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을 갔다가 저녁을 먹으러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하루 종일 걷고 구경하느라 다들 몸이 피로한 상태였다. 갑자기 흩날린 비도 몇 방울 맞았다. 바짝 따라붙은 겨울을 느끼다 들어온 터라 우리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안도감을 느꼈다. 따뜻하고 맛있는 것을 얼른 먹고 싶었다. 다행히 메뉴가 단출했다. 보통 맨 위부터 인기 혹은 베스트 메뉴 순으로 배치되어 있으니 차례로 담아보았다. 다섯 식구의 최대 장점은 요리를 최소 4개에서 6개까지 시킬 수 있다는 거다. 이 식당은 양이 적당해 보여 식구 수에 맞추어 다섯 개 요리를 시켰다.
낮동안 다닌 곳들 중에 어디가 좋았는지 이런저런 소감들을 나누는 동안 음식이 나왔다. 한창 먹성 좋은 아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포크를 집었다. 늘 그렇듯이 남편이 찬물을 끼얹었다.
"잠깐 기다려. 아빠가 배분해 줄게."
"아. 아빠. 오늘은 그냥 마음대로 먹으면 안 돼요?"
"응. 안돼."
안된다. 원래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우는 애 하나. 사춘기에 들어서자 갑자기 하루 종일 먹는 애 하나. 새모이만큼 먹는 애 하나. 그리고 식탐이 없어서 허기만 가시면 숟가락 내려놓고 애들한테 양보하는 엄마. 자기가 얼마큼 먹는지 모르는 아빠로 구성된 우리 집에서는 안될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심각한 쏠림 현상이다. 남편 말대로 배분하지 않으면 최소 두 명은 숟가락만 빤다. 음식이 부족하면 더 시켜주면 되는데 그 문제가 아니다. 최소 10년간 엄마아빠는 너를 굶긴 적이 없다. 부족하면 더 시켜준다. 아빠는 너 먹일 정도는 번다고 수도 없이 어필했지만 소용없었다. 빨리 먹는 애는 삼일 굶은 애처럼 먹는 일이 잦고 곧잘 체한다. 또 새모이만큼 먹는 애는 굶주린 하이에나들을 구경하다 컵에 포크를 담그고 논다.
남편과 내가 감독관들의 감시를 받으며 부지런히 음식을 덜었다. 양은 정확히 일치해야 하며 새우나 베이컨, 토마토 등의 재료가 골고루 나누어져야 한다. (브로콜리는 더 오면 안 된다.) 하나라도 흐트러짐이 있으면 바로 사이렌이 울린다. 먹을 것 가지고 이럴일이냐 싶지만 우리 집에서는 먹는 일이 거의 전부에 가깝다. 나는 기꺼이 사역한다.
매의 눈으로 접시 세 개와 아빠의 손을 보던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아빠. 제발 좀 하지 마요."
남편이 파스타 소스를 덜어주던 숟가락을 입에 넣어 빤 다음 그 숟가락을 아이에게 준 탓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은 늘 그랬고, 최근에 아이들은 질색팔색을 했다. 아빠 침이 닿는 게 너무 더럽다는 거였다. 아니 딱딱하고 질긴 것을 아빠에게 씹어달랄 때는 언제고 이제는 침이 닿았다고 저러나 싶어 웃겼다.
"아빠! 다른 사람 숟가락을 사용할 때는 이만 겨우 닿게 먹던가 자기 식기로 받는 게 예의 아니에요?"
물론 그렇지만 우리는 가족이고 그런 경계 없이 10년 넘게 살았는데? 그리고 나는 아직도 자주 아이들을 먹여주고 나눠 먹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내가 물었다.
"그런데 얘들아 엄마가 그렇게 먹여주는 건 괜찮아?"
"네. 엄마는 엄마잖아요. 사탕처럼 빨지 않으면 괜찮아요."
엄마라서 괜찮고 아빠는 안된다? 물어보니 아이들 셋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언젠가부터 제가 아주 친밀감을 느끼는 친구나 엄마 말고는 다른 사람과 식기를 공유하거나 입이 닿은 음식을 먹는 게 싫더라는 거다. 먹여주고 재워주던 할머니도 물론이고.
내가 놀란 점은 엄마 말고 식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친구라는 거였다. 피를 나눈 아빠나 할머니가 아니고?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오신다고 하면 친구와 약속도 잡지 않던 아이들이 변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만 되면 주말에 친구랑 약속 잡아도 되냐고 물었다. 이번 여행도 친구와 놀기로 한 약속에 못 가서 아쉬워하면서 따라온 여행이었다. 아마도 때가 오려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자라서 미처 깨닫지 못한 부모를 각성시킨다.
언제까지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아니었다. 아이들은 양손 자유롭게 자라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미련스럽게 뒤에서 '왜 벌써 놓으려고? 엄마가 네 손 잡을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분리된 엄연히 다른 인격체라는 사실. 네 기쁨과 슬픔을 모두 나눌 수 없다는 사실. 앞으로 내 품을 떠나 멀리 가야 한다는 사실. 아이들의 미숙한 태도나 어리광에만 시선을 두며 '때가 되면'이라는 조건을 달아 외면해 왔던 사실들을 가만히 살펴본다.
언제고 때가 되면 헤어질 결심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