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원 Dec 10. 2020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길 바라

영재교육이 뭐라고

 어떤 엄마든 자녀가 네 살 때까지는 모두 천재라고 생각한다던가. 백일도 안된 둘째를 바운서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며 나도 그랬다. 어쩜 책 한 권을 덮을 때까지 눈 한번 떼지 않는 거다. 오호라! 그때부터 나의 책 육아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울고 보채는 쌍둥이라 몸에서 내려놓은 적이 별로 없었지만 힘이 닿는 한 읽어주었다. 너무 보채고 운다 싶으면 그냥 내려놓고 울거나 말거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 노래를 들으며 책을 장난감 삼아 놀았다. 돌 즈음에는 책을 읽다 아는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와 관련된 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기쁨에 전율했다. 내 아이가 특별하다는 환상에 나는 흠뻑 젖었다. 


출처: 픽사베이


  내 아이가 특별하다는 환상이 깨진 것은 네 살 후반쯤이었다. 쌍둥이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가 수 개념이 빨리 잡혀 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무렵 자주 로그인했던 SNS에 지인의 자녀들 중 같은 나이 친구가 깜찍하게 숫자를 외는 영상 올린 것도 보았다. 나는 속으로 그 정도쯤이야 하며 코웃음을 쳤고 아이들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세는 법을 가르쳤다. 어라? 그런데 쌍둥이는 숫자를 못 세었다. 숫자 세는 법을 외우는 것과 하나 다음에 둘이고 하나에 하나를 더 해야 둘이 된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안다. 사실 수 세는 법을 외우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도, 수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이른 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아이가 영특하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 아이가 하나, 둘, 셋, 넷...... 열을 못 외운다는 사실은 꽤 충격이었다. 우리 아이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나는 한심한 초보 엄마였다. 물론 한참 지나고 나서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많이 웃었다.  


 쌍둥이는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었고, 나는 한심할지언정 열심히 책장을 채워주는 부지런한 엄마였다. 7세 때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한글을 떼고 읽기 독립도 이룬 아이들은 크고 작은 사건을 겪으며 잘 자랐다. 초등 입학을 앞둔 때는 나도 모르게 또다시 기대가 스멀스멀 밀려왔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한 쌍둥이는 초보 학부모를 당혹시킬 만큼 어리바리했다. 그중에 첫째는 더했다. 자기 물건을 챙기고 숙제를 알아서 척척 해내는 아이는 왜 꼭 남의 집 아이던가? 학기 초야 당연히 기대도 안 했고,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몇 번 못 간 터라 적응이 쉽지는 않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더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내복 바지를 벗고 팬티만 두 개 껴입고 간 적도 있고, 베개를 몰래 가방에 싸가려다 걸린 적도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실내화 가방에 실내화는 없고 쓰레기만 잔뜩 있어 실내화가 어디 있냐 했더니 모르겠단다. 알림장이 제대로 적혀있는 적이 없었다. 둘째도 비슷했지만 적어도 자신을 챙기긴 했다. 하지만 첫째는 늘 두리번거리고 산만하게 굴어서 건널목을 건널 때도 둘째가 건너고 건너지 말아야 할 순간을 상기시켜줘야 했고, 신발 하나 갈아신는데도 한참을 기다려줘야 했다고 했다. 걱정이 되어 학교에 마중을 가 멀찍이 지켜보았다. 가방을 메고 손에 학교에서 만든 예쁜 쓰레기들을 든 채로 신발을 신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신발을 들었다 물건을 쏟았다 신발을 내려놨다 다시 물건을 들었다 하며 한참 신발과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는데 멀리서 지켜보는 내 속에 천불이 일었다. 그 모습을 매일 지켜보는 둘째도 힘들겠다 싶어 하굣길에  둘째에게 말을 건넸다. 


"너도 00이 기다릴 때 답답하겠다."  느닷없이 둘째가 울음을 터트리더니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내가 00이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아? 매번 나 기다리게 하고 딴짓해!"


 땀이 삐질 났다. 혹시나 싶어 상담 때 첫째가 학교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없냐고 담임선생님께 여쭈었더니 문제없이 아주 잘 지낸다고 하셨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때쯤 지인이 동네에 심리 검사소가 새로 오픈했다며 오픈 특가로 기질검사와 지능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전에 쌍둥이 심리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어 검사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고 애들 기질이나 지능이 궁금하기도 해서 방문해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쌍둥이 둘이 상위 1프로 3프로의 지능을 가졌다고 했다. 입이 벌어졌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복잡스러운 감정이었다.


