를 해볼 생각에도 부풀어있다.  


혹시 차박 장비들이 궁금하시다면 맨 처음 차박을 준비할 무렵의 포스팅을 보며 참고하시기 바란다.

https://brunch.co.kr/@chocake0704/268


그다음 중요한 점이 나의 차박 스타일과 함께 화장실 보유(?) 여부다. 화장실까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진로를 정해야 한다. 몇 번을 강조했지만, 차에서 먹고 자고 하는 노지 스텔스 차박을 좋아하는 터라 나는 개인 화장실을 가지고 다닌다. 플라스틱 통에 비닐을 한 5겹 정도를 깔고, 디펜드(어르신용 기저귀)를 깐 후, 응고티슈를 또 한 장 깐다. 그리고, 분해제를 넣어둔다. 그리고 작고 키 큰 텐트를 설치해서 아예 화장실을 야외에 만들기도 하고(이때 폴대를 단단히 박아야 함. 바람이 불어 텐트가 날아가는 대참사 방지), 그냥 차 안에 두고 용변을 본 뒤 밖으로 내놓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서 결정하시면 된다.

옛날 80년대에는 집집마다 마루나 방에 요강이 있어서 추운 겨울밤이나 납량의 계절 여름밤, 각오를 단단히 하고 화장실을 가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었던 것을 기억해 보시길.

이 개인 화장실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무 데나(?) 풍경이 좋고, 차를 세울만한 공간이 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잘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고, 배변훈련(?)도 잘 된 편이다.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라 조금은 주저했지만, 차박을 할까 말까 결정을 미루시는 분들께 아주 유익한 조언이 될 것 같아서 조금 용기를 내보았다)


이와 동시에 또 결정을 하셔야 할 것이 불 시스템. 즉 음식을 어떻게 가열하여 먹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간단하게 집에서 쓰던 부루스타 가지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캠핑용 가스레인지(수백, 수천 가지 종류다!), 차박용 전기포트, 버너를 들고 다니는 등 불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분은 진짜 장작 때고 냄비 걸어서 요리하고, 식사가 끝난 후 남은 불로 불멍하시는 분들도 봤다. (진짜 야생 캠퍼!) 그러나 나는 간단명료하게 '비화식' 요리를 택했다.

비싼 가열기구 필요 없이 다이소에서 그릇 두 개 사서 해결했다. 보냉백까지 다 합쳐서 6천 원. 원래 비화식 용기도 한 25000원 선으로 판매를 하고 있지만, 나는 야매의 길을 선택. 발열팩을 담을 큰 그릇과 음식이 끓을 알루미늄의 작은 그릇을 고르고(신기하게 두 개가 네 각이 딱 맞는다!) 발열팩을 담은 그릇에 물을 붓는다. 그러면 금방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리고 열을 뺏기지 않기 위하여 보냉백에 쏙 집어넣고 15분 정도 가열하면 웬만한 요리는 팔팔 끓는다. 이번에 달걀을 세 개 깨어 넣은 황제라면도 대성공이었다. 밥도 지을 수 있겠고, 계란도 충분히 삶을 수 있을 것이다. 캠핑하는 사람들이 자주 먹는 오뎅탕도 1인분 정도는 보글보글 끓여 비교적 오래 뜨끈함을 간직하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은 내 허리도 소중하다는 것.

내 차는 카니발인지라 차고가 높은 편인데도 아무래도 구부리고 짐 챙기고 치우고 하는 것이 가끔 힘들 때가 있다. 게다가 내가 오종종하게 작은 사람도 아니고 껑충 큰 사람이라 더더욱.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리 허리 구부리면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짐 챙기는 것은 몸에 무리가 갈 테니 체력관리 근력운동 더욱 부지런히 해야 할 것 같다.

아, 물론, 앉아서 식사하고, 별 보고, 달 보고, 노트북 펴고 글 쓰는 것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별을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고맙게도 강원도의 별님들은 내게 얼굴을 내밀어주었다. 나는 정말 행운아다.

육백마지기 가는 길목에 성마령(星摩嶺)은 별 '성'에 문지를 '마'. 즉 고개가 높아 별을 만질 수 있을 정도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쪽 동네가 그만큼 별이 많다고 한다.

밤이 깊어 뒷트렁크 문을 닫고 있었는데, 창문을 가림막으로 가린 터라 밖의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별이 보이려나 하고 멀리 볼 때 쓰는 안경을 단단히 쓰고 차문을 열었다!

와, 세상에! 세상에! 요즘 같이 입 꾹 다물고 일이나 하고, 뭐 하나 좋을 일 별로 없던 인생에 딴 것도 아니고 별이 나를 기쁘게 한다. 가까이에는 차 한 대도 없고(평일 차박의 선물이다) 사람도 한 명도 얼씬하지 않으니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두 팔을 벌리고 홀로 빙글빙글 돌며 강강술래를 했다.

내 두 눈에 쏟아지는 별들을 이렇게 비루하게 사진으로 남겨 놓았다. 역시 삼각대가 있었어야 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의 운무.

이번 차박도 만족스러웠다.

그나저나 기억한다, 기억한다 해놓고 커피를 안 가져왔다. 아침 커피 끓여마실 물을 만들려고 발열팩을 세 개나 챙겨 왔는데… 얼른 내려가서 커피 한잔 사서 가야겠다.



Epilogue.


어쩐지 뭔가 순순히 다 잘 풀리더라…

돌아오는 길 대참사.

어제, 오늘 나를 잘 지켜주었던 간이 화장실이 비포장 도로길 코너링하다가 그만…

내가 너무 오랜만에 차박을 나가서 그런지 비닐을 꼼꼼히 묶었어야 하는데 까먹은 것이다.

그나마 그 안에 응고제도 있고, 디펜스도 깔았다지만 차 안은 온통 파란 응고제 색깔로 물 들고…

할 수 없다. 다음엔 더 뭐라도 하나 더 야무지게 차박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 차박 때마다 느끼는 건 뭔가가 늘 한두 개가 모자라고,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진다는 것. 예외 없다. 그리고 나는 그걸 혼자 처리하고 나서, 당했던 어려움은 조금만 지나가면 다 까먹은 채 다음 차박을 계획하고, 또 출동한다. 아마도 차박에서 느끼는 그 몇 시간의 즐거움이 짐을 챙기고, 풀고 또 다시 거두어들이는 귀찮음과 집 떠나 생기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압도하고도 남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목표지는 동해다. 바닷가에 자리 잡아 보겠다.



산 내려오자마자 cu에서 990원짜리 커피. 흡족.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