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침대에 누워 골똘히 생각했다. 스무 살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찾아가 조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이메일, 아니지 그땐 이메일이 없었으므로 편지라도 보낼 수 있다면? 메일이건 전화통 화건 무엇이건 어떻든 과거의 나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너무도 해줄 이야기가 많아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피로해져 급 잠이 든 듯) 아침에 눈을 뜨고 그 생각을 이어가게 되었다.
일단 독어독문과는 제발 선택하지 말라고, 만약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시점이라면 당장 전공을 바꾸거나 무리를 해서라도 독일로 가라고, 대학 4년의 시간을 까먹지 말라고, 어처구니없고 쓸데없는 연애 같은 것 하지 말라고, 엄마 아빠의 건강관리에 절대적으로 신경 쓰라고, 스스로도 운동을 하고 건강한 몸을 만들라고, 소설보다는 인문학과 경영에 관련된 책을 읽으라고, 당장 운전면허를 따라고, 애플이 엄청난 회사가 될 거니까 주식을 사라고, 아니면 삼성 주식은 아주 조금이라도 사놓으라고.... 그 모든 것에 앞서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라는 말을 이 연사 간곡하고 애타게 외치고 싶다.
스무 살의 내가 미래에서 온 나의 말을 듣고서 과연 그대로 행해줄 것인가? 그것이 미지수이긴 하다. 아마도 내 성격상 그 말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꽤 있다. 스무 살의 나는 왜 그리 멍청했을까. (스무 살의 나는 10대의 나보다 멍청했다, 확실히) 왜 멍하니 그 보석 같은 시간을 콸콸콸 흘려보냈으며 타인의 시선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들다 보니 내가 진심으로 스무 살의 나에게 화를 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화를 내고 있을 뿐이야.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만일 20년 후의 내가 지금 눈앞에 어떠한 모양으로 건 나타나 말을 걸어온다면 나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하려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상상하기는 어렵다. 너무도. 보르헤스의 '타자(The Other)'라는 소설이 그런 이야기다. 늙은 보르헤스가 젊은 보르헤스를 만나 이야기를 건네는.
20대의 자신 앞에 70대의 노인이 나타나 자기 자신이라 주장하는 건 끔찍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중년의 나에게 노년의 내가 나타난다면 그리 끔찍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나이까지 살아있다는 걸 축복이라 여기고 싶다. 그는 아니 그녀는 아니, 나는 도대체 지금 나에게 무엇을 간곡히 전달할 것인가.
20년 후의 내가 된 마음으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 지금 너의 마음이 말하고 있는 그 일을 해. 아주 적극적으로, 정성을 다해서.
- 건강한 몸을 만들어 가.
- 가족과의 시간이 가장 소중한 거야
- 공부를 해.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들어.
- 친절을 베풀어, 사랑을 실천해.
- 지금 그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
나는 미래의 내가 던질 조언에 대해 더 이상의 말을, 그저 이 정도 밖에는 생각하지 못하겠다. 어느 분야에 영혼을 끌어모아 투자해, 같은 말을 해주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공상 혹은 상상을 해보는 동안 괜찮은 결론을 얻었다.
"2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미소 지을 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
적어도,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멍청했을까.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의 뇌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실제로 느끼고 있다. 스무 살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낫다'. 아무리 '신상'이 선이 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성장하는 뇌는 신상보다 낫다는 것을 체감하며 나아가고 싶다.
후회하지 않을 것. 그것이 최대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