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계꽃 Nov 02. 2020

가볍고도 무거운 ‘혼자’의 무게

혼자력 만렙이면 프리랜서로 성공할까?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라는 책이 있다. 문보영 시인이 근래 펴낸 산문집 제목이다. 그녀의 또 다른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신간 소식을 듣고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얼른 담아두었다. 장바구니에서 ‘주문·결제’로 가기까지 한참 걸리므로 아직 읽어보진 못했으나 제목만 봐도 마음이 쓰이는 건 저술 노동자로서 느끼는 동지애 때문일까?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렇다고 교우관계가 나쁜 건 아니었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분명 즐거웠지만, 인간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다.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만큼 혼자 충전하는 시간도 가져야 했다. 좀 더 자율성이 주어지는 대학에서 나의 혼자력은 극에 달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신입생 시절보다 각자 뿔뿔이 흩어져 수업 듣고 과제하는 3, 4학년 생활이 더 편했다. 학교 식당에서의 혼밥이 익숙해지자 학교 밖 공간에서도 가능해졌고, 혼영은 뭐 거뜬했다.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혼자 홍콩을 다녀오기도 했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편의점에서 바이젠 캔맥주와 떡볶이 과자를 사 들고 와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며 혼술을 즐겼다. (아직 밖에서 혼술은 해보진 않았다. 술값이 커피값보다 아깝다고 여기는 사람이기에.) 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를 때는 회사 근처 코인 노래방에 가서 혼코노를 했다. 2NE1의 <Go Away>를 부르면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 없었다. 이별 후 혼자 부산으로 떠난 적도 있다. 국밥집에서 혼자 음식을 시키는 자신을 보며 뿌듯하기까지 했다. 태생적으로 사회에 거리를 둬왔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뉴 노멀도 전혀 ‘뉴new’하지 않았다. (드디어 내향인의 시대가 온 것인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웬만한 활동은 다 해봤지만, 그중 끝판왕은 ‘혼자 일하기’다. 퇴사 붐이 일고 프리랜서에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 하는 (팔자 좋은) 사람’이라는 환상이 덧대지면서 혼자 일하는 고충을 털어놓는 게 한층 조심스럽다. 물론 이 말이 어느 정도 맞긴 하다. 하지만 더 정확히 정의하면 이렇다. 프리랜서는 (경제적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매일 내 안의 불안과 싸우는 사람이다.


작년에 약 5년간의 짧고도 긴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번역가 데뷔를 위해 아카데미에 다녔다.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전 직장 상사의 부름으로 잠깐 계약직으로 근무하기도 했고, 학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즈음부터 명상과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서른둘, 결코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안은 시도 때도 없이 피어올랐다. 번역은 정신노동이라 마음이 불안하면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 불안을 다스리는 게 커리어의 승패를 가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데뷔만 하면 이 불안도 사라질 거야.’라고 생각했다. 안일했다. 첫 일감을 따낸 후 불안의 크기는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주일은 세상이 내 것 같았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말이 딱 맞았다. 악몽은 그다음부터 시작됐다. 출판사에서 클레임이 걸려오는 꿈, 납기일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꿈, 도중에 사고가 생겨 마감 펑크를 내는 꿈, 인터넷 서점 댓글에 악플이 달리는 꿈 등 별의별 꿈을 다 꿨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머리가 항상 무거웠고, 자연히 집중력이 떨어졌다. 얼굴은 염증성 여드름이 울긋불긋 열꽃처럼 피어올라 티끌 같은 번역료를 피부과에 다 쏟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남편과의 관계도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암세포처럼 내 몸을 덮치는 불안이 옆 사람까지 힘들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바랐던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왜 삶이 자꾸 불행으로 기우는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불안이 불안을 키우는 악순환 속에서 어떻게든 키보드를 두드려 두 권의 책 번역을 마쳤다. 그리고 책상에서 일어나니 내 삶은 엉망이 돼 있었다.     


첫 책 마감 후 책상.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마음은 순식간에 이 책상처럼 된다.


문보영 시인은 ‘버리기’를 통해 불안을 흘려보냈다. 나는 반대로 그동안 팽개쳤던 삶의 조각을 하나하나 줍기로 했다. 모니터에만 박혔던 시야를 넓히니 불안이 차츰 가라앉았다. 그제야 내 사람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이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혼자력이 높다고 해서 프리랜서로서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무게에 내 삶이 짓눌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세 번째 책을 번역 중인 지금도 여전히 불안과 실랑이를 벌인다. 아마 평생 이 감정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겠지.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건 혼자 일하는 외로움보다 자꾸 선을 넘는 조직 생활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작은 방에서 이 지난한 감정싸움을 이어나가는 내게 지치지 말자고 말한다. 그리고 불안에게도 손을 내민다. 평생 볼 사인데 우리 잘 지내보자고.



* 이 글은 2W매거진 5호 <혼자를 키우는 힘>에 기고한 에세이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치질이라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