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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바 Mar 06. 2019

시를 쓰는 과정

영화 <시>

시를 쓰는 과정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저는 영화 <시> 속 주인공인 미자에게 창작의 고통과 삶의 고통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영화 속 스토리는 미자가 시를 쓰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 <시> 속에서 시를 쓰는 과정을 미자의 뒤를 밟으며 정리해봤습니다. 

미자



과정 1 - 손자 (자신의 언어로 만들기)

미자에게는 손자가 있습니다. 말도 안 듣고 밥만 축내는 놈이지만 미자에게는 정말 중요한 손자입니다. 손자도 크게 속을 썩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반부 미자는 손자가 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자살한 여자아이를 친구 여러 명이 강간했다는 큰 죄를 들은 뒤 미자는 친구 부모들과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제일 첫 번째 문제 인식입니다. 무언가 창작을 한다는 것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의 언어로 만드는 과정이 시작입니다. 미자는 손자를 통해 문제를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노인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문제였고 미자는 이런 문제 인식을 시상으로 나타내려 노력합니다. 미자는 손자를 보며 두 가지 감정을 느낍니다. 동정과 분노. 동정 어린 마음으로 보다가도 분노로 바라봅니다. 창작이 이런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창조시켜서 동정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자신의 창작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내 분노로 변합니다. 영화 속 손자는 시를 바라보는 미자의 생각을 형상화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자신의 언어를 만든 미자가 시에 대해 생각하는 다음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과정 2 - 시 낭송회 (시에 대한 생각 정립)

 시 낭송회는 미자가 시상을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찾아간 2 번째 장소입니다. 정말 중요한 장소입니다. 시 낭송회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장소입니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신 머릿속 시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미자는 이 시 낭송회에서 시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시에 대한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듣습니다. 시 낭송회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는 " 시는 고고한 거잖아요."라고 의견을 피력하는 대사입니다. 경찰 서장이 시를 낭송하면서 계속 야한 이야기를 하자 미자는 다른 사람에게 나직하게 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누구도 미자에게 틀렸다. 맞다. 하지 못합니다. 미자가 시에 대해 피력한 순간 미자가 생각하는 시는 고고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라는 것이 무조건 고고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더러워야 하고 때론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도 간접적으로 전달해야 하죠.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건 ' 시는 고고하다.'라는 겁니다. 이렇게 미자는 시에 대한 생각을 정립합니다.


과정 3 - 피해자 (시의 주제)

미자는 시의 주제를 찾기 시작합니다. 가해자 부모들의 성화에 못 이겨 피해자 부모도 만나고 피해자를 추모하는 자리에도 나갑니다. 시의 주제를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 곳을 다녀야 하고 실사도 다녀야 합니다. 미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주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의 주제를 결정합니다. 피해자에 대해 쓰자고 이 과정은 미자에게 아주 힘든 과정이었고 가장 절망스러운 과정입니다. 주제를 정하지 못하는 창작물은 쓰이지도 못하고 글자 끄적임만 남은 채 버려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미자는 주제를 찾아냅니다.


과정 4 - 가해자의 부모들 (시의 방향성)

미자의 주제를 찾게 도와준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 부모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뻔뻔한 태도 그리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의 과정에서 미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역겨움을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바로 그 자리를 뜨고 신경을 꺼버립니다. 미자는 자리를 떠서 혼자 시상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가해자의 부모들은 미자에게 주제와 동시에 방향성이라는 중요한 숙제를 던져줍니다. 그들은 미자에게 500만 원이라는 돈을 요구함과 동시에 여자라는 이유로 피해자의 부모를 만나라고 하는 쓰레기 같은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런 과정에서 미자의 시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아닌 자신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미안함이라는 방향성으로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과정 5 - 강 노인 (단단하게 만들기)

이렇게 어렵게 주제까지 정한 미자에게 500만 원이 필요한 어려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미자는 돈을 구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노인에게 500은 큰돈입니다. 그리고 미자는 결심합니다. 병간호하는 할아버지를 이용하기로요. 몸이 불편한 강 노인은 미자에게 성적인 요구를 했었고 미자는 이런 요구에 강하게 반발합니다. 하지만 돈이 필요해지자 이를 이용해 가족들 앞에서 조용한 협박을 합니다. 조용한 협박은 목표 달성으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은 시를 쓰는 과정에서 마무리를 향해 달려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자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시를 바라보는 시각을 냉정하게 가지게 됩니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시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시를 봤을 때도 괜찮은지 아니면 고칠 부분이 있는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자는 스스로 냉철함을 가지기 힘든 사람입니다. 연약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강 노인이라는 캐릭터가 그 냉철함을 가지게 도와줍니다. 성욕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통해 미자가 자신의 시에 대해 원초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미자는 이 과정을 마치고 난 뒤 시를 마무리하는 과정에 들어갑니다. 시의 마무리는 슬프지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과정 6 - 화자의 암시 (시의 마무리)

김용탁 시인은 처음 수업 시간에 모두 시 한 편을 창작하라는 과제를 내줍니다. 수강생들은 어렵다고 하소연하면서도 막상 자신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잘 말합니다. 그리고 정작 시는 한 줄도 못 쓰고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미자만이 시를 완성해 꽃과 함께 교탁에 올려놓고 수업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화 속 장면은 김용탁 시인이 시를 읽으면 미자가 시상을 떠올렸던 장면을 오버랩해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아이가 자살한 다리와 여자아이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납니다. 시의 마지막 화자에 대한 암시입니다. 미자가 시에서 말하고 싶은 건 하나였습니다. 피해자와 자신의 동일화. 즉 피해자와 동일한 선상에서 지금 상황을 바라보며 미자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암시한 것입니다. 미자는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실이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그녀는 피해자와 동일성을 지니면서 시의 마지막을 가장 시답게 그리고 시의 화자처럼 마무리한 겁니다. 영화를 본 누구나 생각할 수 있죠. 그녀는 자살했다고...



마치며... 시는 음악이 필요 없는 영화


 시는 어렵습니다. 시 수업의 수강생들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잘 이야기하면서도 나오지 않는 것이 시입니다. 하지만 시를 시작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아름다운 순간이 아닙니다.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쓰고 고치고 몇 번의 생각을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영화 속 미자에게 아름다운 순간은 한순간도 없습니다. 절망과 아픔의 나날이었죠. 하지만 미자는 이 순간마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시로 승화시킵니다. 그리고 아픔의 과정을 거쳐 자신이 정립한 사상과 감정을 드러내는 완벽한 시를 완성시켰습니다. 시를 보다 보면 이러한 스토리를 모르고는 미자의 시를 이해하지도 심도 있게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시라는 특성상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주변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는 특징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 전체가 시를 쓰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영화에서 중요한 음악이 빠졌지만 인식하기 힘들었습니다. 시 자체가 음악이기 때문이죠. 시를 쓰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은 음악을 형상화한 영상을 보면서 음악이라는 중요한 영화적 요소를 잊게 됩니다. 음악이 없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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