 우리 아이가 영재라고? 영재 발굴단에 나오는 상위 영점 몇 프로대 아이도 아니고 특출하게 잘하는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임상심리사 선생님은 우리 아이 보고 영재라고 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높은 지능을 가진 아이들보다 우리 아이들 정도의 지능을 가진 아이들이 학습에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능이 높아도 그냥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니 관심 영역 위주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고. 영재학급, 교육청 영재원, 대학 부설 영재원에 이르는 코스를 소개해주셨다. 


 하... 양말 제 짝도 못 찾아 신고 두 치수나 작은 동생 옷을 입고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영재교육이라니! 복잡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열심히 검색해보니 그런 것들이 영재들 특성이란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주변 상황을 살피지 못해 그런거라고. 실제로 과잉행동이나 산만행동을 보이는 아이들 중에 고지능아가 많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쌍둥이 둘 다 아기 때부터 유난스러운 데가 있었다.  둘 다 먹을 것이든 장난감이든 뭐 하나에 꽂히면 지나치게 집착했다. 둘 째는 백일 무렵 시작된 뒤집기 과몰입으로 3주간 하루 종일 뒤집고 싶다고 악쓰며 울었다. 첫 째는 과자를 베어 물면 그 부분이 사라진다는 것을 견디지 못해 토할 때까지 먹고 울고 먹고 울고 했다. 책 읽기에 집착해 약속시간에 늦은 적도 많고 친구들을 만나도 책만 읽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타협이 불가능했던 것들, 모든 감각이 예민하고 잠투정이 몹시 심해 외출을 하지 못했던 것들, 말도 안 되게 고집이 세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쩌지?

영재교육을 시켜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조금 알아보니 우리나라 영재교육은 입시를 위한 심화교육 느낌이 강했다. 영재원에서 만나 같이 특목중 특목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대개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영재교육은 명문대로 가는 기차표 같았다. 


 '자, 네 아이들 몫의 기차표가 있는데 줄까?' 살 수만 있다면 두 배라도 열 배라도 치르고 사고 싶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들 기차든 비행기든 못 태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언어이해 지능이 높으니 국어랑 영어는 걱정이 없다 쳐도 상대적으로 관심도 재능도 없어 보이는 수리영역은 어쩌지? 마음이 급해졌다. 수학교육 관련 영상들을 검색해서 보았다. (역시 나는 극성 엄마였던 모양이다) 마침 교육 불모지라 불릴만했던 이 곳에도 대치동에서 유명했던 수학학원이 문을 연다는 소식이 들렸다.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라 선배 엄마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니 그 학원을 보내려면 미리 다른 학원을 보내 선행을 해야 하고 추가로 문제집 한 두 권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선행?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도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고 방문 학습지도 하느라 놀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인데, 아무리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쌍둥이라도  안될 말이었다. 미세먼지에 코로나에 비라도 내리는 날은 어떻던가. 마음껏 뛰놀 권리를 박탈당한 아이들의 한숨이 느껴지는 듯했다. 


출처: 픽사베이


 붕 떴던 마음을 가라앉히니 생각이 정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입시위주의 교육을 외면할 수 있는 엄마가 몇이나 될까? 나 또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 국영수사과를 골고루 잘했으면 좋겠고 여력이 되면 경시대회 입상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바람이고 적어도 내가 책 육아를 시작했던 목적이 입시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느끼는 즐거움과 깨달음의 기쁨을 아이도 알게 되길 바랐다. 영어 교육만은 일찍 자원을 투자했는데,  언어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이고 수단이라는데 남편과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큰 세상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고 꿈을 이루기 위한 무기를 갖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수학은? 방문학습지 선생님에 따르면, 이제 겨우 더하기 5까지를 자신 있게 한다는 아이에게 선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선행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물론 몇 년 후에 나는 나의 이런 선택을 후회할지도 몰랐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견디고 잘 따라와 줄 아이라는 판단이 서면 더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놀 권리를 보장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늘, 친구 때문에 마음이 아픈 첫째를 위로해주고 싶어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잔뜩 빌려왔다. 만화책 사이에 엄마의 사심이 담긴 책들을 끼워 넣고 싶었지만 이번 달까지는 참기로 했다. 책을 풀어놓자마자 신나서 달려드는 아이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얘들아!

세 살 때처럼 쭉 살아주는 것도 엄마는 괜찮아.

작가의 이전글 아가, 어디까지 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