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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Oct 18. 2024

2. 찐 내향형 인간을 위한 카페

R 좌 독서관(アール座 読書館, R-za Dokushokan)


​​

검색창에 ‘도쿄 북카페’라고 치면 두 번째 정도로 나오는 북카페가 있다. 위치상 나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뜨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평이 꽤 좋았기에 궁금 게이지가 점점 상승했다. 집에서 전철역 한 개 정도 거리에 있는 ‘R 좌 독서관(アール座 読書館)’ 카페. 이름에 ‘독서관’이라는 독특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R 좌’? 그 알파벳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고 싶어 카페의 홈페이지를 열었는데, 그곳은 결코 간결하게 요점만 전하는 사이트가 아니었다. 주인은 카페의 홈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컨대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는 글마저도 구구절절 에세이처럼 썼다. 카페 이름에 들어있는 R(일본에서는 아르라고 발음된다)은 ‘아르누보’에서 떼어온 것이며 예술을 일컫는다고 한다. 즉 ‘예술의 자리’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독서관’은 기분 좋게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읽다 보니 꽤 쏠쏠한 재미가 느껴져 이런저런 글을 한참 동안 읽었다. 새해 첫 글이라며 올린 새해인사도 장문의 에세이다. 인상적인 내용 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융의 성격 분류에 외향형 기질과 내향형 기질이라는 구분법이 있는데, 대략적으로 말하면 외향형 기질은 사회의 가치관에 자신의 생각을 맞춰가는 유형의 사람이며 내향형 기질은 주위보다 개인의 가치관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이라는 인간 유형 구분론입니다. 사람의 시선이나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신경 쓰는 정도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 가게 같은 곳은 어떤 점에 있어서 자신의 세계에 파고드는 것 같은 장소이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내향형 기질 쪽에 맞는 것 같습니다.”

- https://r-books.jugem.jp / R 좌 독서관 카페 주인의 글 중에서



오, 나 같은 인류를 위한 카페가 아닌가. 번지수를 제대로 찾은 것 같다. ​​mbti 성격유형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성격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수식어로는 ‘활발하다, 적극적이다, 외향적이다, 조용하다, 내성적이다’ 외에 딱히 별다른 것이 없었다.‘조용하다’와 ‘내성적’이라는 말은 거의 동일어로 취급되었다. 나의 생기부에는 선생님들이 묘사해 놓은 ‘내성적’이라는 말이 매년 박제되어 있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 단어를 싫어하게 되었다. 바람직한 인간의 기본값은 ‘외향적’과 ‘활발함’의 한 세트여야 하는데 조용하고 내성적이라는 측면은 지극히 마이너스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았으니까. 한 때는 외향형 인간이 되어보려 애쓰기도 했다. 그 피곤함에 지쳐가던 어느 날 문득, 생긴 모양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좋겠어,라는 결심을 했고, 동시에 ‘내성적’이라는 말은 버려두고 ‘내향형 인간’이라는 표식을 집어 들었다. 적어도 ‘내향형’이라는 말 안에는 부정적이거나 부끄럼쟁이 같은 느낌은 없었다. 소년소녀가 사춘기를 딛고 내면이 단단한 성인으로 성장하듯 그렇게 나는 내성적인 소녀에서 심지 굳은 한 그루의 내향인이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에너지가 쌓이는 신비한 기질. 20여 년 가까이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오며 사람들과의 사귐과 교류가 적었어도 그럭저럭 즐겁게 살아올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이러한 내향형 기질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덕이었을 것이다. ‘혼자 노는 힘’은 진정 내 힘의 원천이었다.



호기심을 가득 안고 자전거에 올라 룰루랄라 이 진귀한 이름의 카페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적당한 속도로 달리면 15분~ 2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구글맵에서 도착했다고 주장하는 장소에 오도카니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길치로는 두 번째라면 서러울 정도인 나로서는 익숙한 상황이다. 여기 도저히 카페가 있을 분위기가 아닌데… 하며 잠시 몇 분간의 혼란스러움을 흘러 보내니 드디어 다섯 발자국 정도 앞에 입구가 보였다. 어쩐지 타임슬립의 통로라도 되는 듯한 낡은 입간판에이 끌려 계단을 올랐다.





카페가 자리하고 있는 코엔지(高円寺) 역 주변은 중고 옷가게들로 유명한 동네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빈티지 마니아들이 이곳을 찾는다. 특히 이곳은 연령대가 낮은 영피플들이 주로 찾는 빈티지 성지로 일컬어진다. 80년대 후반 즈음 도쿄 도심의 물가와 집값 등이 급상승하던 시절, 가난하지만 뜻있는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만들어진 예술가 동네라고도 알려져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 Q84]에서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가 어른이 되어 재회한 그 미끄럼틀이 있는 공원이 이곳 코엔지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동네의 분위기는 무척 자유롭고 편안하며 거리 곳곳에서 키치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가게나 카페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부터 여유가 있다고 할까. 셔츠의 단추를 두 개 정도쯤 느슨하게 풀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바늘도 안 들어갈 것 같은 옷차림 따윈 찾아볼 수 없다. 동네의 분위기와 그곳에 거주하거나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비슷해진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자전거를 적당한 장소에 보관하고 이러한 배경을 지닌 동네에 딱 어울린다 싶은 카페의 좁은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갔다.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딴 세상이다. 시대의 태엽을 30~40년 정도 돌려놓은 것이 분명해,라고 생각하며 기대를 품고 카페로 들어섰다. 그러나 아뿔싸, 카페가 은근히 유명해진 탓일까. 빈자리가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친절하게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두면 자리가 생겼을 때 전화를 주겠다고 한다. 어떻게 할까 5초 정도 고민하다 대기명단에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두고 다시 계단을 엉거주춤 내려갔다. 계단의 중간 지점까지 이르렀을 때 문을 열고 아르바이트생이 황급히 나를 부른다. 막 자리가 났단다. 다시 올라가 보니 한 손님이 계산을 하고 있다.


