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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양파보다 맵다

by 해처럼

딸이 영화를 관람하며 최초로 울었던 것은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 사이드 아웃>을 보면서였다. 시간적 배경은 초등 3학년 여름방학, 공간적 배경은 한국의 한 영화관. 사실 옆에서 나도 같이 보고 있었지만 (영화 보느라) 아이가 울었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난 뒤 그 사실을 말해주어서야 알았다. 자기가 영화를 보며 처음 울었던 건 그때였다고. 빙봉(주인공 소녀의 아주 어릴 적 상상의 친구)이 주인공 소녀를 위해 자신이 완전히 잊히게 되는 것을 허용하는 장면에서...... 그렇지 그 장면은 웬만해선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씬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여러 생각에 빠졌다. 딸이 응애~ 하고 울면서 태어나 실로 여러 가지 이유로 울어댔다. 기저귀가 축축하면 울고 배가 고프면 울고 잠투정하며 울고, 잠에서 깨면 울었다. 심심하면 칭얼거리고, 유아습진 때문에 가려워서 울고, 조금 더 커서는 치과치료를 받을 때 아파서 울고, 잘못했을 때 혼내면 울었다. 자신의 생리적 이모저모에 의해서, 기분이 언짢거나 몸이 아플 때 아이는 울었다. 아이의 울음은 대체적으로 울음의 원인을 해결해 주면 즉각 그쳤다. 일단은 아이가 길게 우는 것을 내가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에 재빨리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엄청 애썼다. 아이의 울음이 마음 아파본 적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대부분 다 엄마인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랬던 아이가 처음으로 '슬픈 감정을 느껴서 울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켰다. 비록 현실이 아닌 영화의 스토리로 인한 슬픔을 느껴 울었지만, 그 울음은 아이의 완전히 독립적인 슬픔이었다. 물론 나에게도 충분히 슬픈 장면이었지만 내 슬픔과 아이의 슬픔은 별개의 독립적인 감정이었다. 나는 엄마지만 아이의 슬픔이 내가 닿을 수 없는 장소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일 앞으로 어느 미래에 '빙봉'보다 훨씬 더 큰 어떤 개인적인 슬픔을 느끼고 이 아이가 운다면 나는 어쩌면 좋은가. 이런 두려움이 밀려왔던 것 같다.

막 결혼을 하고 명절인지 언제인지 모르지만 시댁에 가서 어머니의 음식준비를 도왔었다. 시어머니가 파를 썰라고 하셔서 서툴게 파를 썰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남편이 뛰어나와 파를 썰면 매워서 눈물이 나면 어쩌냐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고 큰소리로 웃으시며 '파는 눈물 안 난다, 양파가 눈물 나지~'라고 하셨다. 나는 어쩐지 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파건 양파건 눈물 좀 나면 어때서 그럴까, 정도로 생각했을 뿐.

아이가 빙봉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는 말을 듣고 내가 덜컥 겁이 났던 것과 신혼시절 파를 써는 내게 뛰어왔던 남편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런 것이었구나. 그렇게 가족이 되었구나, 하고...... 물론 지금 남편은 내가 뭘 썰고 있건 뛰어오지 않는다. 양파를 썰다 나오는 눈물 따위에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미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진짜 인생은 양파보다 매우니까. 그러나 가능하면 눈물 흘리는 날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혹여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을 혼자서 닦지 않게는 해주고 싶다.




그림출처 : 해처럼의 일러스트

Illustrated by eehee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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