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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계꽃 Sep 24. 2020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이날만을 기다렸어!

14년 전 도쿄를 추억하며

“왜 일본어를 배우고 싶으세요?”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보고 싶어서요.”     


드디어 제대로 일본어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개선장군 마인드로 어학원에 들어섰다. 그러나  원어민 선생님과 레벨 테스트라는 장애물에 맞닥뜨리곤 금방 기세가 꺾였다. 대략 일본어를 배운 기간, 히라가나 혹은 가타카나 습득 여부 등을 물었던 것 같은데 일본어를 왜 배우고 싶으냐는 질문과 그때 했던 대답은 아직도 선명하다. 야매로(?) 일본어를 배워온 탓에 ‘자막 없이’를 ‘지마쿠 나이데(字幕ないで)’로 말해 ‘지마쿠 나시데(字幕なしで)’로 교정받은 것까지 생생하다. 가타카나는커녕 히라가나도 가물가물한 상태였고, 듣기와 말하기는 잘하지만 기초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문자부터 배우는 생기초반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대략 6개월 정도 학원에 다녔다. 시험이나 성적 등 뭔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언어 그 자체’가 좋아서 배운 적은 이때가 유일하다. 일본어 공부로 입시 스트레스를 풀겠다,라고 대충 둘러댄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인수 분해, 근의 공식, 삼각 함수 쓰리콤보에 소금물의 농도, 속도 계산, 달력 계산, 확률 계산 등 도대체 이따위 계산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문제로 스트레스 임계치가 다다를 때마다 나는 일본어를 끄적였다. 하루는 반에서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아이가 “너는 유학 갈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냐”고 물어오기도 했다(아니 좋아서 공부하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으면 좋다고 밖에 대답을...). 늦은 밤 독서실에서 집에 오면 꼭 드라마 혹은 버라이어티 방송 한 편은 보고 잤다. 등굣길에도 하굣길에도, 자습할 때도 잠들기 직전에도 J-pop을 들었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는 당연히 일본어를 선택했고, 일본어는 전과목 평균 점수를 높여주는 효자 과목이었으며 내친김에 수능 일본어 시험까지 쳤다. 외국어영역과 더불어 수능 일본어 덕분에 나는 무사히 대학의 문턱에 들어섰다.


지난날 열심히 공부하던 흔적들. <민나노 니홍고>는 지금도 유명한 일본어 학습 교재다.

     



드라마에 빠져들다 보니 언어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언어를 배우다 보니 이제는 그 나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본 땅을 밟고 싶다는 나의 욕망에 불을 지핀 건 당시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여고생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였다.  


일본판 <꽃보다 남자> 드라마.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내가 이 유치한 드라마에 미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모두가 그렇게 꽃남에 빠진다고 들었다). 일본은 드라마가 주 1회 방송되는데, 해당 주에 올라온 드라마를 다음 주에 업데이트가 될 때까지 보고 또 봤다. 하도 반복해서 보다 보니 대사를 혼자 중얼중얼 따라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짐했다. 수능이 끝나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처음 데이트한 장소, 도쿄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 무조건 가겠다고. 나의 열정에 하늘이 감동한 건지 마침 엔저 현상으로 당시 환율은 600원~700원을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모든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2006년 12월, 우리 가족은 일본병에 걸린 나를 위해 첫 해외여행으로 도쿄를 가게 되었다.




10년도 더 된 그때의 도쿄는 내게 별천지였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의 벅차오름이란.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까울 뿐이었다.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아기처럼 스치는 풍경 하나하나를 눈 속에 담고 머리에 새기느라 그 누구보다 바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순간은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도, 화려한 비너스 포트 쇼핑센터도, 시부야, 하라주쿠도 아니었다. 도쿄 외곽 비즈니스호텔 근처 이자카야에서 맛본 삿포로 생맥주였다. 패키지여행이라 허락된 자유 시간은 모든 일정이 끝난 밤이나 일정이 시작하기 전 아침뿐이었다.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아쉬움을 달래러 무작정 선술집을 찾아 배회했다. 다행히 근처에 문을 연 곳이 있었고 손님도 많지 않았다.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본 다음 가족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꿀꺽). 마침 아주머니께서 다가왔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겨우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おすすめはなんですか?
(추천 메뉴는 무엇인가요?)


상대방의 대답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윽고 우리 테이블에는 꼬치구이 세트와 삿포로 생맥주 두 잔이 놓였다. 그리고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일본어는 어떻게 배웠는지 짧은 대화가 오갔다. 선생님이 아닌 현지 사람과 처음으로 튼 말문에 아드레날린 수치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때 마시던 삿포로 생맥주는 아마 다시 맛보지 못할 것이다. 일본에 가서도, 한국 이자카야에서도 몇 번 시도해봤으나 그 맛이 나질 않았다. 그날의 분위기, 상황 그리고 나의 호르몬 수치를 그대로 재현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네다 공항에서 김포 공항으로 돌아가는 날, 출국 수속을 마치고 대기하던 중 꼬깃꼬깃한 종이와 남은 엔화 동전 몇 개를 챙겨 공중전화 부스로 갔다. 수화기를 들고 '심장아 나대지 마'를 외치며 꾹꾹 숫자를 눌렀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통화연결음이 갑자기 끊기는 순간, 조심스럽게 단어들을 내뱉었다.


もしもし? 峰子先生?
(여보세요? 미네코 선생님?)     


일본어 학원 선생님이었던 미네코상은 오키나와 출신으로 내가 학원을 그만두는 시점과 맞물려 한국 교포 영어 선생님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한국을 떠나 오키나와에서 살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의 이메일 주소를 알고 있었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쿄로 떠나기 전 메일을 보냈고, 다행히 답장을 받았다. 타국에서 잠시 스친 인연을 기억하고 있다니! 수화기 너머 상대는 바로 나를 알아봤다. 나 역시 2년 만에 듣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타워레코드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CD를 산 이야기, 이치란 라멘을 먹은 이야기, 시부야에서 길 잃은 이야기, 하라주쿠에서 크레페 먹은 이야기 등 3박 4일간 일어난 일을 미네코상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그녀는 일본인 특유의 과장된 리액션과 함께 연신 "스바라시이(대단하다)!"를 외쳤다. 통화를 마무리하기 전 감사하다고, 선생님 덕분에 일본어를 제대로 잘 배워서 여행 내내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고 진심을 담아 전했다. 헤어지는 연인 마냥 아쉬움이 뚝뚝 묻어 나오는 통화를 마치고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때 직감했다. 나의 일본병은 앞으로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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