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by 주원

월요일 아침, 아이들 등교시키고 집 단장을 하고 있었다. 주말 내내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먼지를 털었다. 온 집안에 문을 열어젖히고 이불도 팡팡 터느라 어찌나 요란을 떨었던지 전화가 온 줄도 몰랐다. 한참만에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보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있었다. 그리고 메시지도.


'00이 어머니. 담임교사입니다. 문자 확인하시면 전화 부탁드립니다.'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하셨지?' 이 시간에 학교에서 오는 전화는 좋은 소식일리 없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아. 어머니 다름이 아니라 00 이가 독감인가요? 아침에 몸이 안 좋다고 해서 보건실에 보냈는데 보건 선생님께서 00이 독감이라는데 왜 등교했는지 물으셨어요. 어찌 된 상황인지 알려주시겠어요?"


'아이고 막내야.'


"아... 선생님 00 이가 지난주 독감이었어요. 페라미플루 수액을 맞았고 열이 내린 지 24시간이 지나 등교 가능하다는 소견서를 받았습니다. 지난밤부터 아침까지 아이 상태 확인하고 등교시켰는데 혹시 아이가 아프다고 하나요? 만약 그런 거라면 바로 집에 보내주셔도 됩니다."

"아니요. 아이 상태는 좋아 보이는데 독감이라고 해서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등교 가능 소견서가 있으시다니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상황을 요약해 보자면, 하필 주말에 아픈 바람에 월요일에 꼼짝없이 등교하게 된 막내는 억울했던 거다. 거기다 월요일은 수학학원도 가는 날이렷다! 아이는 최대한 기운 없는 척 담임 선생님께 몸이 안 좋다고 말해 보건실에 갔다. 역시나 창백한 얼굴로 보건선생님께 자신이 독감임을 알렸다. (수액을 맞고 열이 내린 지 한참 지났다는 얘기는 쏙 빼고.) 가뜩이나 독감 비상인데 독감인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는데 놀란 보건선생님은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하셨고 담임 선생님은 내게 확인 전화를 하신 거였다.


'이 녀석 멀쩡한 엄마를 이상한 사람 만들어?'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작은 머리를 굴리고 굴려 꺼낸 방법이 꽤나 그럴듯해 실소가 나왔다. 아픈 얼굴로 보건실에 가서 독감임을 (이었음을) 알리면 잘하면 조퇴가능이며 최소한 오후 수학학원은 빠질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선 것이었으리라.


막내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내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았고 납득이 안되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몇 시간씩 울고 불고 떼쓰기도 다반사였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가만히 기다리기보다는 싸우거나 혼나더라도 방법을 찾아내는 편이었다.


수학학원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1학년때 무슨 영문인지 잘 다니던 연산학원을 그만두겠다 했다. 아이의 고집을 알기에 그럼 1년 후에 다시 가기로 하고 그만두었다. 제가 한 약속은 잘 지키는 편이라 2학년이 되자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숙제를 안 하는 거다. 언니들도 다녔던 학원이라 숙제가 분명 있을 텐데 털레털레 등하원만 하는 게 이상하다 싶어 학원에 전화를 했다. 원장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어머니. 00 이가 죽어도 숙제는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한 약속이니까 학원은 다니되 숙제까지는 용납할 수 없었던 거다. 억지로 숙제를 받고 그 숙제 때문에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본인은 숙제를 안 받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어린애가 왜 이렇게 비장한 지!) 다행히 지금은 숙제도 잘하고 학원 다니는 게 재미있다고도 하지만 기왕이면 안 가는 것이 더 좋겠지.


하교시간에 수학학원 가방을 챙겨 학교 주차장에서 만났다.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씨익 웃었다. 제 잘못을 알고 있는 것이렸다. 엄마한테 할 말 없냐 물었더니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말 안 해도 제가 다 털어놓으려고 했어요."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자마자 아이 입이 열렸다. 재잘재잘 말소리가 노랫소리 같았다.


소심하고 순종적이며 고지식한 나로서는 막내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학원에 빠지고 싶어 아픈 척하고 보건실에 간 것도 무슨 수작질인가 싶고 20년 경력의 베테랑 선생님과 독대해 숙제를 면한 패기도 대단하다 싶다. 눈 똑바로 뜨고 따질 때는 또 얼마나 서슬이 퍼런지.


화내고 혼낼 때도 많았는데 10년을 키워보니 장점이 많다. 도움을 받기보다는 주는 쪽이고 비겁하게 숨기보다 나서서 맞는 쪽이다. 괴롭힘 당하는 친구는 그냥 두고 보지 않을 만큼 정의롭다. 혼나더라도 솔직하게 말한다. 아이의 장점을 쓰다 보니 누구보다 용기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겠다. 아직 미숙하지만 분명 나보다 훌륭한 어른으로 자랄 거다.


어미가 자식을 품는다고 그 그릇이 자식보다 큰 것은 아니다. 다만 무결한 사랑만은 오늘도 넘치게 담아본다.


birds-7161315_1280.jpg 사진 출처: 픽사베이, 비장한 눈빛이 꼭 막내를 닮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바이러스와의 일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