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천재로 태어나다

언어와 인간의 밀접한 관계

by 구름잡이
신경언어학자 Patricia Kuhl 의 TED 강연 "The Linguistic Genius of Babies" (위) EBS 언어습득의 비밀 (아래)



* 아래 본문은 위의 두 개의 영상을 바탕으로 쓴 리뷰입니다.

출처

1. The Linguistic Genius of Babies - Patricia Kuhl (TED)

2. EBS 특별기획 <아기성장보고서> - 4부. 언어습득의 비밀





TED 강연 ‘The Linguistic Genius of Babies’ 의 발표자 Patricia Kuhl은 현대 과학의 발전으로 베일에 싸여있던 아이의 언어습득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며 서두를 연다. 어린아이의 뇌는 “천상의 개방성 celestial openness of the child’s mind”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할 만큼 유연하고 빠르게 정보흡수를 하는데, 언어습득론에서는 이것이 아이가 모국어를 배울 수 있는 임계기 critical period 로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만 7세를 임계점으로 언어습득능력이 급격하게 감소하는데, Kuhl 과 동료들은 이 시기에 모국어 습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연구한다.


아이는 생후 12개월 이내에 모국어-외국어 구분이 가능해진다. 더 정확히는 8-10개월 무렵부터 모국어의 음소 phoneme 구분 능력이 향상되는 반면 외국어 non-native의 음소 구분 능력은 떨어진다. 소개된 실험에서 미국 아이와 일본 아이는 6~8개월까지 영어의 /r/-/l/ 구분이 가능하지만, 그 이후로 일본 아이는 자신의 모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음소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언어에 노출된 임계기의 아이들이 해당 언어의 통계정보를 수집하고, 이 정보가 그들의 뇌를 모국어에 맞게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이 능력은 모국어에만 해당하지는 않으나, 노출량이 많은 언어가 모국어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렇게 임계기를 거쳐 모국어가 자리 잡은 아이들은 더 이상 통계가 아닌 기억을 통해 언어를 처리하고, 모국어와 그 문화에 의존적인 culture-bound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된 결과에는 언어습득 능력의 선천성과 후천성 사이의 논쟁을 동반한다. TED 강연 영상과 EBS “언어습득의 비밀”에서 소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인간은 언어프로그램을 타고났지만, 임계기동안의 외부자극이 동반되어야만 언어습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의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 신생아들의 경우 울음소리를 통해 의사 표현을 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베이비 사인 baby sign을 활용해 ‘fan’, ‘different’, ‘eat’ 등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을 특정 행동으로 표현하여 소통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아이가 개념과 그것을 의미하는 상징을 mapping 하는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수족관의 기포를 보고 그것을 ‘콜라’로 표현하는 아이의 경우 ‘콜라’라는 단어를 ‘기포가 발생하는 무엇’이라는 개념에 대응시켰다는 것이다. 길거리의 성인 남성을 보고 ‘아빠’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같은 현상이다. 즉,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어휘-의미 간의 분류체계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이런 능력과 더불어 아이들이 문법적 규칙을 바탕으로 문장을 형성하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아직 단어 차원의 언어 활용밖에 하지 못하는 아이도 주어-목적어-동사의 문법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안 밥 먹어요”와 같이 문법적으로는 오류이지만 보편 문법의 규칙을 따르는 현상 또한 아이들에게서 관찰된다. 이는 단어들의 결합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임계기 동안 외부에서 오는 언어적 자극이 부재하면 Genie, 또는 언어를 제대로 듣고 쓰지 못한 인공와우 이식환자의 경우와 같이 언어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임계기동안의 언어 노출은 필수적이다. 이에 대한 오승하 교수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언어처리를 관장하는 뇌 영역이 활용되지 않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경우, 다른 뇌 영역들이 그 공백을 침범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능력 향상이 어려워진다는 뇌 가소성 brain plasticity theory이론에 기반을 둔 설명이었다. 인간의 뇌는 유연하기 때문에 안 쓰면 둔화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언어를 관장하는 뇌 영역을 가지도록, 또는 최소한 그런 영역이 초기에 발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Kuhl의 영상에서도 추가로 주목할 만한 점은, 언어 노출이 면 대 면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치 인간은 그의 타고난 언어능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 모니터 속이 아닌 진짜 세상 속의 사람들과 마주 보면서 소통하도록 디자인된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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