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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lish man in New york Feb 25. 2021

서평: 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당신만의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책

 우리 인생을 두 시기로 구분해야한다면 그 가운데에는 청춘이 있지 않을까? 청춘, 밑바닥이 들어나지 않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탐구한다. 만지고 호흡하고 맛보고 쉽게 놀라워하고 쉽게 감동할 줄도 안다. 세상이라는 때가 타기 전 우리는 누구나 그러했다.

 지상의 양식은 앙드레 지드가 28세에 처음 출간되었다. 지상의 양식 문장 하나하나에는 그의 청춘이 묻어나있다. 그의 청춘에 둘러싸여 글을 읽다보면 마음 한켠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유년시절의 한 조각,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 학창시절 시간을 보내던 교정,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 다짐들, 깨달음, 배움의 즐거움. 누군가는 이 글에서 지나보낸 청춘을 회상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다가올 청춘을 그려볼 수 있을것이다.

 지상의 양식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줄글을 읽듯이 쉽게 쉽게 읽히지 않는다. 작가가 본 것, 작가가 들은 것, 작가가 읽은 것을 독자도 동일하게 경험했다면 아마도 그의 표현 하나하나에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책이 쓰여진 때와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글의 부분 부분에서 지드가 전하고 싶은그 청춘의 메세지를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느낄수 있는데, 아마도 청춘에 대한 이야기에는 시대를 뛰어넘는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최소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했고 이는 다른 독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거라 믿는다. 다만아쉬운 점은 조금 낯선 형태의 글이기 때문에 쉽게쉽게 읽히지 않는 다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 간단한 해설의 도움을 받는다면 아마도 훨씬 수월하게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의 양식의 화자는 과거에 메날크라는 스승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배우고 경험하였다. 그리하여 지금 가상의 독자인 나타나엘(책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자신이 깨우친 바를 전하고자 한다. 이를 전하기 위해서 때로는 직접적인 명령조의 어투로, 때로는 노래구로, 때로는 단상의 형태를 택하고 있다. 여러가지 형태의 메시지가 공존하기 때문에 산만한 듯한 느낌도 있다. 다만, 개인의 감상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굳이 구절 하나하나에 의미를 찾거나사색해 가며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메시지의 형태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의미를 몇번 곱씹으며 한 줄 한 줄넘어가기 보다는 물 흐르듯 읽다가 당신의 마음이 반응하는 구절이 나타나면 그만인 것이다.

 이국적인 정취에 취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 책에 공감하기 더 쉬울 것이다. 낯선 공간에 ‘나’는 우리 일상속의 ‘나’와 분명동일인 이지만, 이 공간에서는 ‘나’를 ‘나’라고 만드는 많은 속박들이 상실된다. 그러한 낯설음에 힘입어 잠시 멈춰서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작가가 나타나엘에게 북아프리카와 이태리 북부 등 여러 소도시들을 묘사할때 그 속에 느껴지는 계속되는 놀라움, 궁금증, 찬미 등은 아마도 그러한 낯설음에서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흥미있는 사실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많은 낯설음을 느끼는 시기가 청춘이라는 점이다. 청춘을 보내는 우리는 세상을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충만하지만, 능숙하지 못하고 어리숙하다. 모든 것이 처음에는 낯선법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순수한 청춘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늙어 간다. 사회 제도는 위와 같은 흐름에 맞추어져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치 유전적으로 그렇게 설계된 것 처럼 짧은 청춘을 지나 장년층, 노년층이 되어간다. 앙드레 지드 역시 지상의 양식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청년이었으나 시간이 지나 장년, 노년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앙드레 지드는 그 사실에 대해서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지상의 양식 서문의 “이 책을 읽고나를 잊어버려라”고 하는 스스로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했기 때문이다.

 20대의 나는 이 책을 처음으로 읽으면서 강한 충격을 받았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어나가 지상의 무한한 열매를 맛보고싶었다.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마음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한 사람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부모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 이 책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그 때에 비하면 나는 지나치게 많은것을 소유하고 있고 부족이라는 단어를 종종 잊어버리고 산다. 슬프게도 또는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 새로운 것에 대한 굶주림, 호기심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나는 지상의 양식을 읽으며 그 때 나의 모습, 익숙한 것을 끊임없이 버리며 지상의 모든 열매를 맛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탔던, 지난 청춘을 생각하는 것 같다.

 정답은 잘 모르겠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다가도, 아주 가끔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이국적인 낯선 도시를 걷고 있는 나를 생각한다. 나의 청춘은 이미 완전히 지나가 버린 것일까? 무궁무진한 지상의 양식은 더이상 나의 것이 될 수없는 걸까?

 지상의 양식은 백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로 당신만의 ‘청춘’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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