입구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자리를 안내받았다. 자그만 어항을 바라보며 독서와 사색이 가능한 멋진 자리를 예상했건만 벽을 마주하는 엄청나게 좁은 구석진 자리였고, 바로 옆에는 학창 시절 콩나물 교실의 짝꿍처럼 착 붙어 앉은 자리에 한 여인이 미동 없이 책을 읽고 있었다. 한눈에도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의자에 조심조심 앉는데,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의자가 기우뚱해져 깜짝 놀랐다. 푹신하기는 했으나 자세를 좀 고칠라치면 기우뚱해지는 통에 줄곧 정자세를 취하고 있어야만 했다. 종업원이 물 한잔을 갖다 준 후로 나를 잊은 듯 아무런 대응이 없어서 손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문득 고대 유물 같은 메뉴북이 눈에 들어왔다. 펼쳐보니 메뉴가 적혀 있고 안내글에 ‘천천히 음료를 골라주세요. 손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종업원이 대응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서둘러 종업원을 부르고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카페 안의 모두가 조용히 종이책을 펼쳐 읽고 있는 와중에 나는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태블릿으로 칼 융의 책 <심리학과 종교>의 해설서를 읽었다. 1980년대 어느 다방에 실수로 앉아 있는 기분으로 역시  복고는 내 취향이 아닌가 봐, 이렇게 어두운데 사람들은 책을 펼치고 잘도 읽고 있네… 등의 자잘한 투정을 잠시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내가 이곳에 완벽히 적응했구나 하는 느낌이 아주 느리고도 은근하게,  마치 자극적이지 않은 디퓨져의 향처럼 내 안에서 퍼져갔다. 이 불편하고도 독특한 안정감의 정체는 대체 뭐지?



1.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 잡담금지

2. 누구도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 고대 동굴 같은 분위기

3. 걸을 때마다 바닥이 삐걱삐걱 거리고 - 와 지진의 나라에서 오래도록 잘도 버텨왔구나

4. 계산은 오로지 현금으로만 - 생각도 못했는데 다행히도 지갑에 현금이 조금 있었다!

5. 의자는 조금 고쳐 앉으려 하면 기우뚱해져서 편안하게 앉을 수가 없었지만 - 정자세를 유지해야 했기에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묘한 장소가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뭘까, 내내 묘하구나 생각하며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독서에 엄청난 집중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칼 융의 심리서적을 읽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결국 어떠한 장소든 그곳을 체험하는 개인이 무엇을 느끼고 얻는가에 따라 장소의 가치는 다른 것이리라.




융은 <심리학과 종교>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집단화되어 모든 것을 통계적으로 계량하려는 바람에 한 개인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사회적 단위의 하나로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은 그가 스스로 생각하거나 판단하려고 하지 않고 집단의 의견이 자신의 생각인 줄 알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뚜렷한 생각 없이 집단인으로 사는 것이다.

오래전에 융이 사태를 정확히 분석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자신이 ‘집단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결정권’을 스스로 놓아버리게 된다. 인간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 없이 다른 사람이든 집단적 분위기에든 끌려가게 되면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정신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것을 융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되는 고통이라 불렀다. 이런 고통은 현대인의 흔한 정신적 증상이라 할 수 있는 우울, 소외, 신경증 같은 것으로 내부에 가득 쌓이다가 결국 표면을 뚫고 나오게 된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되는 고통이라니, 상상만 해도 그 아픔이 따끔따끔 느껴지는 것 같다. 그것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채! 사실 내향형 인간은 많은 경우 자기주장을 끝까지 내세우지 않고 외향인 - 특히 목소리가 큰 외향인들의 의지에 맞춰주는 식으로 대략 타협하며 얼버무리듯 지나가는 순간이 적지 않다. 자신의 주장이 없다기보다는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은데, 주변 사람들은 신속하고 즉각적인 판단을 원한다. 그러한 과정이 누적되면 바로 그때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융은 말하고 있었다. 뚜렷하게 자신의 의지를 갖고서 집단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개별적 정신’을 갖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이 삶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라는 것이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란 말이야!’가 되겠다. ‘주인공 의식’. 내향인 인류들에게 진정 필요한 의식이다. ​​사실 우리는 사회화라는 명목으로 학교에 들어가고 회사 등에 들어가서 집단에 순응하는 사람으로 길들여진다. 어쩌면 ‘집단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쉬운 방식의 삶일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것에는 바로 그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내향형 인간의 경우 그 과정에서 외향형 인간보다 적어도 두 세배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아간다. 우리들은 외향인에 비해 하루 중 ‘혼자 있는 시간’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확보되어야만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있다. 워라밸보다 중요한 건 혼라벨= 혼자 있는 라이프 밸런스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공감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내향형 인간을 위한 카페’, R 좌 독서관‘은 진정성 있는 절대 고독의 시간으로 가득 고여 있었다. 불편함 속에 스며드는 편안함, 외향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오히려 더 안쪽으로 깊이 침잠하여 만나는 자기 자신과의 농밀한 시간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짐을 챙겨 삐걱거리는 계단을 다시 내려왔다. 그런 내 뒤로 카페의 철문이 조용하게 닫혔다. 지나치게 조용하고도 수줍게, 철문마저도.

도쿄에서

해처럼


R-za Dokushokan Cafe

Tokyo, Suginami City, Koenjiminami, 3 Chome576

https://r-books.jugem.jp


함께 한 책은,

[칼융의 심리학과 종교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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