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둘 다 젓가락질을 잘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한결같이 쭉 그러하다. 하지만 '못한다'는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 가끔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방식대로 젓가락질을 하지 않는 못하는 것뿐 음식을 앞에 두고 젓가락질 때문에 못 먹거나 하지는 않는다. 가끔 두부나 도토리묵 같은 메뉴로 인해 곤란해질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때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인 숟가락이 있다. 그저 일반적으로 옳은 방식의 젓가락질이라 알려진 // 모양의 젓가락질이 아닌 X자 형태로 음식을 집어먹을 뿐이(라고 외치고 싶)다.
어떻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방식대로 해 보려 꽤나 애쓰기도 했다. 왜 포크를 사용하면 안 되는가, 철학적인 고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제일 좋아하는 커트러리는 숟가락과 포크가 결합된 형태의 (이름을 잘 모르겠는) 그것이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월E>에 그 포크in숟가락(혹은 숟가락in포크)이 등장해서 얼마나 반갑던지! 세월을 거듭하며 결국은 깔끔하게 보편적 노선을 포기하고 X자 방식 젓가락질의 세계로 완전히 입문했다. 콩자반 같은 건 잘 집어 지지 않아서 별로 안 좋아하는 반찬이 되었고, 굳이 먹으려면 숟가락으로 집었는데 세월을 거듭하다 보니 이제는 능숙하게 콩 한쪽도 콩 반쪽도 잘 집어먹는다. DJ.DOC의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바,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 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렇다. 우리는 밥만 잘 먹는다.
애니메이션 월E의 한장면
어릴 때 그렇게 젓가락질을 하는 나를 가족들은 놀려댔다. '너 이렇게 젓가락질하면 시집 못 간다~'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묵묵히 생각했다. 이런 걸로 결혼을 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안 하는 수밖에. 그런데 나랑 완벽하게 똑같이 젓가락질을 하는 (혹은 못하는) 사람과 결혼한 것을 보면... 진정 우리는 운명이었던가. 우리는 만나자마자 생을 구성하는 벤다이어그램의 상당히 많은 면적이 공통부분임을 감지했고, 거기 몇 퍼센트는 '젓가락질' 방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윽고 딸이 태어났다. 우리는 (그간의 설움을 충분히 고려하여) 딸에게만은! '보편적 방식'의 젓가락질을 가르치고자 약간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윗부분이 붙어있고 손가락을 끼울 수 있는, 뽀로로 등의 캐릭터가 붙어있는 유아용 젓가락을 쥐어주고 집어보게 하는 식으로. 잠시 잘 되는가 싶더니... 유독 포크를 좋아하던 아이는 엄마아빠와 똑같은 방식의 X자형 젓가락질을 하는 중학생이 되었다. 옆으로 걷지 말고 똑바로 앞으로 걸으라 자식에게 호통치는 꽃게 부부의 마음으로 생각했다. 이런 것도 호, 혹시... 유전일까.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음식점에서 뭔가를 시켰는데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 달랑 나오던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 날의 식탁풍경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대체 밥알을 어찌 젓가락으로 떠먹으라는 말인가?! 싶었지만 일본말을 못하여 얌전히 밥알을 하나하나 집어 먹었다. 같은 유치원 엄마였던 일본인 친구는 어느 날 내게 물었다. "한국사람들은 쇠젓가락으로 먹던데, 쇠젓가락으로 먹으면 음식 맛이 이상하지 않아?" 나는 속으로 '나무젓가락 맛이 더 이상해'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그런 것은 내면에 감추고 웃으며 "전혀. 나는 그게 더 맛있어." 하고 상냥하게 말해주었던 기억. 일제 침략기에 너희 조상들이 우리나라 사람들 숟가락 젓가락까지 다 가져갔던 만행을 아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는 친구가 되었으니까. 또 다른 유치원 엄마는 (그녀는 한류팬이었다) 나에게 예전에 일본이 한국에 나쁜 짓을 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쁜 짓 많이 한다고, 나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으니까.
한국에서 언제부터 젓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했는가, 궁금하여 문헌(위키백과와 나무 위키 언저리)을 뒤져보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젓가락 예절이라는 것 자체가 일제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이 통설이며,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 젓가락 예법 같은 것은 없었다는 것. 예로 19세기의 '성협'이라는 화가가 그린 성인 예식을 치른 날의 풍경을 그린 '고기 굽기'라는 풍속화를 보면 젓가락을 잡고 고기를 굽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X자 방식으로 쥐고 있는 것을 (정말이다) 볼 수 있다.
19세기 화가 성협이 그린 <고기굽기>
이런 사실은 유명한 피아노곡 '젓가락 행진곡'이 사실은 행진곡이 아닌 왈츠이며, 원곡 제목에 '찹스틱'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고 그저 '찹chop'(음식을 썬다는 의미)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의외다. 그러니 그저 젓가락을 잡는 방식이라는 것은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정도의 마인드로 바라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조용히 중얼(투덜) 거려 본다.
만약 어느 외국인이 우리 가족 세 사람의 식사문화를 취재하게 된다면 그는 우리의 X자형 젓가락질이 한국의 보편적 젓가락 사용법이라 여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우리는 조용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굳이 부인하지 않겠다. 혹여 그가 가르쳐달라는 입장을 취한다면... 스스럼없이 우리의 X자형 방식을 전수해주련다. 매우 친절하고 매우 자상하게.
사람 나고 젓가락 났지 젓가락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니다. 젓가락은 사람의,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 그렇게 오늘 나는 비로소 ‘젓가락 컴플렉스’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