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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Mar 14. 2024

서버의 귀퉁이에서

대개 우리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타인은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마음의 여유도 시간의 여유도 없다. 그래서 누가 듣건 말건 창을 열고 파워 버튼을 눌러 기계를 작동시키고 마이크를 혹은 키보드를 ON 한 후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광활한 서버의 한 귀퉁이에 슬쩍 올려놓는 것이다. 이렇게, 여기 나처럼.

서버에 올려진 나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그것은 처음에 여기는 어디지? 하는 듯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서성인다. 그러다 하릴없이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본다. 몇 개의 이야기들이 역시 서버 위를 서성이고 있지만 주목할 만한 이야기들은 그다지 없다. 친구가 되고 싶은 상대도 거의 없다. 자신과 잘 맞는 상대를 찾는 일은 너무도 어렵고, 그러기에 서버 위의 세상은 너무도 광활하다. 자신과 잘 통할 것 같은 상대를 만난다는 일은 이 세계에서 굉장히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열심히 걷다 보면 어쩌다 우연히 그런 상대방을 마주치기도 한다. 너무나 반갑게도. 물론 흔한 일은 아니다.

예전엔 제법 여기도 물이 좋았었지…. 나의 이야기는 걸음을 멈추고 가끔 생각한다. 아니, 물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친구들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어디론가 떠나갔다. 혹은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서버의 세상에 노출시키지 않는다. 너무 바쁘거나, 어딘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갔거나, 서버세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거나. 이 세 케이스 중 하나다. 무엇이 되었든 섭섭하고 안타까운 일.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의 이야기는 다시 서버 위를 걷는다. 혹시 친구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을 어느 정도 장착한 채. 래드 갈랜드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아직 아무도 잠들지 않은 밤.


Photo - Red Garland의 앨범 Groovy 재킷 이미지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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