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것의 진짜 의미
양자역학은 과학자들조차도 이해하기 난해한 학문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을 했을까. 그만큼 양자역학은 평생을 물리학에 빠져 공부해온 물리학자 역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난해함으로 인해 이 양자역학이란 학문은 유독 엉뚱하게 해석이 되고 있다.
과학에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속도와 방향을 알면 미래의 위치를 알 수 있다는 뉴턴의 고전역학, 절대적인 줄 알았던 시간이 알고 보니 상대적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우주의 온도는 균일하게 맞춰지고 있으며 그 끝은 열적 죽음이다'라는 종말론적 표현을 담고 있는 열역학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열역학 또는 상대성이론 등을 예시로 들지 않고 유독 양자역학 이론만 가져와서 자기들 방식으로 해석을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바로 양자역학이 난해하기 때문이다. 고전역학은 앞과 뒤와 전과 후가 명확하다. 이론 상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깔끔함으로 인해 누군가 이런 고전역학 이론을 인용했다가 한치의 실수라도 한다면 그 오류가 명백히 드러나 버린다. 그 외 상대성이론 그리고 열역학은 아마 그 개념조차 이해하기 힘들어서 인용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뭔가 그럴싸하다. 다른 어려운 수학적 수식은 이해 못 하겠는데 듣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은 어렴풋이 알아들을 것 같다. 그건 바로 "무언가 두 가지 형태가 중첩되어 있다"라는 부분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부분으로 인해 유사과학을 넘어선 동양 신비주의적 발언 또는 사기꾼들이 넘쳐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엄연히 역학 이론이다. 역학은 힘과 힘으로부터 유발되는 물체의 운동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양자라는 말은 단일 개체가 아닌 복수의 개체가 띄엄띄엄 양자화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개체는 원자와 전자를 뜻한다. 다시 말해 양자역학은 거시 세계에서 확인할 수 없는 아주 작은 존재인 원자의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예시로 드는 그 중첩에 대해 알아보자.
양자역학적 관점에서의 중첩은 일단 형태의 중첩이다. 하지만 이 중첩에 대해 주의해야 할 것은 표현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현실 세계의 사물들이, 어떤 물질이 진짜 중첩된 형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원자 주변엔 전자가 운동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고양이처럼 호기심이 많고 그것에 대한 이치를 밝혀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학문이 '물리' 아니던가. 어쨌든 전자의 움직임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며 설명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고 전자의 움직임을 (정확히는 움직임의 패턴) 파악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이유는 전자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패턴을 파악하려면 뭐가 되었든 관측이 필요하다.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기계식 장비를 도입하여 본다 한들 어쨌든 보는 모든 행위는 관측이다. 예를 들어 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언가 있다고 치자. 이걸 내가 조금 더 상세히 보려고 얼굴을 더 들이대니 이것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놀라며 도망치는 것이다. 난 끝내 이것의 패턴을 파악하지 못한다. 이것이 관측함으로 전자의 패턴을 찾을 수 없는 이유이다. 분명 이 궤도에서 돌아야 할 전자가 어느 순간 저 궤도에서 나타났다 다시 이 궤도로 돌아온다. 너무나 불규칙한 이 패턴으로 인해 과학자들은 이렇게 결론 내리기로 한다.
"이것의 패턴은 우리가 알 수 없다. 눈으로 보기 전 까진 말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중첩에 대한 무궁무진한 오해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유튜브에 보면 이런 영상들이 종종 보인다. 양자역학으로 부를 얻는 방법. 영상이 말하고자 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으니 세상도 원자로 되어 있다. (이 부분은 정답이다.) 그러니 모든 세상은 중첩되어 있다. (?) 그러니 우리가 머릿속으로 특정 형태를 결정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역시 그렇게 바뀌어 있다. (??) 한 가지 알아야 할 건, 양자역학에서 관측이 주는 효과는 바로 파동함수의 붕괴이다. 파동 함수가 붕괴되는 이유는 측정의 방법이 입자에 영향을 미쳐 파동함수가 붕괴되는 아주 지극히 물리적인 과정이다. 이는 측정 도구가 입자와 상호작용하기 때문이지, 인간의 의식이나 철학적 개념이 입자에 영향을 절대 끼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분들이 실망하겠지만 거시 세계에선 중첩 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중첩은 원자 단위 같은 지극히 작은 세계에서 관측이 되기 전 일어나는 효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생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주장은 양자역학의 본질을 철저하게 오해한 것이며, 수학적 기반이나 물리적 실험 없이 그냥 단순히 개념을 왜곡하여 전달하는 발언일 뿐이다.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영상에서 항상 등장하는 실험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다. 쉽게 말을 해보자면 독극물 장치가 탑재된 실험 박스에 고양이가 한 마리 있고, 이 고양이는 내가 박스를 열기 전까지 살아 있을지 죽어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사고실험"이다. 즉 실제로 검증된 시험이 아니란 거다. 사고실험이란 어떤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을 토대로 가상의 실험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로 벽에다 전자를 쏘는 이중 슬릿 실험은 사고실험이 아닌 20세기 초 토머스 영이 실제 행한 실험이다. 이때 토머스 영은 빛을 이용해 실험을 했으며 이후 다양하게 변형된 실험들이 진행되었다. 이중 슬릿 실험을 벽을 향해 발사되는 입자를 관측하기 전. 후로 나뉘어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이다. 이로써 고전역학으론 설명될 수 없는 미시세계의 신비로운 현상을 증명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미시세계적 관점이다. 이런 이중성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거시 세계(현실 세계)에 나타나진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현실 세계의 물질들은 이미 형태가 결정되어 있다. 관측이라는 개념이 꼭 우리 두 눈으로 가까이 가서 보는 것만이 관측이 아니다. 태양빛의 수많은 빛 입자가 특정 물체에 닿으면 그 물체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은 이미 수없이 빛 입자를 때려 맞은 상황이다. 즉 중첩 형태는 진작 붕괴되어 이미 하나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양자역학의 중첩 개념을 자꾸 현실 세계에 가져와서 과대 해석을 하려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굉장히 미련한 행위이다.
물론, 동양 신비주의 사상에 빗대어 현실 세계를 해석하는 관점은 매우 흥미롭다. 생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말은 관념적 개념으로서 거기다 대고 과학적 증명을 하려는 시도 자체가 코미디 같긴 하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엄연히 과학 이론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절대 세상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기 위해 창조해낸 비유가 아니란 거다.
결론을 내리자면 양자역학을 동양 신비나 거시적 현실에 일반화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양자역학의 본질을 오해한 유사과학적 주장이다. 과학적 사고는 실험적 증거와 검증 가능한 이론에 기반을 두며, 철학적 해석이나 신비적 사고와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따라서, 양자역학을 동양 신비와 연결 짓는 주장에 대해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