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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Feb 18. 2022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태어나서 내가 '팬'이라 할 만한 대상은 단 두 명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만, 그리고 이 정도 가지고 팬이라 부를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팬이라 해도 괜찮을 성싶다.


​​


한 명은 중학교 2학년 무렵에, 또 다른 한 명은 대학 일 년 차에 그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한 명은 약 200년 전에 태어나 이미 죽은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나이차는 좀 있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 게다가 아마도 현재 같은 나라에 거주 중인 사람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문학'이고 나에게는 소설로 다가왔다.


​​


'팬'의 정의는 뭘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운동 경기나 선수 또는 연극, 영화, 음악 따위나 배우, 가수 등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여러 대상들이 적혀 있지만 아마도 '유명인'이라는 말로 뭉뚱그리면 될 것 같다. 게다가 내 경우는 '사람'보다는 그의 '작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가 쓴 문장, 즉 사유의 표현물이 좋을 뿐이다. 다만 그가 어떻게 하여 그러한 사유를 갖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자취를 따라가 원천이 된 작은 샘물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아주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마음은 크다. 태어나 어떤 식으로 성장했고 무엇이 그를 이러한 장소로 이끌었는가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을 팬이라는 이름 말고 다른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니.


중학교 때 빠져들었던 사람은 괴테였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또 읽었다. 거의 필사를 했다. 책에 나와있는 괴테의 초상화를 노트에 그리고 괴테의 시들을 옮겨 적었다. 나는 대체 왜 독일인이 아닌 것일까, 아쉽고 아쉬웠다. 그리고 베르테르가 되어 로테를 사랑했다. (로테가 아닌 베르테르가 되어) 하지만 주변에는 도대체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별 상관이 없었다. '괴테 노트'라 이름 붙인 두꺼운 노트에 괴테의 모든 것을 수집했다. 그 노트는 지금 어디로 가버렸을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웹에서 펌)



스무 살의 내가 또 다른 팬'이 되게 해준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 신선한 문장들이었다. 깊이 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심층에는 더 깊고 깊은 그의 우물이 있었겠지만 표현되는 문장은 친절했고 문학에 큰 흥미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소구 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물론 성적인 것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 같은,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었고 좋아했으며, 마니아층이 생겨났다. 의아하게도 대학에서 만난 대부분의 지인들은 아무도 하루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고교 동창인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나눴으며 하루키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피씨통신 시대가 열리고 하루키 동호회에서 만난 이들이 그 갈증을 채워주었다. 그들 역시 '뭔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도 분명 있었겠지만 마음의 일부가 이해받는 느낌이 분명 있었다. 대부분 비슷한 또래였고 성향도 비슷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열다섯의 나는 베르테르를 통해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질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것에 대해 배웠고, 스무 살의 나는 하루키가 끄집어낸 인물들을 통해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어떤 포즈랄까, 태도랄까 하는 것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게다가 세상에는 팝이나 발라드 말고도 '재즈'라는 음악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는 알려주었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선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가 아닐까. 조금 다르게 말하면 그 사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는 것.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팬은 굳이 팬이라 불릴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저 한순간의 떨림이나 기분, 감정 따위는 지나가는 풍경 같은 것일 테니 말이다. 물론 지나가는 풍경이 주는 떨림에도 어떤 의미는 분명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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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 된다는 말은 아마도 존경이나 사랑의 감정과는 거리가  일일 것이다. 그보다는 어쩌면.... '같은 편이 되는 ?'이다. 같은 편에 서는 ,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 같은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 말하고 쓰고 행동하는 . 그런 것 아닐까?



그대는 누구의 팬인가요?



놀랄 만큼 닮지 않았지만 30대의 무라카미 하루키씨를 그린 것입니다 ㅜ Illustrated by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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