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책방으로 살아간다는 것

나의 책방 이야기

by 오승현


디자이너가 만들어 준 나의 책방 로고






코로나 팬데믹 시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속에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내가 오래 품어온 하나의 꿈이 떠올랐습니다.


‘책방’


공간도 없고, 자본도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어떤 책방을 꿈꾸는지는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디자이너에게 책방 로고를 의뢰했습니다. 책방의 로고를 상상해 보며.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았습니다.




1. 책

책은 내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나를 붙잡아주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나를 넘어 더 깊은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문. 나는 책을 통해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그런 순간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2. 들꽃

들꽃은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입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존재. 돌이켜보면 나는 늘 그런 쪽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런 책방을 그렸습니다.




3. 갈대와 별

이 책방이 자연과 닮아 있기를 바랐습니다. 부드럽게 둘러진 선, 그 안에 놓인 작은 별 하나. 별은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하나의 이상이었습니다.


나는 이 책방을 통해 삶의 관계들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 나와 이웃의 관계, 나 와 나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자연과의 관계.


이 책방이 그러한 왜곡된 관계들을 다시 이어주는

작은 시작이었으면 했습니다.




4. Stories on the road

나는 늘 물리적 책방 주인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책방은 공간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돈이 없어 책방을 열지 못했던 긴 시간은, 오히려 본질을 향해 가게 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지금의 자리를 내려놓게 되더라도, 나는 어디에 있든 하나의 책방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지금부터 움직이는 책방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존재로 살아간다면,

누군가에게 책 한 권을 건넬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책방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책방을 이렇게 소개해 봅니다.


SLOWBOOKS: stories on the road




돌아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시간 속에서, 나의 책방 슬로북스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길 위에 작은 이야기들을 담아 이곳에 소소하게 적어보고자 합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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