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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Jan 09. 2022

말에 묶인다는 것

나는 몇 가지의 말들에 묶인 채 살아가고 있다. 다양한 상황과 삶의 면면에 그 말들은 포진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글을 쓸 때면 대개 두 가지 말에 묶이곤 한다.

​​


하나는

'나는'이라는 주어를 남발하지 않는다, 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것 같다'로 문장을 끝내지 않을 것.


이 두 원칙 혹은 강박은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때 어떤 선생님의 말이 강하게 남게 된 것이므로 상당히 오래된 습관이자 강박이다.

​​


1.

그는 어차피 자기가 쓰는 글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문장에서 굳이 '나는'이라는 말을 여러 번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나는'이라는 말을 되도록 절제하려고 의식적으로 애써왔다. 생활비를 아껴 쓰는 짠순이 주부처럼 '나는'이라는 말이 문단 안에 반복되어 쓰이는 것을 피해왔으며, 다른 사람의 문장에도 '나는'이 남발되어 있으면 전체 글의 매력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


하지만 최근 읽게 되는 많은 글들에서 쉴 새 없이 '나'들이 질주하는 모습을 본다. 누구도 '나는'의 강박에 묶여 있는 듯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들이 여전히 신경을 긁어대는 것을 느끼며 이제 그만 그 강박에서 벗어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말에 아직도 휩싸여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고 아무도 그런 것에는 한 푼의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렇게 느끼고 있다.   ​


'나는'은 우리가 자아내는 문장을 구성하는 공기 같은 것 아닐까. 산소를 인식하는 것은 산소를 벗어날 때이듯이, 수많은 '나'들이 자칫 자신을 잃을까 두려워 '나'를 강박적으로 외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 강박이라면 애써 '나는'을 감추려 하는 쪽이 아니고, '나는'을 끊임없이 표현하려는 쪽이 강박인 거 아닐까. 그런저런 생각 혹은 변호.


​​

2.

'~인 것 같다'를 문장의 마무리로 하지 말라는 것도 그 선생님의 조언이었다. '~인 것 같다'라고 쓸 수밖에 없는 불확실한 짐작이라면 아예 언급하지 않는 편이 더 좋고, 꼭 쓰고 싶은 사유라면 '~이다' 또는 '~한다'라고 당당히 맺어라!라는 것이었다. 역시 그 말도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고 매력적인 주장이라 생각되었다. 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것 같다'로 문장을 맺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0'


- "나는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내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고,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는 문장은 그 기준으로는 최악이다.​


-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고, 또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라는 식으로 앞의 문장은 수정되어야 한다. 강박 이론(?)에 따르면.


'말에 묶인다'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확실히 이 두 원칙,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선생의 말에 오래도록 단단히 묶여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 줄은 생각보다 질기고 튼튼해서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않는 것 같다,라고 쓰려다 잠시 고민하고 역시나 '않는다'로 쓴다) 마치 음식을 후후 불면 복이 달아난다, 다리를 떨면 복이 날아간다,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떨어진다 같은 말들처럼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생각을 굳게 만든다.


Illustrated by 해처럼



그렇게 굳어진 문장 쓰는 방식이 나를 이루는 일종의 문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나는 '나는'이라는 말을 문장의 머리에 두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게 되었고 그것이 스타일화 되어버린 셈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참 이상한 면이 있다. 모두들 몇 가지의 버그를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 버그들을 주워 모아 어딘가에 전시하면 꽤 볼만할 것 같다. (이런 경우는 '볼만하다'라고 끝낼 수 없었다. 왠지 어색하니까. :))

​​


거기에는 종교적인 아포리즘도 있을 것이고 양육자에 의한 충언이나 조언도, 민간전승, 속담 같은 것도 가득할 것이다. 사람이 자신을 묶고 있는 말에서 벗어나는 것은 밤을 새우고 한 시간 정도만 자고 다시 일어나 출근하는 현실만큼이나 무거운 일이겠지. 쉽지 않겠지만 또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지만, 결국 의지의 문제다.​


"나는 아무래도 거기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미 스타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스타일을 포기하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 것 같다."


~> 묶인 말에 반항하고자 노력해 보았으나 기존 시각으로 판단해 점수로 치자면 100점 중 50점 정도로 느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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